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식 부대변인
- 카프카의 <변신>, 사람에서 곤충으로

언론보도에 목마른 노동자, 우리들에게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소중하다. 그러나 때론 서운하기 그지없다. 이유는 언론 본연의 불편부당함 때문이고 한편으론 공공연한 당파성 때문이다. 지난 8월 8일 경향신문은 새로운 오피니언 필진을 소개했다. 그런데 이 사람, 류근일이 있다. 그가 누구인가. 대학시절 반체제 논문으로 연행되고 이철과 동지를 이뤄 민청학련 사건으로 다시 옥고를 겪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얘기다. 그는 최근까지 조선일보 주필을 지냈으며, 진보진영을 향해 섬뜩한 비난을 마다않는 극우로 변신했다. 카프카의 걸작 <변신>에 비유될만한 변신이다. 그를 경향신문은 오피니언으로 모셨다. 이유는 “진영논리”를 벗어나겠다는 것. 진영논리란 좀 찔리는 구석이 있다. 적전에서 우리 안의 오류와 모순을 드러내겠다는 게 어리석을 만큼 순진하고, 투쟁의 절박함이 없는 먹물근성인지도 모르지만, 찜찜한 게 사실이다. 어쩌면 진영논리란 ‘싸우다보면 닮아간다’는 얘기와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비판의 실증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진영논리를 벗어나겠단 경향의 선택은 넘칠 정도로 실행된 것 같다.

- 폭주 대리기사, 류근일
 
그러나 왜 하필 류근일인가? 합리적 보수가 그토록 없단 말인가? 역시 류근일의 첫 <경향논단>은 신물 나는 반북에 종북타령이다. 유려한 문체로 잔뜩 점잖을 뺐지만, 바닥의 맹목적 증오까지 감출 재주는 없어 보인다. 경향의 진영논리가 어떻고 어떤 균형이 필요한지 모르겠지만, 거의 보수와 극우가 독점한 한국의 언론환경에서 경향의 균형은 진영논리의 탈피가 아닌 ‘보수의 잠식’과 ‘진보의 불안’으로 느껴질 뿐이다. 어쩌면 경향은 내심 다른 의도였는지도 모른다. 조중동에 비할 바 아니지만, 경향은 북에 예민하고 이대근 논설위원은 그 선봉이다. 이위원은 북의 ‘3대 권력세습 비판론’을 앞세워 민주노동당과 격렬하게 대립했으며, 민주노동당을 거든 <미디어오늘>에도 “미디어 김정일인지~”라며 짜증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경향신문의 신임 편집국장으로 선출됐다. 그리곤 류근일의 등장, 뭔가 잡힌다. 류근일은 이대근 진영의 대리운전 기사? 그럼 얘기는 이렇다. 진영논리 탈피를 내세웠지만 결국은 진영논리를 더욱 억세게 강화했단 가정이 가능하다.
 
- 오직 노심
 
민주노동당과 한 통속이라는 짐작에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예의 그 진영논리는 민주노총을 향해서도 작용하고 있다. 7월 13일 민주노총의 위원장의 희망단식이 시작됐지만, 기사에는 오직 진보신당 노회찬과 심상정(노심)의 단식뿐이었다. 그나마 한겨레는 김영훈위원장의 단식을 언급하긴 했지만 사진은 역시 진보신당 노심의 단식뿐이다. 그 이후로도 줄곧 민주노총 위원장의 희망단식은 경향과 한겨레로부터 외면당했다. 한겨레가 인터뷰로 희망단식의 의미를 전달하는 성의를 보였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민주노총 소속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희망자건거 배웅도 노심이었고, 최고 대박은 민주당과 민주노총의 정책간담회를 민주당 손학규 대표의 노심방문 기사와 사진으로 둔갑시킨 보도였다. 이쯤 되면 진보일간지라는 양 신문의 진보진영 내의 편향성, 혹은 정파성이 빤히 보인다.
 
노동운동 정파의 강렬한 진영논리도 고민거리지만, 정론지이자 대중 신뢰도에서 월등한 양 진보일간지의 정파성, 진보 내의 호불호를 드러내는 은근한 편향은 매우 안타깝다. 경향노조 독립언론실천위원회는 이대근 편집국장 체제의 지면에 대해 “논쟁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을 중시하지만, 지면은 ‘선동적’일만큼 ‘의견’이 강하게 반영된 ‘의견저널리즘’으로 흘렀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진영논리에 대한 또 다른 반영이자 자각이다.
 
박성식 부대변인/ 노동과세계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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