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전국공무원노동조합 사이버국장

노동과 자본은 국가와 민족을 초월했다. 신자유주의는 창조적 신자유주의까지 진화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이며 노동자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아나톨 칼레츠키 박사는 고전 자본주의(자유방임경제), 수정자본주의(케인스 경제), 신자유주의, 창조적 자본주의 시대 즉 자본주의 4.0이라고 한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 발달로 더 이상 빈부격차가 심화될 수 없어 기존의 착취 구조에서 양육구조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생산의 주체에서 소비의 주체로 변화되었으며 자본이 잉여 생산 활동에 필요한 만큼만 양육하는 구조다. 인간의 존엄성과 국가(권력) 또는 민족은 자본(돈) 앞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것들은 자본(자원)의 자유를 때로는 억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4.0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유(자발적 복종)를 최대한 보장해야 만 지속될 수 있으며, 이 자유는 인간의 근본적인 자유까지 보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 시장은 국경과 민족이 따로 없게 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비정규직(자유노동) 1,000만, 고학력청년실업자 300만, 구직포기(구직애로)자 188만 (정부자료), 싱글세대(출산거부) 450만,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 고용긴축(노동(자) 불필요) 성장 시대로 이미 진입 했다. 이는 잉여인간이며, 불필요한 노동력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죽지 않을 만큼 만 제공하는 소비의 주체에 불과 한 것이다. 이렇게 살기 싫은 노동자는 국경과 민족을 넘어 구직이 가능한 지역으로 이주하거나(신 유목민), 히끼꼬모리로 살아야 할 처지다.

과연 우리는 현재의 자본주의 맥락을 잡고 노동운동에 기인하는가를 돌이켜 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나를 구성하고 있는 지적, 물적, 행위, 주변 환경 모두를 의심해봐야 한다. 즉 인식론에 기반을 둔 자아의 식민지성(모든 권력 관계)을 점검하는 것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할 때다.

가정에서부터 점검해보자. 수억대 연봉을 받는 특별한 남성의 지휘를 가족구성원에게 강요하지 않는지, 국가 및 자본의 폭력 또는 차별에 대해서는 비난하면서 가정에서 폭력(언어적, 물리적, 가정노동 기피 등)을 자행하고 있지 않는지, 88이면서 44를 꿈꾸며 동성의 88(여성몸매 사이즈)을 격멸하지 않는지, 노동조합 활동에 성공한 극소수가 되기 위한 투쟁은 아닌지, 공교육 강화 투쟁을 외치면서 자녀교육 때문에 허덕이고 있지는 않는지...

내 안의 식민지성 부터 기존의 관념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NL과 PD 싸움이 민주주의, 진보, 사회발전, 또는 노동해방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부가 노동에서 창출되는지, 가부장제(남성중심) 사회가 남성에게 좋은 것인지, 현재를 희생하고 미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임금투쟁이 실질적인 가정 수입으로 증가하는지, 노동조합의 교섭이 마르크스가 말한 4시간 노동, 4시간 낚시, 4시간 보육 노동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

무엇이 이동하는가?

무엇이 착취되는가?

어떻게 ‘저항’하는가?

무엇이 통치의 도구가 되는가?

완전한 프레임(인식론을 기반 한 식민지성)의 탈피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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