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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글거리는 햇볕아래 남녘 노동자들이 배를 건조하느라 더운 땀을 흘리고 있다. 광활한 미포만을 끼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노동의 수고를 연신 어루만져준다. 노동자들은 땀을 식혀주고 시원함을 선사하는 자연에 감사하며 작업에 열중한다. 생존을 위해 일한다. 먹고살기 위해 노동한다.

울산지역 현장대장정 길에 오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선소 노동자들을 찾았다. 울산광역시 동구 방어동 1381번지 27만평 부지에 들어선 현대미포조선. 이곳에는 2,848명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용접, 배관, 기계설비, 시운전 등 배 건조를 위해 필요한 다양한 공정을 수행하며 정규직으로, 혹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 위원장은 조선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찾아 나선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성형공장’. 열을 가해 배 굴곡부분을 만드는 곳이다. 노동자들은 물과 용접기를 양손에 들고 배 겉 부분을 이루게 될 커다란 강철판들을 오간다.

“안녕하세요? 민주노총 위원장입니다.” 손을 내미는 이 위원장에게 노동자들은 환한 웃음으로 답한다. “여러분이 계시는 곳이 바로 민주노총입니다. 여러분을 뵙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일하기 힘드시죠? 조심해 일하시고 모두 건강하십시오.” 조합원들 일터를 찾은 이 위원장의 목소리가 활기를 띤다.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철판 조각들을 가로질러 이번에는 ‘선각공장’으로 향한다. 배 내부에 들어가게 될 소블럭들을 만들고 있다. 강철판을 자르는 일에서부터 크기별로 재단하고 형태를 만들어 배 구조를 이룰 블록들을 만든다. 노동자들 귀마다에는 노란색 귀마개가 꽂아져 있다.

작업장 소음이 워낙 심한 때문이다. 조합원들을 만나려 구석구석을 살피던 이 위원장 귀에 갑자기 큰 외마디 소리가 들려온다.

“확실히 해!” 중년의 한 노동자가 “민주노총 위원장”이란 말에 정색을 하며 다시 “확실히 해야 합니다!”라고 외친다. 이석행 위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럼요, 확실히 해야지요”라고 답한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인다. 그제서야 노동자의 얼굴이 살그머니 미소를 짓더니 이내 주름살이 패이도록 활짝 웃는다.

‘도장부 브라스팅공장’에 들어서자 훅 하는 페인트와 아세톤 냄새가 스미며 순간 아찔함을 느낀다. 배 표면에 페인트를 칠하기 전 단계로, 쇳가루를 강한 압력으로 분사해 녹을 비롯해 각종 불순물들을 떨어뜨려 제거하는 것이다.

분진이 뿌옇게 앞을 가리고 숨이 턱턱 막힌다. 바닥에는 쇳가루가 두껍게 깔려있다. 허리를 숙여 바닥의 쇳가루를 손에 묻혀 만져보는 이 위원장 얼굴에 만감이 교차한다.

작은 거인, 이석행. 80만 민주노총 조합원 수장으로서, 1500만 노동계급을 이 땅 민중운동의 전위로 이끌어야 할 그의 어깨에 표현 못할 무게가 실린다.

마지막 들른 곳은 최종 배 조립작업을 하는 ‘도크’. 현대미포조선에는 도크가 4개다. 맨 먼저 엔진블록을 맞추고 순서에 따라 블록들을 조립해 합체시킨다. 과거에는 노동자가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 배 표면을 정비하다가 크레인 고장으로 추락해 사망한 일이 많았단다. 지금은 크레인 상시정비로 그런 사고가 거의 없다는 말을 들으며 바라보는 그곳, 수없이 많은 조합원들이 희생됐을 그 자리를 이 위원장은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조선소 안을 오가는 노동자들 행색은 천차만별이다. 안전모에 회색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그 위에 안전모를 쓴 노동자, 용접마스크 안에 착용하게 돼 있는 면사포처럼 생긴 내피를 그대로 쓴 채 활보하는 노동자, 용접마스크를 머리위에 올려 쓴 노동자, 얼굴이 온통 검댕과 땀으로 범벅이 된 노동자.....

그들은 용접에 몰두하다가, 혹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정다운 미소로, 혹은 손을 흔들며, 또 혹은 배 구석구석에 앉아 휴식하며 담소하는 자리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을 맞았다. 빛나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맞잡는 그들, 작업현장에서 위원장과 조합원으로 만난 그들, 그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나게 될까.

현장 순회를 마친 이 위원장은 사내식당으로 향한다. 유난히 깊이 파인 식판이 흥미를 끈다. “많이 먹는 노동자들을 위해 특별히 주문제작한 식판”이라는 하부영 울산본부장의 설명이다. 노동에 지친 노동자들의 속깊은 허기를 과연 이 식판이 채워줄 수 있을까.

돌아서서 나오는 길, 정문 앞에 퇴근차량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실어나를 차들이다. 작업복 차림의 오토바이를 탄 노동자들이 현장대장정 차량을 차례로 앞질러 간다. 하루의 피곤을 쉬고 또 다른 새날의 희망을 충전하려는 노동자들이 현장대장정과 경쟁을 벌이듯 쏜살같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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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홍미리 기자 gommiri@naver.com/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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