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가 7월1일 오전 8시30분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출발해 아흐레 동안 400km넘는 길을 뛰고 걸어 부산까지 간다.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실장이 2차 희망버스를 준비하며 쓴 글 두 편을 <노동과세계>에 보내왔다. <편집자주>

못난 애비가 아들과 함께 희망열차85호를 탑니다

▲ 쌍용자동차 지부 이창근 기획실장. 이명익기자
“아빠, 이거 최루액이야!”

아들 녀석이 동네 목욕탕을 나서며 내게 던진 한마디다. 쌍용차 파업이 끝나고 1년 가까이 지나 2010년 여름이 시작될 무렵, 소나기가 지나간 거리에서다. 길에는 작은 물웅덩이가 생겼고 가장자리에 노란색 꽃가루가 겹겹이 띠를 이루고 있었다. 이날 아들 녀석이  던진 이 한마디는 그 후 나를 깊은 고통과 죄책감으로 밀어 넣었다.

2011년 6월 12일 오전, 비 내리는 부산 한진 중공업. 아들 녀석이랑 얼추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추적거리는 빗물에 장난을 걸고 있었다. 가슴이 뛰었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 ~ 이 아이들 이곳에 있게 해선 안되는대라는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고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그렇게 힘겹게 부산을 떠났다. 그러나 생각은 부산한진중공업에 머물렀다.

2009년 나는 파업이 끝난 직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냈다. 파업 이후 가족대책위를 맡았던 아내는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얼굴에서 고름과 진물이 흘러내릴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 얼굴을 하고선 처남 결혼식에도 갔다.

사위란 놈은 구속돼 버리고 딸아이 혼자서 얼굴이 흉물스럽게 변한 채로 다섯살배기 손자를 데리고 나타났을 때, 장인어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외동딸을 끔찍이 여겨 지금도 매일 안부전화를 하는 아버지는 그날 사위 놈을 죽이고 싶지 않았을까. 나라면 어떠했을까. 장인어른과 가족들의 마음에 씻지 못할 죄를 지어 염치가 바닥이다. 앞으로 갚을 길은 있기는 한 것일까.

또래 아이보다 인지능력과 언어능력이 뛰어나 돌 때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내 아들 주강이. 파업이 한창일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자와 피디들의 귀여움을 한 몸에 받았고 각종 언론에 노출 빈도도 높았다. 아비 마음엔 그것이 은근히 자랑이었다. 아내는 매일 천안에서 평택까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출근하다시피 공장에 들어왔다. 구속된 이후엔 면회도 아이와 함께 다녔다. 목소리만 전달되는 철창 안 단절의 벽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 여름의 최루액을 잊지 못하는 주강이를 보면서, 파업당시 4살이던 이 아이가 본 것은 무엇일까, 그 눈에 비친 광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고 방패를 들고 선 전투경찰을 봤다. 아니 올려다보았다. ‘이렇게 보였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아이에 비친 방패는 세상 어느 성보다 높아 보였고, 군화는 여느 장갑차보다 강하고 무서웠다.

이 폭력의 우산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은 사람이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아내는 아이의 고통이 자신의 책임이라며 심리치유를 할 때마다 온 몸을 짜내며 죄책감에 통곡한다. 우리는 주강이를 사랑한 것인가. 사랑했다면 이렇게 해도 됐던가. 밤마다 묻는다. 

그러나 어찌 주강이 뿐이겠는가. 영문도 모른 채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아빠를 잃어버린 어린아이들, 질풍노도 사춘기에 떠나버린 엄마가 그리워 잠 못 이루는 아이들.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 15명이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아이는 몇 명인가. 이 아이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몇 명이 생고아의 삶을 살아가는가. ‘관계의 단절’, ‘인간관계의 파괴’라는 수사  만으로 아이들의 구멍 뚫린 가슴을 설명할 수 있을까. 자본과 재벌의 탐욕 때문에 발생했던 일, 아니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라고 건조하게 말한다면, 우리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폭발 당시 가장 먼저 한 일은 사고 지역 아이들의 심리치유였다. 2009년 쌍용차 파업이라는 원전이 폭발한 뒤에 우리가 맨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나. 각자 엇갈린 명분과 입장에 숨어 총질을 해대는 뒤켠에서 아이들은 웅크리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 작년 3월16일 '노동과세계' 인터뷰에 응한 이창근,이자영 부부와 아들 이주강 군. 이명익기자
“너희들만 정신 바짝 차리고 살면 된다”는 어른들의 위로는 이 아이들에겐 외려 차가운 매질이었다. 눈물나는 사진 한 컷 찍겠다고 카메라를 이리저리 돌려대던 기자들의 노력은 어떠했을까. 아이들에게는 씻지 못할 상처를 각인하는 숭고한 디테일이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한진으로 달려가는 이유는 이러하다.

