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히스테리, 공포 등 멘탈붕괴 표현의 정수

요즘 ‘멘붕’이 유행이다. 그만큼 시대는 정신적인 영역을 부각한다. 과거에는 멘탈이 정립돼있지 못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심리적인 측면이 강조된다. 어쩌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우울한 동물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심한 우울증을 앓는다. 고령화사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종교를 떠나 지금처럼 죽음을 상상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멜랑꼴리아’가 우울증과 삶의 문제를 충격의 블랙홀로 빠져들게 한다.

제목만큼이나 멜랑꼴리한 ‘멜랑꼴리아’.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커스틴 던스턴)의 결혼식으로 시작한다. 행복해야할 신부가 이유 없이 짜증을 부리고 결혼식 분위기를 망쳐버린다. 초반부터 영화는 정말로 우울하다. 소행성의 이름인 멜랑꼴리아는 지구 충돌 궤도에 있었고 신부는 지구종말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상사에게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대놓고 할 수 있었고 사랑하는 애마와 함께 달리기를 원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잠시 지구를 스쳐 지나가는 행성이라고 단언한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며 수학적인 과학자들이 괜찮다며 떠들 때, 그녀의 언니(샬롯 갱스부르)는 안절부절 하며 강박증에 시달린다.

영화는 관찰자적 카메라의 시선으로 두 여성을 지켜본다. 이 영화의 매력은 인간의 불안과 히스테리에 있다. 재난영화가 아닌 이유다. 공포는 충돌 궤도에 있는 행성이 아니라 바로 지구에서 살고 있는 탐욕적인 인간이다. 대저택에서의 결혼식, 골프장이 있는 고가의 집이 그것이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멜랑꼴리아는 두 여성의 말초신경을 날카롭게 만든다. 우울이 극심해졌을 때 종말이 잦아든다. 감독의 천재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지구의 인간이 우울로 병들어 종말을 맞게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는 것, 라스트신은 충격 그 자체다.

영화의 도입부가 독특하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이 흐르며 영화의 프롤로그, 서막의 영상이 마치 판타지를 대변하듯 디지털 아트의 영상미를 과시하며 펼쳐진 8분이 그것이다. 아방가르드하고 패션영화 같은 서막의 장면들이 별의 충돌과 어떤 연관이 있을지, 본 영화가 시작되어도 초집중과 긴장을 놓칠 수가 없다. 리얼리티가 강한 핸드헬드 기법(흔들림이 그대로 전해지는 핸드 카메라 촬영)은 어디서도 느끼지 못했던 뭉근하고 뻐근한 강한 여운과 잔상을 각인케 한다.

제 64회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헐리우드 배우 커스틴 던스트의 과감한 노출도 인상적이다. 지구에 이상 증세가 보이면 동물들이 반응하듯, 이상한 기운에 대한 자연스러운 한 인간의 행동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지구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마 모두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할 것 같다. 우울을 완성한 이 영화의 감독 라스폰트리에는 ‘도그빌’ ‘안티 크라이스트’ 등 문제작을 내놓은 바 있다.

강상철 ksc00013@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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