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냄새 나는 것이 좋아요”

사람과사람_이은진 새마을호 여승무원 대표
“사람냄새 나는 것이 좋아요”

24일 서울역 광장. 깡마른 체구에 모자를 푹 눌러쓴 이은진(35)씨. 새마을 여승무원대표로 지난 15일부터 집단단식투쟁으로 10kg이나 빠졌다. 세 딸 중 차녀로서 미혼인 그는 2005년 8월 입사했다. 채용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다가 1명이 비는 바람에 대기자로 채용이 됐다.
하지만 상황은 그에게 가혹했다. 2004년 전만 해도 정규직 TO였지만 2005년 들어서면서 비정규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급기야 작년 12월 새마을호 외주화 문제로 5일간 단식투쟁을 했다. “그때는 인터뷰에다 사진촬영 요청과 연대투쟁 방문 등으로 하루 종일 얘기를 해야 했을 정도로 힘든 줄 몰랐다”고 그는 전한다.
하지만 이번 투쟁에서는 시작하는 첫날부터 힘들었다. 천막 안에 있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장소가 너무 더워서 짜증도 났고 KTX 승무원들과 서먹서먹하기까지 했다. 그때마다 서울역 화장실이 위안거리였다. 가서 시간을 보내면서 어려움을 잠시 비켜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새마을호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정서적인 것, 사람냄새 나는 것이 좋다”며 “새마을호, 무궁화호가 점차 없어지는 것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지금 KTX와 새마을호는 요금 차이가 별로 없다. KTX를 타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KTX는 속도가 빠르고 다분히 기계적인 반면 새마을호는 좌석이나 통로가 넓은 편이다”며 “최근 바쁘지 않다면 노인이나 가족동반 등 새마을호를 이용하는 승객도 점차 늘고 있다”고 다행스러운 눈치를 보낸다.
그에게는 이번 단식투쟁의 종료가 아쉽기만 하다. 여러 차례 그를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단식투쟁 도중 가진 중앙교섭 때마다 이철 사장이 철도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났다”며 “정치적인 행보와 이벤트성 경영 마인드로 나오는 데 대해 무척 화가 났다”고 얼굴을 붉혔다.
조합원들이 집단단식 투쟁을 하게 된 데는 이철 사장의 태도변화를 염두에 뒀다. 하지만 자책이나 반성 따위는 없었다고 그는 잘라 말한다. 이철 사장이 쉬운 인물이 아니라는 생각도 그때 하게 됐다. 그래서인지 이번 투쟁을 하면서 ‘비관’만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번 과정에서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게 됐다. ‘내가 열심히만 하면 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게 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알고 들어왔느냐”는 질문이 그에게는 가장 곤혹스럽다. “어차피 비정규직이 많은 사회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노동자들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이겨야 한다’는 자신감에 대해 그는 솔직히 불안해한다. “주변에는 ‘열심히 싸워야지’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대부분 몇 수년 이상 노동운동을 해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잘 모르는 편이다. 바깥의 일에 대해 자세히 얘기하지 않을 만큼 그는 혼자서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알더라도 크게 탓하는 부모는 아닌데 걱정 끼쳐드리는 일이라 내키지 않았다”고 담담해했다. 그래서 집으로 ‘출두요구서’가 날아드는 것이 힘든 일이었다. 자신은 그나마 한 번 뿐이어서 잘 넘어갔지만 KTX의 경우는 다르다. 너무 많아서 법원 가는 일정을 잡는 것도 일이라는 것이다.
결혼할 사람과 많이 싸우기도 했다. 남친 입장은 중간을 취했지만 결국 사측의 논리와 같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제는 ‘생각이 서로 다르고 마인드가 그렇다’는 쪽으로 변해있다고 해명한다. 그에게는 남다른 경험이 있다. 2002년 영국에서 2년 반 동안 장애인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영국의 복지가 무척 부러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식견은 범상치 않아 보인다. “80년대 민주화시기만 해도 사용자나 정부가 순진해 차별도 눈에 보였고 민중은 이 점을 치고 들어갔다”며 “하지만 지금은 2~3번 이상 속이고 돌려서 또 다시 속이는 현실”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따라서 그는 노동조합의 대표인 민주노총도 이에 맞게 예전의 방식을 탈피해서 고단수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방법론에서 고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KTX 여승무원들과 많이 친해졌다는 그는 이철 사장에 대해 “사회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KTX와 새마을호 문제 잘 해결하면 이미지도 좋아질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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