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랭이기자의 더듬이수첩

‘분신’과 ‘총기난사’ 사건이 남겨준 것
패랭이기자의 더듬이수첩

‘한미FTA반대’를 외치며 분신으로 항거한 허세욱 운수노조 조합원 장례가 18일 성대히 마무리됐다. 비록 시신이 화장된 후이기는 하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많은 이들이 미래를 기약하면서 슬픔과 새로운 결의로 그를 떠나보냈다.
최근 미국 버지니아공대 한국 학생이 저지른 총기난사 사건이 국내에 충격을 주고 있다. “세상이 나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며 이제는 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다고 한다.
이 두 사건은 공히 안타까운 ‘죽음’과 결부됐고, 미국이라는 나라와 연관됐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물론 한 사건은 경악할 범죄로 연결됐고, 한 사건은 ‘열사’라는 이름으로 승화되긴 했다. 그럼에도 두 사건은 사회적으로 시대가 만들어낸 불상사라는 측면에서 정반대로 애도의 물결을 일구고 있다. 공교롭게도 미국과 한국에서 ‘촛불’ 추모물결이 뒤를 잇고 있음은 이의 반영이다.
‘분신’과 ‘총기난사’ 두 사건은 극단적인 분노와 소통구조의 부재라는 시대적인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한미FTA 체결에 따른 우려와 분노, 주변인으로의 고립과 좌절감에 따른 분노가 이를 말한다.
허세욱 열사 추모제에서 “우리가 그를 죽였다”고 읊은 송경동 시인의 토로는 분명 소통 부재의 한국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측면이 크다. 시대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FTA체결 문제로 정국이 어수선하다. 이번 두 사건이 미국에 대한 ‘한국인 정체성’ 문제로 연결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인 문화비평가 J 스콧 버거슨은 최근 펴낸 ‘대한민국 사용후기’라는 책에서 “작은 미국 되려고 용쓰는 한국이 너무 싫다”고 폄하했다. “너무나 지긋지긋하고 영혼이 죽어 버린 어떤 나라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는 J 버거슨의 한국에 대한 평가는 주목할 대목이다.
이미 “열심히 일하고 재능을 발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깨지고 있다는 보고는 수차례 지적돼 왔었다. 미국의 소득과 교육 불평등, 그리고 양극화 심화가 한국사회로 이전되고 있는 현실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의 의미는 삶을 위한 가장 강렬한 메시지일 것이다. 이번 사건들을 기화로 우리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인들에게 어떤 주체성과 정체성을 심어주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대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강상철 기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