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지역 브로커 안모씨 수수료명목 수십만원 갈취 “10년 간 ‘노무관리’했다”

▲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장'대표가 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양구지역 캄보디아 이주 농업 노동자 노예노동 고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한국에 온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농촌지역에서 노예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인권까지 침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일부 캄보디아 농업노동자들 증언으로 드러났다. 여성노동자들 경우 성희롱과 성폭력에도 노출됐다.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10인이 지난 7월 안산지역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을 찾았다. 강원도 양구지역에서 근무하던 이들 노동자들이 심적으로 너무나 지친 상황에서 먼 안산까지 이주민 단체를 찾아 자신들 상황을 호소한 것. 이들이 밝힌 사실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고용허가제 농업노동자 비자(E-9-4)로 입국해 강원도 양구지역에서 근무하던 이들은 인력공급 브로커 관리 하에 여러 농장으로 불법 파견돼 일했다. 이는 명백히 외국인근로자의근로등에관한법률(이하 고용허가제)과 근로기준법 등 실정법에 위반되는 고용형태다. 브로커뿐만 아니라 산업인력공단 및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 조직적 개입내지 묵인 없이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이주노동단체들 지적이다.

캄보디아 농업노동자들은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양구 일대 농장들에 ‘파견’돼 휴식시간과 휴일을 박탈당한 채 강제근로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에 의해 인신구속, 공갈이나 협박을 당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도 당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N씨와 K씨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3월 한국에 들어와 3일 간 연수를 받고 8월까지 세 곳 농장에서 일했다. 이곳 농장들은 근로계약서상 사업장이 아니었다. 이들은 8월까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사업주 얼굴을 한 번도 못본 채 일했다. 고용노동부 직원이 실제 사업주를 방문한 단 하루만 근로계약서상 사업장으로 보내져 일했다.

노동자들이 이 점에 문제를 제기하자 브로커인 안 모 씨(P 해안영농법인 유통본부장)와 파견 사용사업주는 억지와 강압, 협박으로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일하라고 윽박질렀다. 여러 농장을 옮겨다니며 일하는 과정에서 임금체불이 상시적으로 이뤄졌고,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양구지역 캄보디아 이주 농업 노동자 노예노동 고발 기자회견'에서 여는 발언을 하고 있다.이명익기자
이주노동단체들에 의하면 이 사례는 양구지역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 사건 관련자들 진술을 토대로 한다면, 현재 양구 일대에서 200여 명 이주노동자들이 여러 농장들을 떠돌며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브로커 안 모 씨는 본인이 지난 10여 년 간 이와같은 ‘노무관리’ 업무를 해 왔다고 주장했다. 10년 전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인권을 유린당한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노동을 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

이주노동자차별철폐와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공동행동은 6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양구지역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노예노동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참가자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인신구속·불법파견한 브로커를 처벌하고, 미지급된 임금을 지급하며, 인권과 권리를 침해받은 이주노동자들이 안정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사업장 변경조치하라고 촉구했다.

또 이 사건과 유사한 이주노동자 불법파견 사례가 없는지 전국 단위 실태를 조사하고 위법이 발견될 시 법에 따라 처벌할 것, 고용허가제 농·어업 분야에 대한 규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미셸 카투이라 이주노조 위원장은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사건을 통해서도 고용허가제가 이노동자들 노동권과 인권을 절대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슷한 사례들을 전했다.

“3년 전 이주노조를 찾아온 한 노동자는 애초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장이 존재하지 않았고 다른 브로커를 통해 다른 사업장에서 일해야 했으며, 오산과 수원, 부천 등에서도 브로커나 에이젼시를 통해 계약한 사업장이 아닌 다른 사업장에서 일했다는 이들을 봤다”고 말한 미셸 위원장은 “그 지역 노동센터들은 수십만원을 받고 일자리를 찾아주는 브로커들 행각을 비호하거나 묵인했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는 법을 위반해도 적발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이주노동자들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고용허가제를 반대한다”고 규탄했다.

김이찬 ‘지구인의정류장’ 대표의 캄보디아 농업노동자 사건 경과보고에 이어 박진균 천주교정부교구이주노동사목부(경기동부) 활동가는 “저는 남양주 일대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했고 오늘 발표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면서 “농촌 이주노동자들 현실은 모든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에게 닥친 문제들에 더해지는 충격적 사태”라고 고발했다.

▲ 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양구지역 캄보디아 이주 농업 노동자 노예노동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이명익기자
박진균 활동가는 “브로커들이 이주노동자들 고용을 대행하면서 사업장 이동시 40~100만원의 수수료를 요구하고, 여성노동자들은 농촌지역에서 성추행과 성폭력에까지 노출되고 있으며,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에서 배재되는 등 그들이 경험하는 착취와 어려움은 정말 크다”면서 “고용허가제 문제와 농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차원의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정원 다함께 활동가는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브로커를 없애며 잘 정착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렇게 부당한 일들이 벌어지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조차 못하게 이주노동자들을 옥좨는 것이 바로 고용허가제”라고 규탄했다.

그는 “수 차례 고용센터에 호소했지만 노동부는 공정한 조사와 시정조치를 하기는커녕 농장주와 브로커들을 비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하고 “평균 14~15시간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등 가혹한 혹사노동에 시달리는 농업이주노동자들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용하고 시정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기돈 한국이주인권센터 사무국장은 “이 시건을 접하고 고용허가제가 가장 악화돼 나타난 형태라고 생각했다”면서 “농촌지역은 계절에 따라 일의 양이 달라지는 특성이 있어 사업장 자주 변경을 해야 하지만 변경횟수 제한과 사업주 동의 없이는 안 된다는 한계가 노예노동을 가능케 한다”고 전했다.

