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신/17:20]모란묘역 하관식 "민중중의 참민중 허세욱 열사...산자는 단결로 총단결연합체로 다시 부활하다...</b>

허세욱 열사는 몸 하나, 살점하나 남기지 않고 마지막 길을 떠난다. 그가 마석에 자리잡은 모란 민주공원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30분경, 이때부터 마지막 운구와 하관식이 이어졌다.

"민족민주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에 오시니 좋으시냐"는 원망이 잇따른다. 그와의 마지막 만남을 준비하고 또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허세욱 열사는 부활한다. 그러나 산자들 곁을 떠나는 시각이 다가오자 이곳까지 따라온 이들은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 앞에서 오열한다.

조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하관이 시작된다. '열사여 끝내 살리라, 노동해방 그날에 살리라...' 하늘의 구름은 좀 더 짙어졌고, 열사를 보내는 이들의 가슴속도 잿빛이다. '미국반대' '노무현정권퇴진' '허세욱 동지 살려내라'등의 문구가 적힌 검은 만장이 그를 둘러싸고 있다. 평생 도시빈민으로, 택시노동자로, 노동운동가로, 사회활동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낮고 평범한 무명의 그가 남기고 떠난 건 무엇일까...

단단한 나무로 짜인 관 위에는 붉은 천이 덮혀져있고 그 천 위에는 금박을 입힌 민족민주노동열사 허세욱지구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허세욱 열사는 강회로 범벅된 마사토에 덮혔다.

그가 누운 묘역 옆으로 지천에 진달래, 개나리, 목련 등이 흐드러져 있다. 열사혼이 꽃의 영령으로 되살아난 듯한 느낌. 하관식이 거행된다. 한 줌 재로 변한 열사가 마지막까지 외쳤던 유훈을 추억하고 외치는 이들이 눈물을 훔치며 묵념하고 마지막 조사를 읊는다.

<b>[조사/한상렬 목사] "님이 부활하셔서 사람마다, 동지마다 님이 영원으로 살아 있습니다. 님의 눈물은 우리의 생명수, 불타는 몸은 우리 민족의 양식이 됐습니다...남은자는 결단했습니다. 단결을 결단했습니다...열사는 민주노총과 전농,, 전빈련, 기층 민중조직과 함께 더욱 큰 총단결체조직으로 부활하셨습니다"</b>

=오늘 아침 7시부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하이얏트 호텔 앞에서 용산 미군기지 앞에서 서울 시청 앞에서 범국민 추도식을 가지고 이제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 거룩한 땅, 민족민주열사들이 살아숨쉬는 마석모란공원에 함께 하시니 좋으신지요? 우리 진정 기뻐하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압니다. 님이 부활하셔서 사람마다 동지마다 님이 영원으로 살아 있습니다. 님의 눈물은 우리의 생명수였고, 불타는 몸은 우리 민족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님의 심장이 우리의 심장이요, 님의 눈이 우리의 눈이요, 님의 귀가 우리의 귀입니다. 이미 님과 우리는 한몸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민족의 한을 물어보고 계십니다. 님의 미소가 눈부십니다. 새세상을 꿈꾸는 미소이십니다. 님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앞자리에 계십니다. 님이여! 이제 선두에서 우리를 인도하소서, 민중중의 참민중이신 님을 우러러 봅니다. 님을 따라 반드시 평화세상과 연방제통일조국을 위해 민족민중정부수립 연대연합전선체를 총단결하여 역사를 확 바꿔버릴 것입니다. 골수에 사무쳐옵니다. 내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전태일 열사처럼, 여기계신 모든 열사처럼 '단결, 단결 아니겠습니까.' 단결이야말로 열사를 살리는 길이며 분열이야말로 열사를 다시 죽이는 일입니다. 단결, 결단, 자 이제 남은자 우리는 결단했습니다. 단결을 결단했습니다. 새로운 제대로 된, 연댄건설체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열사는 민주노총과 전농 전빈련 기층 민중조직과 함께 더욱 큰 총단결체조직으로 부활하실 것입니다. 님을 따라 여기까지 모두 함께 해 온 우리는 님을 따라 만세를 함께 외치고 싶습니다. 온몸 불타오르며 절규했던 님을 따라 우리도 만세, 만세를 부르고 싶습니다. 허세욱 동지따라 대동단결, 대동투쟁, 대중승리 만세, 만세, 만세, 님의 무덤은 평등의 무덤입니다. 님은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열사여! 허세욱 열사여!

하관식은 삼십여 분 남짓 진행됐다. 장례위원장과 한독운수분회 조합원들, 민주노동당 관악구 위원장 등이 취토하고, 묘역을 둘러싼 이들은 '열사의 유언이다. 한미에프티에이 폐기하라!'는 구호를 제창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임을위한행진곡이 나즈막히 흐르는 가운데 5시18분 취토가 끝났다. "다시 굳건한 연대의 대오로 따르자"는 다짐으로 선 이들이 거듭 "열사의 유언이다. 한미에프티에이 폐기하라!"며 외친다.

