노동자들에게 먼 촛불집회

422_더듬이수첩
노동자들에게 낯선 촛불집회

촛불집회 때문에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이 전면에 나섰다. 이 위원장은 지난 1일 허세욱 운수노조 조합원의 분신 사건으로 막 몰두하기 시작한 현장대장정을 멈추고 제주에서 급히 상경했다. 올라온 이 위원장은 “촛불집회 하나 제대로 조직이 안 되는데 어떻게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외칠 수 있겠는가”며 부서실장들을 다그쳤다는 후문이다.
사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한미FTA투쟁에서 민주노총이 총파업 선언을 받아낼 수 없는 조직적 현실에 기인한다. 이 위원장은 (총파업을) 못 받는 심정을 “찢어지는 가슴”으로 비유했다. “촛불집회에서 마이크 잡는 것이 두려울 지경”이라는 이 위원장의 심경이 이를 대변하고도 남는다.
촛불 집회는 그리 역사가 길지 않은 집회방식이다. 2002년 7월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오마이뉴스의 모 기자가 제안해 그해 11월 30일 처음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애초 현장대장정을 하는 목적에는 목전의 파업보다도 ‘촛불집회’ 같은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미FTA협상의 긴박한 정세로 말미암아 촛불집회가 당장 요구받기에 이른 것이다.
“서울에만 조합원이 30만 명인데 그 1/100만 조직해도 촛불집회에 3천명은 족히 되고도 남는다”는 이 위원장의 항변 이유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노동조합 차원의 촛불집회는 여전히 낯설다. 아니나 다를까 그동안 촛불집회는 △2002년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 사건 추모 집회 △2004년 4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 반대 △2004년 12월 밀양지역 고교생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2004년 11월 국가보안법반대 시위 등 노조현안보다는 굵직굵직한 사회이슈로 인해 주로 벌어졌다.
현재 촛불집회는 일몰 후 집회금지라는 법률적 금지에도 불구하고 문화행사 등의 명목으로 진행되고 있고 경찰도 이런 현실을 묵인하고 있다. 이 점에서 촛불집회의 지위는 매우 불안정한 편이다. 아마도 한미FTA협상 정세가 가져다주는 시국적 이슈가 아직 대중들에게 제대로 먹혀들고 있지 않음이다. 더욱이 장시간 노동과 다양한 여가를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촛불집회는 여전히 낯선 행위일 수밖에 없다. 척박한 노동현장을 밝히는 촛불집회라면 또 모를까. 이 위원장의 표현대로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 땅의 노동자들”이 있는 한 말이다.

강상철 기자 prdeer@hanaf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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