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포즈로 살고 있나요?

마흔 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김수영,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 ‘풀’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풀이 눕는다’로 시작하는 이 시에서, ‘풀’의 의미를 우리는 쉽게 ‘민중’으로 해석했고, 사람들은 그를 참여 시인으로 기억했다. 전문 시연구자들에게 김수영은 모더니스트, 독창적인 시 이론가, 뛰어난 산문가로 좀 더 다채롭게 연구되었지만, 그래도 학문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 철학자 강신주가 들고 나온 《김수영을 위하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의미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김수영의 시를 문학사적인 관점이나 비평용어로 해체하지 않는다. 책에서 김수영의 시는 시인의 삶과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보다 독자 스스로가 자신을 살피고 변화시키기 위한 도구로 느껴진다. 책 전체가 느슨한 일상에 중독되어 있는 젊은 지성을 자기 성찰로 이끄는 무대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의 프롤로그에는 대뜸 저자가 강연장에서 읊었다는 시가 등장한다.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반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관리가 우겨 대니//나는 잠이 깰 수 밖에”(시 <김일성 만세> 전문). 김수영은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장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달라진 것이 없자 이처럼 시로 비판했다. 하지만 이 맥락을 모르는 청중들의 얼굴에는 불쾌한 표정이 떠오른다. 교과서에도 실린 김수영이 지은 시라고 하자 그때서야 표정이 밝아진다. “그들 내면에 모종의 검열 체계가 작동”하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주체적 판단이 아니라 ‘반공주의’같은 강제된 사상을 비판 없이 내면화하는 개인의 수동적인 태도에 반기를 든다.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이 되는 것”이 바로 강신주가 그토록 대중강연과 책을 통해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고, 김수영은 삶과 시로서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람이었다. 김수영이 ‘김일성 만세’와 같은 시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시인에게 ‘자유’는 생명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반공포로’로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혀있으면서 자유를 유린당해야 했던 시인의 가슴 아픈 과거사가 깔려있다. 김수영은 자유의 존재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자신만의 것을 창조하고 표현”하고자 했다. 이념도, 체제도, 돈과 권력도 그에게는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오로지 자신의 언어로 ‘진정한 시’를 쓰려고 했다.
 
여기서 ‘진정한 시’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시”로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감각, 이상을 꿈꾸는 집요한 이성,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새로운 표현을” 갖춘 것이었다. 특히 저자는 김수영이 품었던 이상을 “자신만의 삶을 제대로 살아 내야 한다는 단독적인 자유의 이상”으로 파악한다. 기성의 가치에 매몰돼서는 새로운 삶도, 새로운 시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수영은 자신의 시 <달나라의 장난>에서 돌아가는 팽이를 보고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고 했던 것이다.
 
김수영의 인문정신은 “다른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서 눈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힘과 보폭으로 눈길을 걷겠다는 정신”이었다. 박인환 등, 시의 정신보다 테크닉에 빠진 당대의 모더니스트를 꾸짖고, 4.19 혁명 이후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난다며 혁명의 시인으로 거듭났던 시인, 서정주와의 ‘순수와 참여’ 논쟁에서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던 김수영은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돌고자 했다.
 
강신주는 말한다. “사람은 모두 타인의 삶을 흉내 내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내야만 한다”고. “자본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단독성을 망각하고 자신이 자본에 종속되는 상품에 불과하다고 인정하기를 원한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만의 ‘포즈’를 갖춘 사람은 타인과 불화할 수 없다고, 나름대로 진지한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가 본 지금의 현실인식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포즈로 삶을 살고 있는가? 김수영의 길들여지지 않는 자유의 정신이야말로 나태와 안정에 쉽게 빠져드는 우리를 깨울 수 있는, 흔치 않은 우리 인문학의 자긍심이고 거대한 뿌리임을 이 책은 증명해주고 있다.(《김수영을 위하여》, 강신주 지음, 김서연 만듦, 천년의 상상, 2012)
 
- 필명 라디오네 (마포 <민중의 집> 회원, 출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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