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법 시행령, 파견과의 구분조차 안 내려진 ‘도급’

장투사업장② 외주와 위장도급에 가려진 노동자들
비정규법 시행령, 파견과의 구분조차 안 내려진 ‘도급’

‘도급’이라는 단어를 보면 왠지 찝찝하다. ‘도급’이라는 두 글자 앞에 늘상 붙는 ‘불법’ 또는 ‘위장’이라는 말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외주도 마찬가지이다. 글자 그대로 ‘외부가 주인’이라는 말이다. 한 회사에서 주인은 직원일 것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주인이 되는 외주 때문에 노동자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이처럼 외주와 (위장)도급에 가려진 장기투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도처에서 신음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KTX 외주위탁문제는 한 일례이다. KTX 여승무원들이 “철도청이 특실서비스에 한정해 외주 위탁하지 않고 KTX 객실업무 전반을 외주 위탁하는 방식으로 선발, 운영했다”며 반발해 400여일 넘게 투쟁해 온 이유는 이 때문이다.
‘도급’은 더욱 심각하다. 범위는 공식적으로 파견의 6~7배에 해당한다. 도급의 경우는 근무연수의 제한도 없다. 도급사업이란 민법 664조가 법적 근거 정도다. 하도급법이 있지만 불공정거래에 관한 내용 정도에 불과하다.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이와 관련해 “파견은 그나마 2년 이후 직접고용의무라든가 차별시정에 관한 적용 일정한 규제를 받고 있는 편”이라며 “도급의 경우 상당수 기업에서 제조업 등 파견이 불가능한 업무를 도급 형태로 위장해 인력을 활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특별한 제재가 없는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이미 500여일 넘게 투쟁하고 있는 기륭전자 사업장은, 아예 정규직으로 있던 노동자들까지 모두 사직서를 받고 그동안 헙력업체 관계에 있던 4개 회사로 각 생산부서를 도급으로 공공연히 전환한 경우다. 이처럼 정규직들도 도급으로 방치되면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할’, ‘분사’, ‘소사장제’ 등의 명칭도 도급의 대표적인 방식이다. 대우자동차판매 사업장은 ‘사업분할’을 통해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을 시도하려 한 경우다. 정규직에서 특수고용노동자로 전락할 우려마저 감돌고 있다. 회사 측은 없던 법인사업체를 새로 만들어서 조합원들을 강제로 보내려 했다. 이에 노조의 ‘근로자 지위확인 가처분’ 신청에 대해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1월 “신청인들이 대우자판 소속임”을 판결했다. “조합원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일방적 전적은 무효”라는 해석이다.
그럼에도 회사 측이 전적 불응에 대한 대가로 ‘대기발령’으로 응수하고 있어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직영 조합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50% 이상 임금이 삭감된 상태에서 지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막무가내로 전적을 강요하는 형태는 도급이 별다른 제재 없이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강요할 수 있는 제도적 사각지대 때문이다. 어떤 법적 제재나 제한조치가 없는 ‘도급’ 노동자들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19일 발표된 ‘비정규법 시행령’에서 도급과 파견에 대한 구분기준조차 제외돼 버렸다. 노동부 ‘고시’는 법적 강제력이 없지만 구분기준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김태현 정책실장은 “최근 중소사업장에서 위장도급 판결이 나타나고 있어 긍정적이다”면서 “하지만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경우처럼 대규모 사업장일 경우 판결은 다른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경우 정부의 개입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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