취토가 끝나고 제배상이 차려진 5시18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b>[10신/14:45]범국민추모식 마치고 장례대오 모란으로</b>

슬픔과 분노로 뒤엉킨 서울 시청광장에 다시 불이 붙었다. 고인의 뜻을 기리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따가운 햇살아래 미동조차 하지 않고 앉아있다. 이들에게 허세욱 열사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산자로서의 부끄러움을 넘어 두렵기조차 하다"고. 그랬다. 한강성심병원에서부터 시청까지, 또 다시 모란묘역으로 이어지는 숱한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산자들을 하나로 모아냈다.

이들에게 허세욱이라는 오십대의 한 노동자가 던진 뜻은 "하나로 모여 투쟁하라"는 것이었고 "소외된 민중을 구하기 위해 치열하게, 더 치열하게 싸워내 이겨보라"는 것이었을 게다. 낮 2시45분경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범국민추모식은 모두 끝났다. 행사가 끝나기 바로 앞에 열사의 아픔을 위로하는 춤패 '출' 단원들이 진혼굿을 선보였다. 꽃으로 장식된 배모양의 상여가 민중의 바다에 띄워지고 민중의 힘은 거센 물살을 넘어 나간다.

이 자리에서 오종렬 범국본 공동대표가 "무서운 결단을 내린 허세욱 동지였다"며 결행전야 오 의장을 찾은 당시를 회상하며 "자주통일 민중해방 세상에 햇살로 부활 하시라"며 반민중적인 한미에프티에이타결 강행에 울분을 토했다.

시청광장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당신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민주노총답게 당신의 기대대로 저부터 모든 것을 바쳐 싸우겠다"며 열사정신을 기리고 "당신의 염원을 실현할 수 없는 민주노총이라면 무슨 소용이며 그런 위원장이 무슨 소용 있겠느냐"고 말해 한미에프티에이협상 무효투쟁을 강도높게 벌일 뜻임을 예고했다.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는 허세욱 열사의 생전 민주노동당 당원번호가 61147번이었다며 청와대 앞 단식농성 중에도 택시를 끌고와 안부를 걱정해 주셨다며 생전의 허 열사를 추억했다. 문대표는 이어 "허세욱 동지는 스스로 죽은게 아니라, 허 동지를 죽인 자들은 미국이요, 노무현이요, 이땅의 민중의 삶을 배신하는 자본가세력"이라고 질타했다. 그밖에 송경동 시인, 이봉화 민주노동당 관악지역구 위원장, 참여연대, 영화인 등이 열사를 기억하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오후 3시 현재, 모란 민주묘역으로 향하는 장례대오는 남산 3호터널을 지나고 있다.

<b>[9신/13:18]서울시청, 범국민 추모식 돌입</b>

분신현장인 하얏트호텔과 용산 주한미군기지쪽에서 노제를 지낸 장례대오는 이태원 들머리쪽 국방부 근처 미군부대 앞에서 남영역쪽으로 걸어 이동했다. 연도의 시민들도 착잡한 표정으로 고 허세욱열사 장례식을 지켜본다. 장례행렬은 남영역 부근에 도착해 일단 해산한 후 서울 시청광장 쪽으로 집결 중이다.

시청광장에서 낮 12시30분 범국민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계속 밀려드는 참가자들때문에 추모식이 지연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중부권 이상 전체조직들과 각급 시민사회단체 성원 일만여 명이 이날 추모식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지방의 경우 해당 거점에서 <한미FTA무효 故허세욱동지 민족민주노동열사장>을 치른다.

추모식 예정시간을 삼십분이상 넘긴 시각,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행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시청광장에는 열사정신을 계승하려는 산자의 함성과 깃발로 뒤덮혀 있다.

13시18분 예정시간을 오십여 분 넘긴 끝에 본행사가 시작됐다. 오종렬 범국본 공동대표 등이 조사를 읽고 있다.

<b>[8신/11:15]노제-용산미군기지앞</b>

하얏트호텔 분신현장에서 노제와 제배를 마친 대오 전체는 용산미군기지쪽으로 이동한 상태. 일부 대오는 남영역 일대로 빠져 다음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미군기지 시설 주변에는 전경차량이 차벽을 쌓고 경계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허세욱 열사는 생전에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두 여중생, 효순, 미선이의 한을 풀겠다"고 했다. "평택주한미군기지 확장을 꼭 저지하겠다"고 다짐했다. 구천을 해매는 그의 넋이 이땅을 강점한 채 민중의 삶을 파탄내는 주범인 미국과 주한미군들에 대한 서슬퍼런 저항과 투쟁으로 부활하고 있다.

