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구조조정=비정규직화’의 문제에 주목하자

순환산별기고_화학섬유노조②
‘산업구조조정=비정규직화’의 문제에 주목하자

800일이 넘어가는 코오롱, 900일에 이르는 GS칼텍스, 라파즈한라의 사내하청 비정규 우진산업, 단물만 빨아먹고 느닷없이 공장을 폐쇄한 외자기업 테트라팩 노동자들의 투쟁 등 화학섬유연맹 내 장투사업장은 지금 12개에 이르고 있다. 비록 하나같이 힘겹고 앞이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처지가 불행해졌기에 단순히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미로만 투쟁하지는 않는다. 이는 장투사업장 문제가 구조적인 노동시장의 문제이자 산업정책으로 연결되는 주요한 고리라는 점에 있다.
화학섬유 관련 산업에서 구조조정 문제는 이미 기업을 넘어 산업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90년대 중반에 공급과잉과 고원료가로 인한 채산성 악화, 금리부담의 삼중고로 부실화를 맞으면서 합병, 매각, 분사 등 사업구조 재편과 고용조정이라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이러한 축소지향의 급격한 구조조정은 산업기반을 무너뜨렸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정리해고 등의 고용조정과 비정규직화로 이어졌다. 국내에서 채산성이 맞지 않자 자본은 해외로 눈을 돌리기 시작해 중국, 동남아 등지에 생산기지를 설립하거나 증설을 추진했다. 단기적 이윤에만 집착하는 무분별한 해외투자의 확대는 결국 역수입 증가로 이어져 국내 섬유산업 공동화 문제로 야기되고 있다. 한미FTA 타결로 미국시장에서 관세 좀 없앴다고 생색내서 될 정도의 문제가 아닌 것은 이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의 경우도 문제는 간단치 않다. 이미 세계적인 과잉공급 구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석유화학 메이저급 자본들은 아직까지 수요성장률을 지속하고 있는 아시아, 특히 중국시장으로 이미 눈을 돌리기 시작해 중국, 중동 등지에서 대규모 석유화학산업 신증설이 이어져 왔다. 중국이나 중동의 신증설 영향은 향후 3~5년이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구나 중동의 경우 원유생산지라는 이점을 가지고 아시아 시장에 접근하고 있으며 원료부문과 범용제품 중심으로 중국 등 아시아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비용을 줄여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 이외에 기술력의 축적 등 다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국내 석유화학자본에게 범용제품마저 중국과 아시아로 집중되는 상황은 위협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중국의 내수 충족을 위한 설비가 완료돼 가동되는 2008~2010년이면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중국 시장경쟁력은 더욱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가 노동자의 고용문제로 전가돼 나타난다는 점에 심각성이 더해진다. 비용경쟁력 위주의 경쟁을 해온 한국 기업들의 관성은 구조전환 시기에도 구조고도화를 위한 노력보다는 생산입지 이전, 고용조정, 비정규직화, 저숙련과 저임노동력을 이용하는 퇴행적 시도로 이어졌다. 화학산업의 비정규직은 사내와 사외 하도급이 두루 분포돼 있는 자동차산업과 달리 주로 사내하도급구조가 주를 이루고 있는 산업특성 상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상당수를 이루고 있다. 노동부 조사에 의하더라도 화학산업 사업체 고용노동자 중 1/3 가량이 사내하도급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화학기업들은 핵심역량을 내부 인력으로 유지하고 부수적인 업무만 용역도급업체들을 활용해 왔으나, 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는 핵심고용에도 점진적인 주변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결국 산업구조조정 문제는 경쟁력을 상실한 과잉설비와 그에 따른 인력 감축 위주의 구조조정으로 정규직 인력감축과 비정규직 배치라는 비정규직화 과정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산업정책 부재는 산업 내 양극화와 왜곡된 노동시장구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적 해결 과정이 산업정책에 대한 개입력을 확대하는 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이유이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산업연관체계를 재구축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동시장과 연계된 적극적 산업정책 대안이 요구돼야 한다. 화섬이 기업을 넘어 산별노조, 특히 제조산별로 나아가려는 것은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의 적극적 개입전략을 위해 물적, 인적 토대의 마련을 시급한 과제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별 기업차원의 고용유지 전략으로는 산업구조조정이 곧바로 비정규직화로 이어지는 산업구조 변화 흐름에서 고립만 더욱 자초할 뿐이다. 노동이 배제된 자본의 일방적 구조조정 과정은 고용문제에 대한 연착륙도 허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산업구조조정=비정규직화’라는 현상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때이다.

임영국 화학섬유연맹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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