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ㆍ비정규직없는세상을위한희망버스특별편_어머니의희망버스

▲ 6일 저녁 이소선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내려온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특별편_어머니의 희망버스'참가자들을 향해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위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이명익기자
▲ 6일 저녁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출입이 제지당한 장례대책위 위원들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영도조선소 담벼락 아래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을 향해 故 이소선 여사의 영정사진을 들어보이며 함성을 지르고 있다.이명익기자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그토록 타고 싶어 했던 희망버스를 타고, 그토록 애타게 만나고 싶어했던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났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민주사회장 장례위원회는 6일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특별편_어머니의 희망버스’를 통해 부산 영도조선소로 달려갔다. 추모객들은 영도조선소 앞에서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추모의 밤’ 행사를 갖고 조선소 담장을 사이에 둔 채 김진숙 지도위원과 크레인 중간에서 투쟁 중인 사수대를 향해 “살아서 내려오라”고 외쳤다.

추모객들은 애초 어머니 영정을 모시고 한진중공업 정문을 통해 조선소 내 85호 크레인 앞까지 갈 예정이었으나 조남호회장의 한진 사측은 전화를 모두 꺼놓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추모제를 마친 참가자들은 어머니 영정을 앞세운 채 영도조선소 정문 앞으로 향했지만 한진 사측은 회사버스와 용역을 배치해 추모행렬을 막아섰다. 경찰도 이에 합세해 용역 뒤에서 채증을 일삼았다.

정동영 의원은 “조남호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이소선 어머니 영정의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추모객들이 현장에 모여들자 약속을 어기고 관계자들 모두 전화를 꺼놓는 등 연락을 끊었다”고 전했다.

추모의밤 행사에서 윤택근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장은 약력보고를 통해 이소선 어머니가 살아온 생을 소개했다. 이어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이소선 어머니는 1970년 11월13일 아들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사망한 후 41년 간 이 땅 노동자의 영원한 어머니로 살아왔다. 청계피복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기본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었다. 노동자들의 투쟁현장을 찾아다니며 “하나가 되면 산다, 하나가 돼라”, “죽지 말고 살아서 끝까지 싸워 승리하라”며 격려했다. “당신은 우리 안에 있어요. 고마웠어요, 작은선녀.”

▲ 6일 저녁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추모의 밤' 행사에 참가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과 가족대책위 회원들이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가 그려진 판화그림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이 6일 저녁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추모의 밤' 행사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다.이명익기자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추도사를 통해 이소선 어머니의 삶과 죽음에 추모의 뜻을 표하고 민주노총의 힘있는 단결과 투쟁을 약속했다.

“살아생전 꼭 한 번 와보고 싶어하시던 어머니를 모시고 오지 못하고 영정을 모시고 내려온 우리 모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어머니, 열사 곁에 고이 잠드소서. 사랑하는 아들이 불꽃이 돼 쓰러진 지 41년 째 어머니마저 고단한 몸을 뉘십니다.

아들이 이 땅의 양심에 불을 질렀고 노동자들이 역사의 주인으로 일어섰습니다. 어머니의 호소와 발걸음이 어두운 사회에 촛불이 돼 퍼져나갔고 노동자의 어머니로 모두의 가슴에 타오르셨습니다. 황망하고 죄송스럽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던 전태일열사의 외침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은 이제 누구를 믿고 이 야만의 시대를 헤쳐나가야 합니까?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노예노동의 삶이고, 정리해고의 칼날은 모두에게 겨눠지고 있습니다. 힘있는 자들의 곳간은 차고 넘치는데, 노동자의 삶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죽지 말고 살아서 내려오라던 김진숙 지도위원은 아직 85크레인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영정을 모신 저는 죄송한 마음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민주노총이 출범하던 그날 죽은 태일이가 살아돌아온 것처럼 기쁘시다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합니다. 민주노총이 불효자이지만 싸우겠습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하나가 돼서 싸우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깊이 새기겠습니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살리고 해고자달을 살리기 위해 민주노총이 투쟁하겠습니다.

이승의 고단한 삶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가십시오. 전태일 열사 곁에서 편히 쉬십시오. 그토록 보고파하시던 당신 아들과 함께 저희를 굽어살피십시오. 노동자의 영원한 어머니, 열사 곁에서 역사와 함께 고이 잠드소서.”