이해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용산 미군기지앞 노제 사회자로 나섰다. "미국이 우리나라 경제를 완전히 종속시키는 한미에프티에이 타결시점을 앞두고 고뇌를 한 끝에 허세욱 동지가 분신으로 항거했다"며 "우리는 열사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것"이라고 외쳤다. "결코 허세욱 동지를 거스를 수 없으며 그의 유훈을 굳게 다짐하자"고도 말했다.

문경식 전농의장, 변연식 평통사 공동대표, 정광훈 공동장례위원장 등이 허세욱 열사의 넋을 기리며 조사를 읽었다. 정오를 이십여 분 남긴 시각 용산미군기지 앞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뜨거운 분노들이 내려 앉고 있다. 11시40분 현재, 꽃다지팀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쳤고 고인의 유훈을 기리기 위해 미군기지에 뼛가루를 뿌리는 상징의식을 치렀다. 무대차 앞에 펼침막이 걸려있다. "미군기지도 눈물도 없는 그곳에서 평화롭게 쉬소서..."

<b>[조사/문경식 전농의장]</b>=한미에프티에이 폐기하라, 노무현 정권 퇴진하라...망국적인 한미에프티에이 협상 타개 저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던 허 동지의 염원이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민중 생존권을 말살하는 보수세력과 노무현 정권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투쟁했다. 투쟁 끝에 온몸을 불사르며 동지의 모든 것을 바쳤다. 허세욱 동지...언제나 낮은 곶에서 겸손하게 활동했던 동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빈촌 독거노인을 돕던 손길에서, 언제나 차별 소외받는 약자와 함께 투쟁하던 모습에서...동지를 기억하며 민중 속에서 투쟁하는 제2, 제3의 허세욱 동지가 살아가게 될 것을 확신한다. 한미에프티에이를 파탄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 노동자가 당당한 세상, 우리민족 억압하는 미군없는 세상, 통일세상을 위해 우리가 투쟁하겠다. 끝까지 싸워 이기겠다. 고이 가소서, 우리에게 맡기고 편히 쉬소서...

<b>[변연식/평통사 공동대표]</b>=민중과 평화를 사랑한 허세욱 동지, 미제국에 맞서 불꽃으로 일어난 허세욱 동지...잠을 쪼개 실천하며 동지들 사이에서 자신을 낮추고 투쟁현장 최전선을 지켰던 허 동지, 당신의 한이 서린 미군기지 앞이다... 효순미선이를 깔아 죽인 미군 우두머리가 있는 곳이다. 윤금이를 처참하게 죽이고 칼부림 난동을 벌이며 할머니를 강간했던 (한국속의)미국땅이다. 전세계 &#54112;권을 위해 부시...미군을 이땅에서 몰아내지않고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것... 마침내 당신은 깨달았다. 당신은 어느새 반미투쟁 최전선으로 내달렸다. 당신은 공장이나 도로로도 쓰지 못할 오염된 미군기지에 대해 분노했다...미국패권을 위한 침략전쟁터에 우리 아들들을 보내는 노무현 정권을 용서할 수 없었다...평택 황새울 들녘을 뺏아가는 부시를 당신은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두달전 한미안보회의가 열리던 이곳에서, 노무현과 부시에 맞선 결연한 모습으로 이 자리에 서 계셨다. 동지의 뜻이기에 용서할 수 없더. 미국이 우리에게 저질러온 악을 우리가 용서하지 않겠다. 당신이 깨닫은 민중셍존의 길... 간절한 염원을 이어가겠다. 당신이 겪어온 분노와 절망, 처절한 고통을 우리가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뼈저린 한을 가슴에 새겨 저들에게 되돌려 주겠다. 살아있는 수천수만의 허세욱이가 돼 반드시 저들게에 되갚아 줄 것이다. 이제 당신을 이 곳에 뿌립니다. 동지여, 바람이 되고 하늘이 돼 미국 악행을 멈추는 우리 투쟁에 함께 하소서. 우리 가슴에 살아날 동지여 미군없는 세상에서 자주꽃이 천지에 흐드러지고 평화의 강물이 흐르는 그곳에서 고이 잠드소서...

<b>[조사/정광훈 공동장례위원장]</b>= 혁명이 끝나고 통일된 조국에서 맛나게 살아보자던 허세욱 동지. 내가 허 동지를 처음 만났을 때는 해남에서 올라와 전농의장을 했을 때. 허세욱 동지는 수많은 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현장에서 만났다... 허 동지가 하시는 말, 정광훈 위원장이 저에게 싸인해 준 종이를 보물단지처럼 간직하고 있다며 민중해방이 되는 혁명의 그 날 그 쪽지를 자랑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디서나 똑똑한 척 하지 않고 소처럼 빙그레 웃는 모습 무공해 중에서도 가장 무공해인 민중, 그같은 민중만 있다면, 공해많은 서울에 올라와 다운다운 에프티에이 목소리도 추운 겨울에 나지 않았을 것이네. 전경들이 하얏트호텔에 울타리를 쳐놓고 나가지도 못하게 만든 그 날... 허세욱 동지 화염연기만 쳐다보고 있었다네.. .이제는 자네가 할 일이 다 끝났네. 하중근, 전용철 등을 악마처럼 죽인 그들...민중축제의 그 날 전선에서 다시 만나세...