박병원 ‘아시아의창’ 사무국장은 기자회견문 낭독을 통해 양구지역 고용허가제 농업노동자 노예노동을 고발하고 관계행정부처의 조직적 개입 의혹과 고용허가제 농어업 취업 제도 한계점을 지적했다.

박 사무국장은 “안모씨와 같은 브로커가 지난 10년 간 당당하게 ‘노무관리’ 업무를 하며 활동한 데는 산업인력공단, 고용노동부,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이주노동자 관련 행정부처와의 커넥션이나 묵시적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을 접한 후 관할고용센터에 문제를 제기하고, 관할 노동사무소에 진정서를 제출하며 진상조사와 처벌, 체불임금 지급을 요구했으나 그들은 아직까지 이 충격적 사건의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으며, 이 노동자들 사업장변경 등 시정조치도 안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박 국장은 “농어업 분야는 제조업과 달리 업종의 특성상 상시적으로 노동력이 필요치 않아 계절적 실업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데, 현행 고용허가제는 농어업에만 제한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하면서도 이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다”면서 “이는 불법파견과 같은 고용형태나 농업분야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을 이탈해 미등록 상태로 제조업 등으로 이동하게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차별철폐와인권·노동권실현을위한공동행동은 “사업장 변경횟수 제한과 같이 노동자 기본권을 근본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은 불법적 브로커들이 암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낳고 강제적 노예노동에 노동자들을 방치하고 있지만, 헌법재파소는 지난 9월29일 고용허가제 노동자 사업장 변경횟수 제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냄으로써 반인권적, 반노동적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 6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에서 열린'양구지역 캄보디아 이주 농업 노동자 노예노동 고발 기자회견'에 참가한 캄보디아 노동자 몬셰이 마오씨.이명익기자
양구지역 캄보디아 농업노동자들이 지난 7월 안산 ‘지구인의정류장’을 찾아와 자신들이 겪은 일들을 밝히면서 농촌지역 이주노동자들의 참담한 노동실태가 폭로됐다. 다음은 캄보디아 노동자 몬셰이 마오 씨가 6일 민주노총을 찾아와 기자회견장에서 밝힌 증언의 전문이다.

“내가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원래 사장은 신영호라는 사람이었다. 다른 캄보디아 노동자 11명과 함께 한국에 와보니 우리 모두의 사장이 달랐다. 우리를 데려간 사람은 안 모씨였고, 12명 각자 다른 사장이 있었다. 근로계약서상으로는 나와 다른 3명이 같은 곳에서 일할 줄 알았지만 결국 따로 흩어졌다.

원래 계약서에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하게 돼 있었다. 새로 보내진 곳에서 나는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30분이나 7시30분까지 일했다. 일한지 두 달 쯤 됐을 때 나는 다른 농장으로 바꿔야 할 상황에 처했다.

어느날 밤에 사장이 술에 취해서 내가 있던 기숙사에 들어와 맥주병을 던지며 크게 소리질렀다. 그는 내게 ‘캄보디아로 가!’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짐을 싸서 노동부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대중교통이 없었다. 일터에서 100m 쯤 떨어진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다가 사장의 친구를 만났다.

그는 ‘노동부가 먼데 거길 어떻게 가?’라며 나와 또다른 C를 차에 태워 브로커인 안 씨 집으로 갔다. 그 집에서 4일 간 일했다. 아침 6시부터 점심까지는 신발을 빨고 화장실 청소, 설거지, 방바닥 닦는 일 등 집안일을 주로 했다. 점심 때부터 저녁 7시30분까지는 하우스에 가서 쌈채소를 수확하고 옮기는 일을 했다. 허리가 많이 아팠다.

4일 간 일한 돈을 안줘서 ‘왜 안주느냐?’고 했더니 안 씨는 ‘여기 새 일을 찾으러 와서 묵고 있으니 이 집 일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바꿀 때 이 집에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다 인근 영어선생 집으로 갔다. 거기서 고추, 토마토 일(수확), 감자 캐는 일을 했다. 일이 없을 때는 다른 데 가서 일했다. 안 씨 집에 일이 있으면 거기도 갔다. 일터를 바꾸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영어선생에게 ‘일터를 바꿔주세요’ 했더니 그는 ‘안OO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안OO 씨는 ‘다른 데서 일하고 싶으면 43만원을 내라’고 했다. ID카드비용, 비자비용, 트레이닝세터에서 데려온 차비라고 했다. 나는 30만원을 줄 수밖에 없었다. 안씨는 ‘내가 사업장이동에 사인했다. 서울의 다른 농장으로 데려가줄게’ 했다.

경기도 하남의 한 농장에서 일하는 S에게 전화해서 ‘당신도 원래 사업장이 양구인데 어떻게 서울 근처에서 일하느냐?’고 물었다. S는 안OO에게 43만원을 주고 거기 갔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도 일이 힘들고 나쁘다고 했다.

나는 안씨에게 ‘서울에 안가요, 나 거기 어떤지 알아요’라고 하자 안씨는 ‘나가, 지금 당장 나가’라며 나를 몰아냈다. 나는 ‘생각해볼 시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그는 나를 쫓아내고 남편을 시켜 양구터미널로 보냈다. 사촌언니가 있는 용인으로 버스를 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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