박창수 열사 아버지도 추도사에서 “살아생전 오시고 싶어한 이곳에 어머니 영정을 모시고 희망버스를 타고 오니 건강이 좋지 못해 서울에서 85호 크레인을 바라보며 김진숙 지도위원과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던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안타까움을 표하고 “우리 노동자들은 단결해야 한다, 힘내라, 하나돼야 산다, 살아야 한다 죽어선 안된다, 살아서 끝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가는 곳곳마다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아들을 가슴에 품고 40년을 투쟁하며원통하고 분한 그 한을 품고 죽어가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고 애통해 한 어머니, 노동자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한다며 산자가 단결해야 한 어머니 뜻을 받아 승리의 깃발을 날릴테니 걱정 버리시고 편히 가시라”고 추모했다.

▲ 6일 저녁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린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추모의 밤' 행사에 참가한 희망버스 참가자들과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아이들이 민중의례를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 6일 오후 정동영 의원실을 통해 故 이소선 여사의 영정사진이 85호 크레인을 돌아나가는 것을 허락했던 한진중공업 사측이 돌연 이날 저녁 영정사진을 든 장례대책위 출입을 막으며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조선소 앞에서 몸싸움이 일어나고 있다.이명익기자
정동영 민주당 최고의원은 “세상의 아픈 사람들을 자식처럼 끌어안고 사신 이소선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을 떼고 “어머니께서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편지를 쓰신 일이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와 싸워야 한다, 절대 죽어선 안된다며 희망버스를 간절히 타고 싶어 하셨다”고 토로했다.

정 의원은 “7월18일 쓰러지셔서 크레인 농성 244일째인 오늘 영정이 돼서 오셨고, 오늘 낮에 조남호회장 비서실에 전화해 어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 한진을 열어달라고, 크레인을 한 바퀴 돌고 가시게 하는 것이 인륜이고 조남호회장에게도 좋은 일 아니냐고 했더니 조남호회장이 출입을 허가하라고 지시했다고 했는데 몇 분 전 85크레인에 전기가 끊겼고 간부 누구도 전화를 안받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동영 의원은 “마지막 영정으로라도 어머니에게 따님이나 마찬가지인 김진숙님이 재배를 올리는 것을 보고싶었다”면서 “추석 전까지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정기국회를 보이콧 해서라도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조남호회장의 온갖 불법비리를 파헤칠 것이며, 국민 앞에 조남호회장 무릎을 꿇게 해 어머니 한을 풀어드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성자같이 살아온 이소서 어머니가 편히 가실 수 있게 김진숙 지도위원과 네 분 노동자를 추석 전에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9월6일 현재 244일째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이에서 농성 중인 김진숙 민주노총 부사지역본부 지도위원이 전화연결을 통해 추모하는 마음을 전했다.

“희망버스 타고 가서 진숙이 만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결국 이렇게 오셨습니까? 희망버스 타고 가서 해고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한 번이라도 보고싶다고 하시던 말씀이 결국 유언이 되고 말았습니까? 어머니가 쓰러지시기 전 두 번이나 전화하셔서 여기 오시겠다는 것을 곧 내려가서 뵙겠다고 못 오시게 했던 게 이렇게 후회될 줄 몰랐습니다.

억울한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가시던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마저 싸우는 노동자들을 찾아 이 먼 곳까지 찾아오셨습니까?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20세기 말 민주화운동보상법을 마련해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과 피해 당한 사람들 명예를 회복하시겠다고 여의도에 천막을 치고 그 추우 겨울을 보내며 422일을 싸우셔서 만들어낸 법, 그 법으로 인해 제가 민주화운동유공자로 인정받고 부당해고 결정까지 받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감사드린다는 제 인사에 어머니께서 ‘니들이 또 열심히 싸우면 니들 후손들이 혜택을 보고 살겠지’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가슴을 다 내주고 이 땅 노동자들을 위해 평생을 사신 분,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건 어머니께서 살면서 나온 철학이었고 지혜였습니다. 밉고 미욱한 저희는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해 죄송스럽고 송구한 마음뿐입니다.

내려가서 뵙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병원에 계실 때만이라도 찾아뵙고자 했던 다짐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기다리시게 한 시간이 너무 길어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하시고 그렇게 가신 것을 원망도 할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이 크레인에서 싸우는 한진중공업 동지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를 가슴에 품고 사는 우리 조합원들, 다 아픈 마음입니다.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그리고 비록 다른 깃발 아래 있는 노동자들도 모두 다 같은 자식으로 품고 사신 어머니. 이제 하늘나라에서 먼저 간 아들, 배가 고프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간 아들 곁에 가셔서 이승의 고통 다 내려놓으시고 못다 나눈 이야기, 못다 나눈 정 나누십시오.