<b>[7신/10:18]노제-서울 하얏트호텔 앞</b>

지난 1일 한미에프티에이 협상 고위급회담이 열리던 곳, 서울 하얏트호텔 앞쪽으로 시민사회단체 성원 등이 집결했다. 이곳에서 허세욱 열사가 한미에프티에이 폐기를 외치며 분신한 현장이다.

사회자로 나선 전기환 전농 사무총장은 "그분이 우리에게 준 것은 민중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가는 한미에프티에이를 꼭 막아달라는 염원이었고 열망이었다"며 허 열사의 뜻을 기렸다.

[사진8]
10시40분 현재, 삶터 성원들이 진혼굿을 벌이고 있다. 세상민중을 옥죄는 사슬을 끊고 해방세상으로 가자는 내용이다. 검은 만장 수십기 사이로 하얀 광목천이 늘어졌다. 천은 가시밭길을 말한다. 그 길을 해치며 해방세상으로 나가는 허세욱 열사를 기리는 진혼굿이다. 허세욱 열사의 부활을 말한다. 검은 만장에는 "노무현 정권 퇴진, 신자유주의 반대, 한미FTA무효, 청문회 실시, 협상책임자 처벌, 협상내용 전면공개, 졸속협상반대" 등의 글귀가 적혀있다.

10시42분 진혼굿이 끝났다. 분신현장에 차려진 분향소에 제배를 올리고 있다. 하얏트호텔 앞에 모인 5백여 명의 조문객들, 장례군중들이 일제히 제배를 드리고 있다. 이곳에서 노제를 마치면 운구는 용산 주한미군지 앞으로 향한다. 죽어서도 미국놈들을 괴롭힐 수 있도록 주한미군기지에 유골을 뿌려달라던 열사의 염원을 따라 움직인다. 10시45분 하얏트호텔앞 노제를 마쳤다.

<b>[한상렬 목사 조사]="허세욱 열사여, 님은 동지로 부활하셨습니다"</b>

사람마다 일평생 잊지못할 날이 있다. 바로 07년 4월1일 우리모두에게, 저에게 결코 잊지 못할 날이 됐다. 그날 오전 서울 어느대에서 예배를 드리고 2시로 예정된 기자회견에 참여하려고 하얏트호텔 정문에 왔다. 그러나 경찰은 기자회견을 할 수 없다고 막았다. 주저 앉았다. 저들은 동지들과 함께 저희를 한 사람 한 사람 여러놈이 달려들어 끌어 옮겼다. 기가 막혔다. 저 안에서는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놀음을 하고 자빠졌는데 이 폭력경찰 행태...저절로 눈물이 나왔다. 지난 날 효순이 미선이때 그 영정을 안고 무역 워싱톤 행진할 때 터져나왔던 그 눈물이 떠올랐다. 어떤 동지가 다가와서 몸이 어떠냐고 하면서 오늘 대추리에서 &#51922;겨났다고 했다. 더욱 서러웠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찌되고 있는 것인가. 결국 우리는 투쟁 속에서 기자회견 진행했다. 1시간30분 늦게 진행할 때 이쪽 골목길에서 퍽하면서 검은 연기가 솟아 올랐다. 우리는 길이 막혀서 무슨 일인가 했다. 조금 후에 들리는 소식은 분신이었다. 전기환 총장과 함께 용산 중앙병원으로 갔다. 처음엔 농민이라는 소식이 들리더니 허세욱 동지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아차 싶었다. 지도부의 한 사람으로서 고통스러웠다. 제발 살아나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허세욱 동지는 본인이 가고자 한 길을 어김없이 가고야 말았다. 분신현장에서 불타면서 외치지만 않았더라도, 목구멍으로 불기운이 들어가 기도와 패가 다치지만 않았더라면 살아날 수 있었을 텐데...결국 불타면서도 그 절규 속에 돌아가셨다. 제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님은 기어이 가시고 말았군요, 이 아픔 이 회환을 어이 하오리까...님이여 허세욱 님이시여 잘못했습니다. 용서하소서...님은 죽어 우리를 살리고 역사를 살리셨다. 이제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날 것이다. 혈육의 가족보다도 더 귀한 가족으로 님의 뜻을 받들고 정성을 다해 실천을 할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이다...이건 피로 유서를 쓰신 것이다. 민중을 과연 누가 구할 것인가. 민중이 민중을 구할 것인데 참민중인 님의 뜻을 따라 민중과 함께 살 것이다. 자주적, 주체적으로 사신 님의 뜻을 따라 거짓말을 죽여버리고 참말을 살려 님처럼 올바르고 곱게, 깨워있는 영혼, 살아있는 노래를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만일 산이 나오고 물이 닿을 때를 만나면 다시 한발을 내디뎌야 좋은 것이다. 청와 큰 스님에게 법문을 달라고 하니 주신 이 말씀이 바로 님의 삶 그 자체였다. 님의 뜻을 따라 한발 내디뎌 참세상을 만들기 위해 백척간두진일보의 삶을 살 것이다. 살아도 승리, 죽어도 승리하기 위해 님과 함께 거닐 것이다. 여기를 보십시오. 님은 동지로 부활하셨습니다. 님이여 허세욱 님이시여 사랑합니다. 님과 우리는 이미 한몸입니다. 열사여, 허세욱 열사여...

