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업튼 싱클레어 지음, 페이퍼로드, 2009.

자본주의의 가면을 들추기 위한 많은 시도가운데 업튼 싱클레어의 《정글》만큼 전체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 책도 드물다. 이 책은 1900년대 초 시카고 육가공산업의 비위생적인 실태와 임금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폭로함으로써, 미국 대통령마저 조사를 지시했을 정도로 충격을 준 고발문학의 역작이다. 실제로 1906년 2월에 책이 출간된 후 빗발치는 여론의 뭇매에 정부조사가 시작됐고, 그해 6월 식품의약품위생법과 육류검역법이 제정된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설립된 것도 이 직후이다.

당시 미국 사회가 들끓었던 이면에는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인공 유르기스가 일하는 회사 더럼은 돼지와 소를 도살하고, 남은 찌꺼기를 갖고 햄 등의 가공식품까지 만들던 대형 육가공업체이다. 책에서 묘사된 생산현장의 모습은 혐오감을 넘어 분노를 일으킨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 찌꺼기로 사육되는 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황소 비슷한 놈’이라고 불렀다. 온통 종기로 뒤덮여 차마 ‘황소’라곤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도살하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칼로 그런 소를 찌르면 얼굴에 온통 더러운 고름들이 튀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고기햄’을 ‘악마햄’이라고 불렀다. 너무 작아서 기계로 처리할 수 없는 고기 찌꺼기와 감자, 식도, 연골 등의 잡동사니들을 화학 약품으로 처리한 것이 바로 ‘불고기햄’이었다. 이 모든 엉터리 혼합물을 갈고 양념으로 버무려 흡사 대단한 무엇이나 되는 것처럼 제조했다.” 이러한 생생한 고발이 미국의 많은 독자들에게 식품위생에 대한 의심과 분노를 일으켰고 대처방안으로 법안도 마련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정작 비추려고 했던 것은 자본주의의 야만성에 의해 유린당하는 임금노동자들의 비극적인 삶이었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유르기스와 오나, 그리고 그들의 친척들이 고향을 떠나 부푼 꿈을 안고 미국 시카고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모두의 운명은 자본의 덫에 걸린 것과 다름없었다. 저자는 이들의 삶이 고된 노동과 병, 거짓말과 탐욕 등으로 산산이 부서져 나가는 과정을 핍진하게 그리면서 산업자본주의 굴레에 희생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직업을 통해 유르기스가 첫 번째로 꾼 꿈은 인간답게 살 집을 갖는 것이었다. 함께 건너온 리투아니아인들은 전 재산을 털어 할부주택에 입주하지만 고리의 이자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다. 집을 마련하고 결혼식까지 올린 유르기스와 오나가 꿈꾸었던 행복한 삶의 조건은 이후 빠르게 파괴되어 간다. 이제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정글’의 생존법칙을 깨달아야 한다. 열네 살에 불과한 소년 스타니슬로바스는 아침 7시에 나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5시 30분까지 돼지기름에 파묻혀 일을 하고 시간당 5센트의 임금을 받는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목숨을 건 노동에 시달리고 몸은 점점 허약해져 간다. 병이 나거나 다쳐 결국 사용가치를 잃은 노동자들은 직업을 잃고 만다. 꽃다운 젊은 신부인 오나는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작업반장에게 몸을 팔기에 이른다. 그들은 그렇게 인간 존엄의 마지막 희미한 불꽃까지 사그라지며 끝없는 불행의 터널에 갇힌다.
 
《정글》이 보여주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은 장소와 시대와 다를 뿐 지금도 반복되는 현실이다. 2008년 인간광우병의 위험이 폭로되며 드러난 미국 축산자본의 거짓과 권력자들의 음모 역시 인간의 생명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봐도 최저시급 4110원과 하루 300원의 식비로 살아야했던 청소노동자들에게, 명예를 훼손했다며 억대의 손배소송을 거는 파렴치한 집단이 있다. 유르기스처럼 이주노동자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수시로 임금체불을 당하고 손가락 등이 잘려나가는 산업재해에 고통당하지 않은가! 《정글》이 출간되고 10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정글’은 더욱 무성해지고 깊어졌다. 어둠처럼 깜깜한 삶의 밑바닥에 희망의 싹을 틔우기 위해서는 이 정글에 사람의 길을 내어야 한다. 수풀을 헤치고 부지런히 손잡고 걸어 한 줄기 빛을 드리워야 한다.
 
권오준(필명 라디오네) / 마포 <민중의 집> 회원. 한스미디어 출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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