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 여름에도 한진중공업 등에 대한 노동탄압 중단, 교사·공무원 정치기본권 보장 등을 촉구하며 23일 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임기 절반을 넘긴 김 위원장은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올해 하반기 노동자대투쟁과 민중총궐기를 성사시키기 위한 조직화에 여념이 없다. <노동과세계>가 820희망시국대회를 하루 앞둔 지난 19일 위원장을 만나 임기 절반을 맞은 소회와 중간평가, 그리고 민주노총이 추진 중인 중요한 과제들의 진행경과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주>

△위원장직 임기 절반을 넘어서는 지금 6기 지도부 중간평가를 한다면?=저는 출마 당시 투쟁과 통합을 이야기했고, 투쟁하는 민주노총, 승리하는 민주노총을 내걸었다. 내부 혁신과제인 성폭력사건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조직이 어려움을 겪었고, 고질적 정파 간 갈등으로 분열돼 제대로 투쟁하지 못했다. 결국 민주노총 위상과 투쟁력은 땅에 떨어졌다.

승리하는 민주노총을 위한 첫번째 과제인 혁신은 일회성이 아니라 임기 내내 줄기차게 진행해야 할 진보진영 기본 삶의 방식이자 운동방식이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으나, 저는 지난해 단식 때도 진보의 본성은 통합이라고 말했다. 투쟁의 기본이며 전제인 이 두 가지가 갖춰지고 주체가 마련된 후 투쟁해야 승리하는 민주노총으로 거듭날 수 있다.

제 앞에 반드시 이뤄야 할 네 가지 과제가 있었다. 성폭력보고서 채택, 수년 간 갈등의 원인이었던 상설연대체 건설이 있었고, 대중의 열망인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통해 희망을 줘야 했다. 여기에 기초해 노동자대투쟁과 민중총궐기를 이뤄내 2012년 노동이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할 과제까지다.

그동안 앞의 두 가지 과제는 어느 정도 이뤘고, 두 가지가 여전히 남았다. 부족하지만 성폭력보고서가 채택됐고 그 후속조치들이 차질 없이 진행 중이다. 이번 중앙위원회를 통해 성평등위원회가 건설될 것이다.

어렵다고 했던 상설연대체 건설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 조정하고 조열해 세상을바꾸는민중의힘(준)가 건설됐다. 민중진영 단일대오를 구축하기 위한 토대를 쌓았다. 완벽하진 않지만 민중진영이 한 목소리를 낸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다.

진보정치 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도 마지막 고비가 남았다. 이는 앞의 두 과제보다 훨씬 어려운 숙제다. 진보양당이 분열 이후 많이 가까워졌다. 분당의 원인이 된 소위 대북문제, 당내 패권문제가 있었고, 많은 이들이 화해하지 못할 거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보란 듯이 분열의 원인을 하나씩 치유하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국민참여당 문제를 둘러싸고 마지막 고비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일들이 하나씩 이뤄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 사회적 위상과 지도력도 조금씩 복원되고 있다. 또 우리 과제로 노동자대투쟁과 민중총궐기가 있다. 민주노총의 가장 본성적 활동인 투쟁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도 그 전과 비교할 때 권력을 광장으로 되돌리기 위한 가두투쟁이 시작됐고, 대오도 늘고 있다.

총점을 매긴다면 여전히 낙제를 면한 60점 수준이 아닌가 싶다. 저는 올 하반기 80점, 내년 4월 총선에서 90점을 목표로 할 것이며, 2012년 하반기 노동자대투쟁과 민중총궐기를 통해 100점 만점에 도전할 것이다.

△지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면?=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설득당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언제라도 상대방 논리나 주장에 설복당할 자세가 돼야 하고 그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설득도 중재도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설득이라기보다 지시이며 지위를 이용한 강제다.

지도자가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은 다른 의견을 가진 동지들과 함께 조직을 운영할 때 다른 사람 의견을 접수하고 설득당할 자세가 돼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일관되게 갖고 실천할 때 진정성이 드러난다.

또 언제라도 자신이 실수할 수 있다는 것, 잘못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는 늘 빠른 판단을 요구받지만, 잘못 판단한 것을 빨리 인정하고 수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 말처럼 쉽지 않고, 자기 실수나 판단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것에 익숙치않다.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누구나 능히 조직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때로 “갈짓자행보”니 “우유부단”이니 하는 말도 들었다. 그런 비판 할 수 있다고 본다. 저는 일사분란함보다 함께 모아가는 포용력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포용과 진정성에 기초하지 않은 일사분란함은 또다른 패권에 불과하다.

우리 내부의 탄탄한 통합력과 포용력을 바탕으로 기초체력을 충분히 다진 후 일사분란한 작전과 전술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미세하게나마 한 발 한 발 왔다. 상설연대체 건설이 그랬고 진보대통합이 그랬다.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진행경과, 또 국민참여당에 대한 민주노총 입장은?=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저는 지난 임기 동안 투쟁현장 조합원들을 만나는 것 다음으로 이 과제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다. 심지어 산별대표자들을 만나는 것보다 진보연석회의 회의를 준비하고 주재하는데 할애한 시간이 더 많았다. 이제 8부 능선을 넘었다.

지난해 6.2지방선거 때 진보양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많은 소회가 들었다. 민주노총 업보이고 분당을 막지 못한 우리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강기갑·노회찬 양당 대표와 제가 3자회동을 하면서 6.2선거가 끝나면 통합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강 대표는 그때 “진보신당이 통합의 ‘ㅌ’자도 못꺼내게 한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이유가 있어 갈라졌으니 통합은 안 된다고, 꿈 깨라고도 했다. 하지만 전 분명히 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1년이 지난 지금 통합은 기정사실이 됐다. 국민참여당만 아니면 지금 당장이라도 통합은 가능한 일이 됐다. 역사는 그렇게 진화한다.

