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LCD 노동자 고 김주현님의 죽음과 유족들의 97일간의 외침, 잊지 않겠습니다

4월 17일 오전 9시, 아들의 시신을 영구차에 태우기 직전에 고 김주현님의 아버님은 97일간 함께 싸워온 분들에게 눈물로써 하신 말씀입니다.
 
“그동안 정말 분노할 일도 많았지만 여러분들이 있었기에 미흡하지만 명예롭게 이렇게 장례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에 다 오시지는 못했더라도 함께 싸워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현이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며 이 또한 여러분들에게 약속드립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정말 넘지 것을 각오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힘을 합하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들 결코 용기 잃지 마시고 끝까지 노동자를 위해서 노력해줄 것을 정말로.. 제가 부탁을 드립니다. 차후에 어떤 만남이 이루어질 때는 우리 그때는 웃으면서 좋은 일로만 만날 수 있기를 빌겠습니다.”
 
고 김주현님은 노동조합 조차 허용되지 않는 삼성전자에서 설비엔지니어로 공장과 기숙사를 기계처럼 오가며 하루 14~15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과 업무 스트레스, 비인간적 차별과 멸시로 인해 심한 우울증을 앓다 투신자살한 노동자입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는 ‘아들’이 1월 11일 삼성전자 기숙사에서 투신자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현 부모님은 인천 집에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천안의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내달려 왔습니다.
 
이후 유족들은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며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삼성에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삼성의 사과를 듣기까지 무려 97일이 걸린 것입니다.
 
비록 합의서를 공개하지 않는 조건이었지만 합의서에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듣기까지 무려 97일간 유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쪽잠을 자면서 있는 힘을 다해 싸웠습니다. 날마다 삼성전자 천안공장과 천안역, 서울 삼성본관(본사)과 국회, 노동부, 경찰서, 검찰청 등을 쫒아다니며 아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삼성의 부조리를 사회에 고발했습니다.
 
고 김주현님의 죽음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심각한 과로와 스트레스에 내몰려온 노동자들의 삶,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기 어려운 노동자들의 처지, 노동자의 인권과 존엄을 하찮게 여기는 거대 기업 삼성의 문제를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유족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연대를 했습니다.
반올림과 삼성백혈병충남대책위를 비롯해 날마다 빈소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고 이른 아침 천안공장앞 유족의 1인시위에 매일같이 연대한 많은 분들, 삼성본관 1인시위에 나선 어머님과 누이 곁에서 함께 끈질긴 1인시위를 한 삼성일반노조와 수많은 연대대오 분들, 함께 아파하고 싸운 삼성의 또다른 직업병 피해노동자 가족들, 장시간 근로 등 열악한 삼성의 노동환경을 질타한 국회의원, 노동부와 경찰을 오고가며 진상규명과 삼성의 처벌촉구를 위해 애쓴 법률 전문가들, 기성 언론들이 대부분 외면하는 가운데에서도 온라인상의 소식이 끊기지 않도록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연대한 수많은 네티즌들, 스물여섯 김주현님의 죽음이 남의 문제 같지 않다며 함께 슬퍼하고 싸움에 동참한 대학생 나눔문화 학생들, 삼성LCD 공장의 집회신고를 얻어내기 위해 나의 일처럼 투쟁한 민주노총 충남지역의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 매주 1회 촛불 집회를 천안역과 온양온천역 광장에서 지속해 나간 충남지역본부와 노동조합 조합원 동지들, 민주노총 삼성대책회의의 노력으로 광화문에서는 진보적 사회 인사들이 연이어 1인시위를 이어나갔고 4월 13일 전국 동시다발 공동행동이 진행되는 등 끈질긴 연대의 힘은 결국 삼성전자 대표이사로부터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삼성측의 사과 한번 받는데 97일이란 시간이 걸린다는 건 삼성이 여전히 노동자들을 우습게 여기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주현님의 장례투쟁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우리들의 싸움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삼성이 재발방지약속을 이행토록 하는 것!
백혈병을 비롯해 수많은 직업병 피해노동자들의 진상규명과 산재인정을 위한 싸움!
노동3권을 보장받고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싸움!
경쟁만 강요하는 사회에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삼성LCD 노동자 김주현님!
당신의 억울한 죽음을...그리고 사랑의 힘으로 가능했던 유족들의 97일간의 외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이종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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