<b>[6신/10:00] 장례행렬, 서울 하얏트호텔 쪽으로 이동
한독운수분회 택시 수십여대 이태원 주한미군부대 앞에 도열</b>

고인이 생전에 일하던 한독운수사업장에서 노제를 마친 장례행렬이 서울 하얏트 호텔 쪽으로 이동 중이다. 오전 9시55분경 한강대교를 지나고 있다. 한독운수사업장을 떠나기 직전 서동빈 한독운수분회 부위원장은 관을 끌어 안고 "꼭 다시 오셔야 합니다"라며 오열을 터뜨려 주변의 눈시울을 붉혔다.

[사진7]
핸진차량 맨 앞쪽에 운구차가 그 뒷쪽으로 한독운수분회 조합원들이 수십여 대의 택시를 몰고 행렬을 이루고 있다. 택시 본네트에 "근조 한미에프티에이 무효" 문구가 새겨진 펼침막과 검은 깃발을 달고 차를 운전하는 택시노동자들 모두 검은 머리띠를 동여 맨 상태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행렬이 삼각지 쪽으로 빠져 합동참보본부 앞을 경유 중이다. 이태원으로 접어드는 길목 양쪽은 미군부대 시설이다. 택시 안에서는 미군부대 시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전경버스들이 차벽을 쌓고 비상대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주한미군 군속으로 보이는 외국인들이 간간히 눈에 띈다. 10시5분 이태원 일대에 차량지 정차했다. "전국 주한미군기지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그의 유언이 행렬을 이곳에 멈추게 한 것 같다.

[사진5]<b>[5신/08:45]노제-한독운수 사업장...</b>

민주노총에서 노제를 지낸 장례행렬은 이어 민주노동당 관악구지역위 사무실 앞에서 간단히 제배를 치른 후 08시40분 한독운수 사업장에 도착했다.

오전 8시 40분,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흐르는 가운데 허세욱 열사의 혼을 담은 관과 영정이 봉천동 한독운수 사업장에 도착했다. 그의 동지들 수백여 명이 열사를 맞기 위해 미리 기다리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한독운수 사업장, 열사께서 생전에 투쟁했던 곳이다. 그의 동지들이 흐느낀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무거운 마음으로 동지를 보내려는 순간" 앞에서 모두들 표정이 무겁다.

8시45분, 노제가 시작됐다. 열사는 돌아가시기 전에 유서를 남겼다. 유서내용은 동지의 숨가쁜 삶을 대변하고 있다. 유해를 전국 미군기지에 뿌려달라고 하며 우리 곁을 떠났다. 특히 택시노동자들은 80년대 이후 많은 열사들이 나왔다. 운수산업노조 정호희 사무처장이 사회를 맡았다. 황규금 한독운수분회장과 관악주민연대 이명애 사무국장이 추모사를 발표했다. 기름때가 베인 사업장 곳곳에는 흐느낌 소리가 가득하다. 이곳에서 노제를 마치면 하얏트 호텔 앞으로 이동한다.