지금 그 곳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 아이들 때문이다. 내 아들 주강이와도 같고 수많은 파업 동지들과 먼저 세상을 등진 15명 동지들의 수십명의 아이들과도 같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우리 아이들 때문이다. 아이들은 보호받고 위로받고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어른들은 그렇게 아이들을 사랑할 의무가 있다. 

이 아이들과 함께 놀기 위해 우리는 희망열차85호를 출발시킨다. 한진으로 향하는 희망열차 85호는 유쾌하고 발랄하고 산듯하게 출발한다. 아이들을 위한 즐거운 프로그램을 알차게 준비해 적선이 아닌 존중, 소외가 아닌 중심인 아이들로. 그런 만남을 갖고 싶다. 우리는 한진중공업 사업장으로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싸움의 한 복판, 피폭의 현장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재벌과 정권의 비열함이 아이들의 유쾌함을 어떻게 파괴하는 지 즐겁게 놀면서 웅변될 것이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아이끼리 어른끼리 그저 ‘와락’ 껴안고 싶은 것,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다.
이제는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이다. 쌍용차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쌍용차 15명의 노동자와 가족의 죽음으로 이젠 충분하지 않은가.

아이들이 최선이며 우선이다. 이것이 아비와 어미의 마음으로 한진중공업을 지켜보는 쌍용차 노동자와 아내들의 일치된 결론이다.

주강이는 10개월째 놀이치료 중이며 아직도 버스를 잘 못 탄다. 가끔씩 경찰을 보면 4살때의 또렷한 기억을 또박 또박 내게 얘기 한다. 섬칫할 정도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한진으로 이 고통이 이어져선 안 된다. 주강이가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 그것뿐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2차 희망버스를 타야할 이유에 대하여...

▲ 지난 달 12일 희망의 버스에 탑승해던 참가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이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85호 크레인을 향해 손으로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이명익기자
요즘 꽂혀있는 노희경 작가의 에세이 제목이다. 웬 뜬금 없는 사랑타령이냐고? 이런 건 또 어떤가?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 거야 ♪♫~~”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는 노래 가사다.

6월 11일 평택에서 부산 한진으로 향하는 희망버스 안에서 떠올렸던 글귀는 노희경의 에세이였고, 김진숙이라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는 뽕짝이었다.

평전과 투쟁가는 이미 낡고 촌스러운 유물이 된 것인가? 나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아니오’다. 그런데 왜 나는 엄중하고 치열한 투쟁 한가운데서 이런 에세이와 노래가 떠올랐을까?

전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자서전 <스님은 사춘기>에서 ‘당신의 스승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받으면 늘 ‘죽음’이었다 이야기한 바가 있다. 명진스님과 같은 레벨은 전혀 아니지만 ‘나도 그런데...’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의 죽음이 벌써 15번째다. 15번째의 죽음? 이것도 거짓말일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희망퇴직자들이 2150명이나 되기 때문이다. 남은 2150명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는 것은 정말 살아있는 것일까? 그저 버티는 게 정말 사는 걸까?(이 글귀 역시 이상은의 ‘성녀’ 가사이다.) 나는 지금 통계의 거짓말을 뻔뻔하게 하고 있다.

질문은 내 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 수많은 죽음들과 반죽음들의 한복판에서 ‘조끼를 입고 있는’ 나는 책임이 없는 것일까? 죽어가고 아파하는 동지들을 위해 내가 하는 일들은 알리바이가 될 수 있을까? 이 정도 싸웠으면 원죄를 벗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나의 싸움은 많은 경우 무능하고 무력하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일까. 매일 밤마다 괴로워해야 하는가. 미안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의 부족과 태만을, 그리고 그로 인한 상처를 훌훌 털어버려야 하는가.

