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안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송경동

이 시대 저항과 투쟁의 아이콘 송경동 시인은 1967년 전남 벌교에서 출생,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활동 시작, 시집으로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과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가 있음. 천상병시상, 신동엽창작상, 민주시민언론상 등을 수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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