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단원 인터뷰…2001년 백상예술대상 수상자, 3/26 ‘해고통지’ 배우의 꿈 접게 돼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2001)과 히서연극상 올해의 연극인상(2004) 등을 수상한 ‘짱짱한’ 국립극단 수석배우 이상직(45) 단원이 돌연 “귀농하겠다”는 뜻을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공공노조 국립극장지부 소속인 이상직 단원은 1984년 청주 상당극회에 입단하면서 연극을 시작했다. 청주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다 서울 국립극단의 연수단원이 된 것은 1993년, 1994년에는 오디션을 통해 정식단원이 됐고 현재까지 국립극단에서 인정받는 연기자로 일해 왔다. 노동과세계가 국립극장 측으로부터 해고통보를 받던 지난 3월 26일,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실의에 빠진 채 연신내동 집에서 칩거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2007년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산불’(차범석 작, 임영웅 연출) 작품에서 열연하고 있는 배우 이상직.(오른쪽)
25년간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배우의 꿈을 접고 ‘귀농하겠다’고 하는 데는 다름 아닌 ‘법인화’ 문제 때문. 이상직 단원은 “2000년초 발레단, 오페라단, 합창단이 법인화 될 때 장비와 인원, 작품 등 고용승계가 이뤄졌다”면서 “국립극단의 경우 장비, 기물을 다 버리는가 하면 극단의 (60년)전통과 역사를 부정하고 ‘해체 후 재구성’으로 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독립성’ ‘유연성’이라는 명분에 있어 법인화가 만능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울시향과 국립발레단이 법인화가 되면서 ‘나아졌다’는 세간의 평가와 관련해 그는 “발레단의 경우 발레 자체가 고급문화 수요가 있는데다 해외안무가들의 교류가 되면서 발레단원들의 기량이 급속히 향상된 데 따른 것이고, 서울시향의 경우 지휘자 정명훈 씨의 가세가 영향을 준 것으로 법인화 때문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국립극단 단원이 순환이 안 되고 ‘실력의 문제’로 삼는 데 대해 그는 “극단이 노력을 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연극은 배우 1인의 것이 아닌 공동예술이어서 배우 개인의 역량 문제로 삼는 것은 책임소재가 전도됐다는 얘기다.
국립극단의 구조적 문제도 제기됐다. 극단 운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극장장, 예술감독이 3년의 임기로 바뀌게 되는데 그때마다 기존 작품과 체계가 뒤집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전임자, 후임자간 계승발전은커녕 예술 감독과 연출가들이 개성이 강하고 개개인별 기량이 뛰어날진 몰라도 예술행정 능력은 불충분했다”면서 “히딩크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장기적 계획을 갖고 작품 이해나 분석을 통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실력이요, 중요한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예술을 상업적인 잣대로 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극장이 돈을 벌기 위해 출석과 관객수 등 외형적인 숫자로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극장이 ‘책임운영기관제’가 되면서 예술성이 사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극장이 임대비, 대관료에만 신경을 쓸 뿐 배우들이 좋은 작품을 공연하기 위해 무대에 서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국립극장이 노조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 중의 하나도 배우(조합원)들이 무대 연습기간을 ‘최소한 1주일만이라도 달라’는 요구가 내포돼있다. 배우들이 실제로 무대에서 연습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작품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그는 “명동 ‘세 자매’ 작품이 반응이 좋았는데 무대에서 일주일 연습을 해서 완성도를 높인 결과였다”면서 “국립극장 무대를 갖고 있음에도 우리 배우들은 대개 사무실 마룻바닥에서 연습하곤 했다”고 털어놨다.
△국립극장지부 예술단원들이 25일 오전11시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법인화, 불법오디션 반대"를 외치고 있다.(맨왼쪽이 이상직 배우) 사진=노동과세계
최근 법인화 문제와 관련한 ‘오디션’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지금 상시적인 ‘실기오디션’을 ‘배역오디션’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역오디션이란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을 말한다. 실기오디션은 입단 때 한 번으로 족하다는 얘기다. 그는 “1년에 한 번씩 실기오디션을 치르는 게 문제”라면서 “실기오디션을 볼 때 무대도 아닌 연습장에서 보게 하는 것도 배우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드는데 ‘재계약’이라는 수직적 관계를 이용해 젊은 단장이 단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2001년 무용단 단원 7명이 오디션을 통해 ‘춤이 다르다’고 해서 해고된 사례도 있다. 당시 수제자 파벌로 나뉘던 시대였다. 극장 측이 ‘평가’ 문제와 관련 ‘노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해 자기들만의 기득권을 지키려 한다’는 일명 ‘철밥통’ 언급에 대해 그는 “노조가 ‘쓰리아웃제’ ‘투아웃제’ 등 경고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놨지만 예술 감독들이 발의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립극단은 연간 4회의 정기작품을 올리는 것을 비롯해 60년 역사 동안 200여 편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그는 해외작품 2개를 잊지 못한다. 2001년 세익스피어 리어왕을 한국적으로 해석해 콜롬비아등 현지 교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은 ‘우루왕’과 2004~2006년 프랑스 연출가가 직접 연출한 작품 ‘귀족놀이’가 그것이다. 특히 몰리에르 ‘귀족놀이’는 2006년 파리공연 때 현지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아 한국 국립극단의 배우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그는 전했다.
1950년 단 한 개의 예술 자존심으로 출발했던 국립극장은 이제 대관, 문화탐방 등 극장장들의 실적 쌓기를 위한 ‘부대사업’에 초점이 맞춰지는 양상이다. 국립극단, 무용단, 창극단, 관현악단 등 4개 예술단체들이 설 ‘무대’가 들어설 곳도 마땅찮다. 예술감독 선임은 한국인이 아닌 ‘러시아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대사와 몸짓 등 우리 창작극을 하는데 연출가라면 몰라도 외국감독을 들여놓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면서 “2006년 책임운영기관제로 떠넘기면서 극장장들이 극장만 경영하는 마인드로 변해 극장료도 민간보다 비싸져 국립극장이 유인촌의 것인지 국민의 것인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평균연령이 40세가 넘는다는 국립극단에서 젊은 배우로 인정받는 연기자인 이상직 단원은 겸손하고 성실한 생활태도와 노력하는 연기자의 자세로 정평이 나있다. 국립극단에서 잔뼈가 굵어가며 배우로서의 기본을 다진 그가 배우의 꿈을 접고 귀농으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한국 예술의 현실이 기자의 뒤통수를 치게 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서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백상예술대상이란 ◇히서연극상이란 |
강상철기자/노동과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