즐겁게 투쟁하고 기쁘게 사랑하는 것. 몸을 가볍게 하는 것, 힘을 빼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 이것이다. 살아남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그렇게 살아갈 때만이 인간의 존재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풍부화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것이 죽음이 내게 준 지침이다.

우리는 더 가벼워져야 하고 거칠어져야 한다. 머리로 관념으로만 생각하면 다리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이해관계를 중심으로만 생각한다면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다. 마음이 가는 곳, 마음이 아파하는 곳으로 한없이 걸어가 보자.

심리학자는 사랑의 원리를 해부하며, 연인들은 그냥 사랑을 한다. 우리는 심리학자인가, 연인인가. ‘크레인을 잡는다고 저렇게 버티면 결과는...’ 썰을 푸느라 지쳐버린 우리, 지금 뭘 하고 있는가. 사람이 빠진 채 ‘관계와 입장’이라는 음지에 웅크리고 앉아, 결국 평론가의 대열에 합류한 것은 아닌가.

매일매일 살아있다는 것이 신나고 즐겁던 첫사랑의 기억을 우리는 영구 캡슐에 넣어 땅속에 이미 묻었는가. 사람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우리에겐 이미 없는 것인가. 아니다. 우리는 사랑한다. 사람을 사랑한다. 그것이 누구든지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전태일 정신이 ‘인간사랑’이라 학습하지 않았던가. 운동은 결국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우리 모두 한 번씩은 말하지 않았던가.

▲ 한진중공업 행정대집행 다음 날 이었던 지난 달 28일.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조선소 밖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이명익기자
그렇다면 우리 후회 없이 사랑하자.

백주대낮 용역깡패의 질식할 것 같은 폭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한진 중공업 노동자와 그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만 있다면. 정리해고가 동지들과 가족, 더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를 철저한 파괴했던 경험에 공감한다면, “정권과 재벌의 착취시스템은 결국 한 사업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세계적으로 확대되는 경향성과 운동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사랑해야 한다. 

날라리 외부세력에 의존과 의탁으로 머물고 멈출 것이 아니라, 가벼워지고 거친 분노를 정교하게 갈아 심장과 심장에 사랑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투쟁 사업장 곳곳에서 결의대회에 앉아있는 노동자들의 줄 지어 늘어선 모습과 공장 안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서 있는 용역들과의 차이를 잘 느낄 수 없을 때가 종종 있다. 우리가 용역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혹은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은 자괴감에 빠질 때가 무척이나 많다. 꿔다놓은 보리자루 신세로 느껴진다면, 우리 좀 달라 져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집회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우리는 결의로 싸운다고 하지만, 아니다. 결국 사랑으로 싸운다.

희망버스 2차가 7월 9일 다시 출발한다. 이번엔 185대의 희망버스다.

마음을 모아보자. 잊고 지냈다면 날라리 외부세력으로부터 영감과 힌트를 얻자. 날라리 외부세력이 얼마나 가볍게 권력과 권위를 조롱하고 힐난하는가. 그것이 폭력적 권력을 무력화 시키는 유쾌함이다. 한 마리 나비의 자유로움처럼. 여전히 노동자 우리가 투쟁하고 있기 때문에 그 길로 날라리 외부세력과 레몬트리공작단이 오고 있다는 것을 잊지는 말자. 거친 길을 만들고 길을 개척하는 노동자가 있다는 것, 우리 그것을 느끼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기쁨과 슬픔은........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운명처럼
기쁨과 슬픔, 웃음과 울음은 등을 맞대고 있다.
지금 내 등 뒤는 기쁨인가, 슬픔인가!

-희망버스 1차 참가자 및 쌍용자동차지부 기획실장 이창근-

▲ 지난 달 12일 희망의 버스에 탑승했던 쌍용자동차지부 이창근 기획식장이 눈물을 흘리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를 빠져 나오고 있다.이명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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