<b>황규금/한독운수분회장 추모사</b>=동지여러분 아름다운 우리들의 벗 허세욱을 아시나. 그의 인생역정을 보여드리겠다. 동지는 53년 5월 경기도안성에서 태어났다. 안성고 졸업후 도시로 올라왔고 도시빈민을 보면서 투쟁을 시작했다. 87년 운수노동자로 생계를 꾸렸고 91년 한독운수에서 택시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허 열사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에서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는 총파업 투쟁에 열심히 일해 02년 한독운수가 한국노총에서 민주노총으로 상급단체를 변경하게 됐다... 허세욱 동지는 그렇게 7년동안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당원, 평통사 회원 등으로 활동하고 소년소녀가장돕기, 독거노인돕기 등 많은 사회참여 활동을 했다. 자신이 느낀 현실 모순타파와 이 사회의 자유 민주 정의를 위해 헌신해왔다. 그의 헌신적 삶은 02년 효순미선 사건 당시 촛불집회에, 택시 완전월급제 쟁취투쟁, 평택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 등 헌신적인 투쟁을 몸소 실천했다. 또 비정규악법 로드맵 저지투쟁, 운수사업법 개정 투쟁 등 모든 투쟁현장에서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러면서도 그는 근면성실하게 조합원의 모범이 돼 일했다. 특히 허 열사는 한미에프티에이 협상에 누구보다도 분노하면서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급기야 허세욱 동지는 07년 4월1일 오후 3시55분 좌절과 분노, 최후의 저항으로, 당신의 온몸으로 분신을 선택했다. 그것이 허세욱 동지의 삶 그 자체였다. 늦게나마 수술이 잘돼 호전이 되는 것같아 이곳과 전국에서 동지의 회복을 애절하게 빌었건만, 그는 다시올 수 없는 그곳으로 떠났다. 다시는 이 마당에 올 수 없게 됐다. 동지 어깨를 부어잡으며 힘차게 투쟁할 것을 간절히 빌었건만... 혼자 가는 그 길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 땅의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해, 차별없는 세상을 위해 먼저가신 전태일 열사와 대한민국의 딸 효순미선이와 함께 당신 유서의 마지막 그 뜻대로 할 것이다... 편안히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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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이명애 사무국장/관악주민연대 추모사</b>=허세욱님 많은 이들이 당신을 동지라 부른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한번도 동지라 부르지 못했다. 봉천동 산동네에서 만든 착한 허세욱 아저씨라 부른다. 저는 믿을 수 없다. 어디선가 당신이 저 여기있습니다하고 손을 버쩍 들고 나타날 것 같다. 차가운 관 속에서 한줌재로 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당신이 깨어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깨어나면 일그러진 당신 얼굴에 입맞춰 주고 뭉개진 손이라도 잡자고 약속했는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당신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좋아앴던 손경열 선생 드의 편지를 갖고 같다. 당신이 깨고 나면 좋아하실 것 같아서...그 편지 전해 드리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시다니... 가파른 산동네에서 철거민으로 살았던 당신의 모습... 구부정한 당신의 어깨, 투쟁가를 잘 몰라 어물거리면서 마지막의 단결투쟁을 외쳤던 당신, 삶 터전을 빼앗긴 철거민들 앞에서 웃던 당신... 시간이 지나게 이렇게 얘기했지요. 싸움이 나를 인간답게 살게 만들었고. 봉천6동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것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여 울고 웃던 당신이 이렇게 누어있다. 당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가 울고 또 울었다. 하늘을 처다보녀 살짝웃는 작은 영정사진 하나...아직 찬바람 몰아치는 싸늘한 거리, 그렇게 당신의 빈소가 차려지는 것을 보며, 거리에 빈소가 차려진 당신을 보며눈물이 났다. 살아서도 집을 빼앗기는 아픔을 겪더니 죽어서도 거리에 나앉은 당신은 어찌나 그렇게 맑게 웃던지...내가 기억하는 당신은 천진난만한 어린이같았다...수줍은 당신의 미소...당신이 기대한만큼 되지 않으면 뾰루퉁해지는 당신 목소리...그때는 무심코 넘겼던 사소한 것 까지고 기억난다. 착한 아저시, 순수한 아저씨, 따뜻한 아저씨...무엇이 당신을 몰아갔는가....활활타는 불 속에서 당신이 외치던 것은 무엇이었던지...그 유서를 읽고 또 읽었다... 나는 이 나라의 민중을 구한다는 생각이다....나는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 나는 절대로 위에 서려고 하지 않았다...신자유주의, 밟고 일어나지 않으면 냉혹한 사회에서 가난한 민중의 삶을 구하고자 한 당신의 선택이 결코 당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당신을 살리는 길이었다고 당신은 얘기한다. 그런 당신의 선택 앞에 우리는 부끄럽다. 고개를 들지 못할만큼 부끄럽다...아저씨가 항상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선생님이라 불렀던 우리들은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성찰하고 있다. 당신은 살아있을 때도 항상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운전하시면서 틈틈이 포스터를 준비했고, 차한잔 마시지도 못하고 나가는 당신의 열정, 집회에 빠짐없이 나가던 당신의 성실함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당신이 투쟁을 외치며 집회에 나갈 때 함께 어깨 걸고 나가지 못했던 것이 부끄럽다. 당신은 우리에게 이 참혹한 성찰을 주시려고 그 뜨거운 불꽃 속으로 걸어가셨다. 당신은 보고 계시나. 당신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손을 잡고 있는 것을... 아직은 당신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 나태히지 못한 우리이지만 당신이 지켜주신다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딛고 일어서겠다. 허름한 판자집마저 헐린 철거민이고 세입자였던 당신...택시노동자였던 당신....하루 열두시간 달리고도 고작 1백만원에 지나지 않은 월급을 받던 당신...당신은 노동자, 민중으로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치열한 삶을 살아간 노동자 허세욱으로 기억하겠다. 엄혹한 겨울을 이기고 온 사월, 꽃으로 우리 가슴 속에 살아오십시오.

