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수/공공운수노조 전회련본부 서울지부 조직국장

제가 이우웅선생님을 처음 뵌 건 지난 4월 2일 이었습니다. 일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칼칼한 목소리와 가지런한 치아를 다 드러내며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이 인상적인 분이었습니다. 저는 공공운수노조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서울지부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열흘이 채 안된 때였고, 4.11 19대 총선후보들을 상대로 한 정책협약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습니다.

이분이 말씀하실 때마다 거의 빼놓지 않으시는 것이 근로기준법 제63조 제3호와 시행규칙 제10조 제3항, 그리고 근로감독관집무규정 68조입니다. 학교 당직기사들은 노동부의 불법적 승인으로 인해 ‘감시적노동자’로 분류되었고 때문에 최저임금을 적용한다고 해도 몇 천억에 달하는 임금체불이 발생한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이 황당했습니다. 노동부가 아무리 허술한 조직이라 해도 몇 천억의 임금체불이 발생할 정도의 불법적인 승인을 했을까? 솔직히 의문 이었습니다.
 
이우웅선생님은 전회련학교비정규직본부 감시분과위원장님이고 올해로 8년째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야간당직기사로 불립니다. 법상 ‘감시적근로자’로 분류되는 이 분은 학교와 계약관계에 있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1년 동안 단 한차례의 휴무도 없이 평일 16시간, 휴일 24시간 월 570여 시간의 장시간노동에 시달리고 계시고, 명절과 공휴일이 겹치는 날이면 근 일주일 동안 학교를 홀로 지켜야 하는 실정입니다. 적지만 최저임금은 해마다 오르고 올해부터 전면적인 주5일 수업이 시작되면서 오히려 근무시간은 더 늘어났지만 급여는 항상 제자리인 78만원입니다. 심지어 아프거나 집안에 일이 있어 쉬려고 하면 평일에는 3만원 공휴일에는 5만원의 급여를 월급에서 공제해야 하는 말도 안 되는 노동조건에 처해 계십니다.
 
이위원장님만의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 800여명의 전회련본부감시분과 조합원들 그리고 전국 만 천여명 학교당직기사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본인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용역회사가 학교와 계약이 끝나면 해고를 당하는 일이 부지기수고, 십여년 가까이 근무한 학교에서 용역회사가 바뀌었다고 나이 일흔이 넘은 노동자에게 ‘수습’이라고 월급 65만원을 지급합니다.
 
지난 5월 20일 새벽에는 강서구 K초등학교에서 9년 동안 일했던 강◯◯조합원이 쓰러지신 걸 조기축구회 총무가 발견해 응급실로 옮겨야 했던 안타까운 일이 생겼습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나쁜 일’을 겪었을 만한 위험한 사고였습니다. 이분도 평일 16시간, 휴일 24시간씩 일하면서 월급은 72만1840원을 받던 분이었습니다. 정말 분통터지는 일은 이분을 고용한 ‘삼락시스템’이라는 회사의 태도입니다. 사고가 난지 12시간이 채 안되어 병원으로 찾아와 의식이 없는 환자를 앞에 두고 보호자에게 사직서를 받아간 겁니다. 사직서를 쓰지 않으면 평일에는 3만원 공휴일에는 5만원의 일당이 급여에서 공제된다며 겁박하면서 말입니다.
 
제가 또 놀란 것은 이 사고를 대하는 우리 조합원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일상적으로 겪어선지 이 고령의 노동자들은 뜻밖에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공분을 일으킬 만한 큰일인데 무엇이 이분들의 분노를 잃게 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조직된 노동자들의 힘으로 작지만 무언가를 성취했던 경험이 없었던 까닭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침 준비하고 있었던 서울노동청 규탄 기자회견에서 이를 공론화하기로 분과위원장님과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그저, 노동청장에게 우리 얘기 한번 들어달라고, 이러이러한게 잘못됐으니 고치라고 간단하게 기자회견 한 번 하는 자리일 뿐인데, 민주노총 부위원장님의 발언에 온갖 집중을 다 하시며 그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이시던 조합원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 사회자가 악덕 용역업체에 대해 “개××들”이라고 외칠 때 그 통쾌해 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십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최저임금과 본인의 월급을 십원단위까지 기억하시는 참으로 촘촘하신 이우웅분과위원장님이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도록 열변을 토하시던 모습을 한동안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
 
두 번의 기자회견 이후에, 서울교육청의 감사관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과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두 기관이 공동으로 학교의 당직기사선생님들에 대해 전면적인 실태조사를 벌이기로 했고, 최저임금 위반사항이 밝혀지면 우선적으로 임금체불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으며, 악덕 용역회사에 대해서는 특별근로감독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평균연령 72세인 우리 어르신 조합원들에게 사기친 게 아니라면 조만간 결과가 나오겠지요.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볼 일입니다.
 
혹시 우리 민주노총 조합원들 내심 ‘연세 있으신 분들이 그나마 일자리라도 있으면 되지 뭘 더 바라시나...’라는 생각이 잠깐이라도 있었는지요... 2012년 대한민국 평균수명은 90세를 바라보고 어쩌면 우리가 그 나이가 되면 100세가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고령노동자의 노동권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시기임이 분명합니다. 이는 사람답게 살 권리와 인간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아낌없는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노동부 관료들과 법원의 판단이 몰상식해서 ‘감시적노동자’가 맞다고 하더라도, 또 체불된 임금이 실제로는 얼마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뭐 어떻습니까! 황혼녘에 동종의 일을 하면서 애환을 겪는 노쇠한 노동자들이 한군데 모여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면서,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멋진 일 아니겠습니까!
 
힘든 여건 속에서도 희망과 여유를 잃지 않으시고 ‘허허! 그래도 밤에는 내가 교장이여!’라며 너스레를 떠시는 이우웅분과위원장님의 모습은, 언제부턴가 저하고는 점점 멀어지는 ‘순수함’ ‘천진함’ ‘열정’이라는 단어를 생각케 합니다.
 
이우웅분과위원장님, 요즘 바쁜 일정으로 많이 힘드시지요? 그래도 항상 건강 잘 챙기시구요, 조금만 더 힘 내시자구요!
 
아참, 우리 지난번에 짜장면 내기 했잖아요? 기자회견할 때 몇 명 오는지... 분명히 64명 왔는데 70명 넘게 왔다고 우기시면 어떡합니까! 조만간 짜장면 한 그릇 사주세요!! 흐흐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