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노조의 길 29-

문성호 한국경찰연구소 대표

우리나라에선 조현오청장이 고문수사로 내몰았던 실적주의를 채수창 강북서장이 공개성토하다 잘려도, 고작 경찰내부망에 정권과 지휘부 비판 글을 몇 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양동열 경사가 잘려도 경찰 내부는 그저 쑥덕이는 것 외에 실제 움직임이 없다. 채수창이나 양동열 둘 다 당초부터 경찰노조를 반대하며 무궁화클럽을 어용단체로 전락시키는데 동원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아무런 시험이나 임용절차 없이 밑에서 네 단계 위 계급으로 자동 임용되어 위헌적 특혜 논란이 있는 경찰대출신들이 검찰과 수사권 다툼을 벌이며 조직적으로 일선경찰을 천여 명 씩 동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경찰대출신들은 1인시위도 마다하지 않는다. 경찰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선경찰의 자기 목소리나 경찰개혁의 주체적 움직임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지난달 영국경찰노조는 비번 경찰관 등 3만 명씩 모여 정부의 잘못된 경찰정책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비번 동원이므로 파업은 아니라고 할 것인가? 지금은 경찰 ‘노조’가 아니라 경찰연맹이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경찰을 대변하며 선출직으로 구성되어 수만 명 씩 모여 집회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대대적인 경찰파업의 성공하기도 하고 대실패도 기록한 역사가 있다. 어용노조라 일컬어지지만 오늘날 이 경찰연맹도 과거 그런 경찰파업 때문에 존재하며 실제로 이 영국 경찰연맹은 유럽경찰노조연맹에도 가맹돼 있다.

영국에서 최초의 경찰파업은 18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론 경찰노조라는 조직이 만들어진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 극도로 열악한 보수와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조직 내의 무자비한 군대식 기율이라는 노동조건과 타직종과의 보수격차, 이 두 가지 불만 때문이었다. 결국 1913년 최초로 런던경찰노조가 파면 당한 경찰관 존 자임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금세 지방조직까지 갖추고 1914년 ‘전국경찰소방노조’(NUPPO)라는 이름을 내건다.

그 당시 영국정부는 경찰을 포함하여 공무원에 대해 일반 노동자와 같은 단결권 부여에 반대하였다. 필자의 경찰학 연구를 지도해준 런던정경대학의 로버트 레이너 교수는 『경찰제복 노동자』라는 저서에서 당시 “경찰노조 조합원은 비밀로 하였으며 은밀한 방법으로 회합을 가졌다. 당시 경찰노조가 불법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노조 조합원인 게 발각되면 정직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밝혀냈다. 한마디로 지하단체였다. 하지만 경찰노조는 지지하는 일반노조 지도부가 있는 노조와 연대를 벼려나갔다.

당시 제1차 세계대전 때 경찰 보수와 노동조건은 숙련노동자급에서 농업노동자 내지 미숙련자노동자급보다 더 낮은 것으로 악화되었다. 그러자 경찰노조 조합원 급증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지도부가 전직경찰이나 퇴직경찰에서 현직으로 바뀌었으며 그중 여럿은 사회주의 운동가였다는 점이다. 마침내 1918년 늦여름 1차 경찰파업이 터진다. 여성참정권 운동가인 실비아 판크허스트는 당시 경찰파업을 “페트로그라드(현재 레닌그라드)의 영혼”이라고 환호하였다. 도화선은 1918년 8월 27일 노조지도자 틸순경 파면이었다. 경찰노조는 경찰노조 승인, 보수인상, 틸순경 복직을 내걸고 8월 29일 파업에 돌입한다. 전면적 총파업이었다. 1919년 8월 31일 런던경찰 1만 2천여 명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로이드 조지 총리는 경찰보수인상 노동조건개선 틸순경복직 세가지는 재빨리 받아들인 반면, 경찰노조승인건에 대해선 제대로 답변을 해주지 않았지만 전시에는 경찰노조를 승인할 수 없다고 했다.

완벽한 경찰노조승인이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정부 측의 대폭적인 경제적 양보조치로 경찰노조 탄압은 크게 완화되었으며 동시에 경찰노조 자체는 엄청나게 세확장을 이어나간다. 더욱이 경찰노조는 일반 노동운동에 대한 충성을 확인하고 또한 자신의 힘을 새삼 깨닫게 되자, 공개적으로 경찰노조 조합원들은 노동자 탄압을 중단하겠으며 파업분쇄를 위해 이용당하지 않겠노라고 공언도 하였다. 런던경찰노조는 매크리디 장군을 런던경찰청장으로 임명한 국무부의 독재에 맞서서 민주적 통제를 쟁취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이처럼 영국경찰파업은 흔하디흔한 여느 노동운동과 파업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국경찰노조 궤멸로 이어진 1919년 2차파업은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에서 전태일의 위상과 맞먹는 영국경찰노조의 아버지 격인 존 자임처럼 경찰노조를 추진하는 경찰이 우리나라에서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워낙 시대상황과 경찰문화의 차이가 커서 우리나라는 경찰노조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엄연히 교사와 공무원 노조가 합법화된 상황에서까지도 경찰노조의 부재는 그저 우리나라 민주주의 후진성의 증거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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