[사진2]<b>[4신/07:30]노제-민주노총 앞...</b>

병원 앞에서 발인식을 마치고 7시15분 관이 영구차로 운구됐고 곧장 행진에 돌입했다. 영정을 든 친절한택시분회장 강창선 씨가 병원 앞에서 오열한다. 한강성심병원 앞에서 출발해 15분간 이어진 행진, 행렬은 첫 노제장소인 민주노총 앞에 도착했다. 허세욱 열사가 평생 일하며 흘린 땀 내음이 배인 일터다. 내 자신을 버린 적이 없다던 열사가 끝까지 민주노총과 함께 하고 싶다던 바로 그 곳이다. 허세욱 열사의 유서가 낭독됐다. "열사의 염원이다 한미에프티에이 폐기하라, 열사의 염원이다 한미에프티에이 중단하라"를 외친다.

07:45 장례핼렬은 다음 노제지인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허세욱 열사는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1월, 주한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한 두 여중생 한을 풀어 내겠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을 기필코 저지하겠다, 한미에프티에이협상을 몸으로 저지하겠다는 글을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인터넷 게시판에 남기는 등 열정적인 활동을 했었다.

<b>[3신/06:55] 06:52 관 운구..."통일의 날 부활하소서 허세욱 동지여..."</b>

아침 6시52분 관이 나왔다. 관 안에는 열사 생전에 사용하던 옷, 집회용품, 자격증, 유인물, NO FTA NO BUSH 펼침막 등과 열사의 유골 일부가 들어있다. 상주는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 구수영 민주택시연맹 위원장, 이용식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맡았다.

발인식이 열리는 병원앞 분향소쪽, 선두에 오종렬 한미에프티에이저지 범국민운동본부 오종렬 의장, 한상렬 목사, 정광훈 민중연대 상임대표, 홍근수 목사,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권영길, 심상정, 이영순, 최순영 의원, 김선동 사무총장, 김기수, 박인숙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과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과 산하연맹 위원장 등이 도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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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arkblue><b>[추도사 요약/홍근수 목사]</b>동지여 동지라 불리는 것을 좋아하던 허세욱 동지, 10만 대군만 됐더라도 당신을 잃지 않았을 것을...투쟁력을 갖춰 노 정부를 몰아부쳤다면 당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을, 당신을 보내는 지금 통한의 가슴은 찢어 진다...비정규직 노동자를 걱정하며 모금하지 말라는 당신, 그리하야 덩신은 우리의 거울이었다. 당신은 실천영역을 넓혀왔고 여중생투쟁, 평택투쟁에 온몸을 던졌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여중생 촛불을 들었다. 황세울 들판 군용헬기 앞에서 깃발을 들고 뛰어 나갔다...평화통일을 위한 노동자...허세욱 동지, 37년전 전태일 열사 뒤를 이어 새시대 역사를 밝힐 우리의 표상이다...당신을 떠나보내는 부끄러움을 거두고 당신을 바라본다... FTA저지, 여중생 한을 풀려는 당신의 소망을 우리가 대신 풀겠다. 자주와 평화 민중해방을 향한 투쟁대장정에 우리와 함께 하소서...통일의 날 부활하소서 허세욱 동지여...</font>

07시4분 현재 제배에 들어갔다. 민주택시연맹 구수영 위원장, 정종권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이 무릎을 꿇었다. 이어지는 제배는 장례대책위 공동준비위원장들이 맡는다.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을 포함한 민주노동당 관계자들, 민주노총 임원과 산별연맹 대표자 등이 제배를 한다.

07:10분 발인식을 모두 마치고 일행은 민주노총 앞으로 이동해 노제를 지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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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신/4.18/06:35] 한강성심병원앞, 발인 30분전...</b>

장례식 준비를 위해 뜬눈으로 밤을 새운 장례위원, 운구위원들이 검정양복을 새로 차려입고 병원앞에 집결한 상태다. 작년 시월부터 허세욱 열사가 몰던 한독운수 택시(서울33 사2114)에 영정을 달았다.

그는 웃고 있다. 활짝 웃고 있는 열사 앞에 선 이들이 하얀손장갑으로 열사의 얼굴을 닦는다. 그가 몰던 차 계기판에 67052킬로미터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기록돼있다. 그는 이 차를 몰면서 한미에프티에이저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택시기사 생존권 쟁취 등을 외쳤다. 차량 안에는 영수증발급기와 헨즈프리가 설치돼 있다.

영정을 실은 차량은 오계석씨가 운전한다. 오씨는 허세욱 열사와 같은 나이의 동료, 동지이다. 병원앞 차로 양쪽에는 택시들이 그의 마지막길을 애도하려는듯 죽 늘어서있다.