수많은 노동자들이 어머니를 기억할 것입니다. 어머니 여기까지 와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승리의 소식 전하지 못하고 이렇게 어머니를 보내 드리는 것이 정말 죄송합니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어머니.”

▲ 6일 저녁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특별편_어머니의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에 내려온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이명익기자
아들 전태일을 가슴에 품고 평생 동안 핍박받는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온 이소선 어머니 넋을 기리는 추모공연에 이어 추모제 참가자들의 헌화가 이뤄졌다.

밤 9시30분 경 부산 영도조선소 앞 추모제를 마친 추모객들은 이소선 어머니 영정을 따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244일째 농성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과 사수대 조합원들을 만나려 했지만 경찰과 한진 사측이 동원한 용역에 가로막혔다.

"이소선 어머니 영정을 모시고 갑니다, 길을 열어주십시오.", "어머니가 오셨습니다, 85호 크레인을 보시고 갈 겁니다." 추모객들의 외침이 계속됐지만 한진 사측이 동원한 용역과 경찰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조선소 담장을 따라 85호 크레인 바로 아래까지 이동해 멀리서나마 김진숙 지도위원과 사수대 동지들을 만났다. “살아서 내려와라~”, “김진숙! 박성호! 신동순! 박영재! 정홍영! 힘내세요!”, “어머니의 소망이다 살아서 내려와라!”,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박살내자!”, “웃으며 당당하게 끝까지 투쟁하자!”, “동지를 믿고 나를 믿고 끝까지 투쟁하자!”. “살아서 투쟁합시다, 살아서 투쟁합시다!”

김진숙 지도위원과 사수대 조합원들도 손전등을 흔들며 “투쟁!”으로 화답했다.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성원들과 아이들도 “진숙이이모 힘내세요”하고 외치며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조선소 담장을 사이에 두고 희망버스 추모객들과 김진숙 지도위원, 사수대는 임을위한행진곡을 부르며 서로 하나된 마음을 확인했다.

▲ 김진숙 지도위원과 함께 85호 크레인에서 244일차 고공농성을 함께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사수대 조합원들이 희망버스를 타고온 참가자들을 향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명익기자
▲ 6일 저녁 85호 크레인 보이는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담벼락 아래에서 가족대책위 소속 회원들이 244일차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진중공업 조합원들을 향해 응원의 함성을 지르고 있다.이명익기자
조선소 담장 위에는 높은 그물망이 설치돼 있었다.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들에 의하면 그물망은 조선소에서 발생하는 분진 등이 도로 쪽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크레인 농성 전부터 설치된 것이지만, 작업을 하지 않을 때는 내려놓는다고 한다. 지금은 작업을 하지 않지만 크레인을 차단해 밖에서 잘 보이지 않게 하려고 그물망을 그대로 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특별편_어머니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부산 영도조선소로 향하는 길에 경남 양산 솥발산열사묘역을 참배했다. 추모객들은 한진중공업 해고자인 윤국승 부울경열사정신사업회 회장의 인도에 따라 노동열사 곽재규의 묘, 노동해방열사 김주익의 묘, 노동열사 박창수의 묘를 차례로 참배했다.

이소선 어머니 장례식 하루 전인 6일 부산 한진중공업 앞을 비롯해 서울과 제주 강정마을, 울산, 경남, 광주 등 지역에서 추모의 밤 행사가 진행됐다.

희망버스 특별편을 타고 부산에 내려갔던 추모객들은 6일 밤 10시30분 경 다시 서울로 출발했다. 부산에 내려갈 때는 버스 2대였지만,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한진중공업지회 조합원 30명이 합류해 희망버스는 3대로 늘었다. 이소선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닷새째가 되는 7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발인제를 시작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장례식이 거행된다. 장례는 발인제에 이어 오전 10시 대락로 영결식, 청계천 전태일다리 노제를 거쳐 어머니가 사시던 창동을 경유해 마석모란공원에서 하관식을 갖게 된다.  

“아들 전태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셨던 우리들의 어머니. 이제, 편히 쉬소서.”

▲ 6일 오후 부산 한진중공업을 방문 하기 전 솥발산 민주열사묘역을 방문한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박창수 열사묘역에서 박창수 열사 아버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이명익기자
▲ 6일 저녁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내려온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버스 특별편_어머니의 희망버스'참가자 중 하나가 이소선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든 전태일 열사의 판화그림을 들고 있다.이명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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