국민참여당 문제는 ‘경중화급’이란 말로 비유하고 싶다. 무엇이 중요하고 선차적이고 화급한 일인지 구분하면 된다. 특히 이렇게 실타래처럼 꼬인 복잡한 일일수록 일의 앞뒤 배치를 잘해야 한다. 진보정치 대통합에서 국민참여당 문제는 필수적이라기보다 선택적 과제다.

국민참여당이 531합의에 동의하고 참여정부 시절의 실정을 성찰하는 것은 평가한다. 문제가 어려울 때는 애초 우리가 목표한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 민주노총과 진보진영이 왜 진보정치 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을 이야기했는가? 통합과 건설이다. 건설 후 통합이 아니다. 진보정치가 통합하고 그것을 기초로 외연을 확대해 새 정당 건설로 나가야 한다. 순서가 거꾸로 바뀌거나 혼선을 빚어선 안 된다.

민주노총이 왜 진보정치 통합을 요구했는가? 물론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정당이 유의미한 의석을 획득하고 우리 사회가 보다 진보적으로 나가기 위해 진보정치를 키운다는 중요한 의미도 있다. 그러나 민주노총으로서는 진보정당 분열로 인해 현장 대중조직을 분열시키고 조합원들 간 통합에 역행하는 엄청난 후과가 초래됐고, 사사건건 분열이 심화되는 결과를 맞았다.

특히 복수노조시대를 맞아 소위 정치노선의 분화가 대중조직 분열로 이어지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통합해야 한다. 그래서 대중조직이 하나로 더 크게 단결해 힘차게 투쟁하자는 것이었다. 그에 기초하면 선후차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양 정당 간 통합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성사시킨 후에, 바둑으로 치자면 2집을 낸 연후에 2칸을 뛰던 3칸을 뛰던 보폭을 확대하던 해야 한다. 2집도 못내고 어떻게 대마를 잡으러 나서는가?

민주노총은 무엇보다 진보양당 간 통합을 완벽히 실행한 후 새 정당이 국민참여당이던 다른 정치세력이던 진보진영의 품을 넓히고 보폭을 확대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총이 정치노선으로 인해 또다시 분열돼선 안 된다. 노동계급 제대로 서지 않는 곳, 노동이 무너진 곳, 노동이 황폐화된 곳에 진보정치의 꽃은 피지 않는다. 분명한 사실이다.

△820희망시국대회 의미와 그 후 계획에 대해=820희망시국대회 의미는 노동의제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편적 의제화가 된 것을 의미한다. 친재벌 반노동정책 폐기라는 노동의제가 핵심이라는 것이 이번 시국대회 의미다.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세력과 시민사회, 국민 대다수가 복지국가를 말하고 좌클릭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복지와 진보의 핵심 가치는 노동이다. 노동 없는 복지는 거짓말이며, 노동이 무너진 황폐한 땅에 진보의 꽃이 피지 않는다. 820 희망시국대회가 그것을 입증한다. 저는 임기 절반을 보낸 지금 반격해 점수를 내야 하지만 눈앞의 성과에 급급하지 않겠다. 출마 당시 공약대로, 그 전술과 전략대로 한 발 한 발 전진할 것이다. 결코 후퇴할 수 없다는 기본전제 하에 자신감과 연대의 힘을 만들어내야 한다.

지난해 우리는 불가능하다던 시청광장 전노대를 성사시켰다. 대회후 행진은 못했지만 우리는 한 발 내딛었다고 했고, 이제 열발, 백발을 내딛어 도심에서의 거리 시위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다. 노동자대회 규모 10만을 이야기한 것이 논쟁이 됐지만 이제 최소 5만 이상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올해 11월 전국노동자대회에는 세상을바꾸는민중의힘으로 대표되는 단일한 민중진영 대오와 새로운 진보정당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지난해와 다른 대회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 조합원을 비롯해 지난 시기 절망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이명박정권 4년차 절망한 자, 빼앗긴 자 다 모여라, 희망을 말하자.” 노동이 중심에 서서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무한한 자긍심을 주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자. 그 힘으로 노조법 전면 재개정 투쟁으로 나설 것이다.

△이명박정부 하에서 투쟁하는 조합원들에게=이명박정권 들어 우리 조합원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과 수모를 당하며 참혹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철도 현장에서 이제 KTX는 사고철로 전락했고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 철도와 인연 없는 경찰청장 출신 낙하산 사장은 노조를 파괴하는 데만 혈안이다.

한진, 유성, 쌍용차, 재능, 발레오 등에서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단순히 민주노조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본성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반인륜적 행위다. 장기투쟁사업장들, 민주노조를 파괴당하는 조합원들 마음의 상처가 클 것이다. 일종의 트라우마를 경험하기도 할 것이다.

부디 죽지 말고 살아서 싸우자고 호소한다. 유방의 군사인 한신이, 시비를 걸어오는 시정 무뢰배의 가랑이 밑을 기면서 후사를 도모했듯이 그런 심정으로 하루하루 버텨내야 한다.

지나온 시기보다 훨씬 중요한 시기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역사를 통해 단죄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용기를 잃지 말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자. 민주노총답게 다시 일어나 반노동정책을 심판하고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돼 새 역사를 함께 만들자.

글=홍미리기자
사진=이명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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