아침 7시부터 20분간 병원앞에서 발인식이 열리고 7시30분부터 민주노총 앞 등지로 행진이 시작된다. 홍근수 목사가 발인선언을 하고 한독조합원 동지들이 관을 옮긴다. 이어 행진에 들어가면 한독택시가 선도를 맡고 영정, 영구차, 만장, 명정, 부활도 등이 그 뒤를 따른다. 병원 앞쪽 거리는 한산하다. 임을위한행진곡이 병원앞을 적시고 있다.

먼동이 트로 아침이 밝듯 허세욱 열사가 부활하고 있다.

[사진1]
<b>[1신/4.17] 한미FTA에는 민중의 피냄새가 난다...</b>

졸속 밀실협상이라고 지탄받는 한미FTA협상 타결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오십대 노동자가 분신했다. 민중을 사랑하고 민족을 위한 이름없는 한 노동자의 절규는 시간이 흐를수록 큰 반향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고 허세욱 열사, 평생 택시를 운전하던 노동자였던 그를 알던 이들은 "묵묵히 항상 있어야 할 자리에 서있던 사람, 달리는 민주노동당, 월임금 70-80만원 가량이지만 그걸 쪼개 어려운 사회단체와 동지들을 후원했던 정 가득한 사람" 등이라고 한결같이 말한다.

일하는 이들을 찾아 아무런 말도 없이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꼭 잡아주던 이였다. 그 앞에는 신분이 없었다. 모두 똑같은 민중이고 벗이었으며 동지였다.

말보다는 현장을 누비며 민중의 고운 벗으로 웃던 그가 노무현 정권과 친자본 권력세력이 주도한 반민중적인 한미자유무역협정의 기만성에 분노했다. 민중의 탈출구가 완전히 막혀버린 노무현 시대, 허 열사는 "한미에프티에이 폐기, 노무현 대통령 퇴진"을 외치며 지난 1일 고위급협상이 한창이던 서울 하얏트호텔 앞에서 분노의 화염으로 변했다.

몸에 불이 붙어서도, 응급차에 실려가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한미에프티에이 협상중단, 노무현 사과"를 외쳤다. 그가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다 숨을 거둔 15일, 그동안 전국은 허세욱 동지 쾌유를 기원하는 촛불의 바다로 소용돌이 쳤다.

그러나 한미에프티에이를 일방 추진하던 청와대는 자국민의 안타까운 분신과 죽음 앞에서 한 마디 위로조차 하지 않는다. 국민이 빌려준 주권으로 국가라는 사회공동체를 책임지는 또 하나의 국민들은 그의 죽음을 아는 체도 안 한다.

에프티에이와 돈만을 기억하고 노리는 그들의 눈에는 허세욱이란 50대 한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겸허해하거나 슬퍼하는 빛이란 없다. 두 갈래로 갈라진 돈의 많고 적음, 권력의 있고 없음에 따라 한 국민의 죽음조차 깡그리 무시하는 집단에 대한 역겨움, 원성, 비판, 분노가 들끓고 있다.

민중의 분노가 잠을 깨고 있다. "한미에프티에이는 노무현 정권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라는 분위기를 도처에서 느낄 수 있다. 죽은 자와 산 자 모두가 갈망하는 소리들은 하나로 뭉쳐진다. "한미에프티에이타결 무효!"라는 구호에는 단결된 군중의 위력이 배어있다. 수천수만의 민중들이 하나돼 던지는 함성이다.

18일 아침 7시,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 앞, 넓지 않는 정문앞 왕복 4차선 도로는 슬픔의 정적에 젖을 것이다. 허세욱 열사와 함께 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찰 것이다. 그들의 심정에 파고 들어갈 어떤 위안도 없는 시대 속에서 그들은 허세욱 열사의 숨결을 다시 느낄 것이다.

한강성심병원 앞은 사람들과 긴급호송차량들로 분주하다. 4월의 봄이 지난 겨울을 뚫고 연두 생명들을 틔워내는 이곳에서 "허세욱을 살려내라"는 소리가 그 공간을 울릴 것이다. 낯설고 기이하게도 보이는 반민중시대를 준엄하고 비통한 낯빛으로 바라봐야 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허세욱 열사는 더욱 가깝게 달려올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또 한 번 맹세하고 다짐하며 대국민사기극에 불과한 한미에프티에이를 파묻기 위해 긴 행렬을 이룰 것이다.

한미FTA무효! 고 허세욱 동지 민족민주노동열사장은 18일 아침 7시 서울 한강성심병원앞발인을 시작으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봉천동 한독운수, 서울 하얏트호텔, 용산 주한미군기지 등에서 노제를 지낸다. 서울시청에서 추도식을, 오후 4시 마석 모란공원 전태일 열사 묘소 앞에서 하관식을 갖는다. 이날 저녁 7시부터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범국민 촛불문화제가 이어 열린다.

허세욱 열사와 민중은 한미에프티에이라는 괴물을, 노무현 정권을, 미국을 잡아당겨 넘어뜨릴 것이다. 허세욱 열사가, 민중이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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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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