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자들은 피해자 왕따시키고, 회사는 부당한 압력 넣어

 현대차 아산공장 성희롱 피해자 김미정(가명) 씨에게 지난 5개월은 마치 10년 같이 더딘 시간이었다. 

  그토록 꿈꿔왔던 복직이었지만, 복직 첫 날부터 그녀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그녀는 지옥과 같은 현장에 발을 디뎠다.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는 더 큰 상처가 됐고, 마음은 곪아갔다.
1년 4개월간의 힘겨운 싸움 끝에, 지난 2월 1일 현대차 아산공장에 복직하게 된 김 씨는 지금도 현장에서 끝나지 않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노골적인 왕따, 사측의 괴롭힘, 그리고 외로움은 그녀에게 끈질긴 싸움을 강요하고 있다.
지난 5일, 아산에서 만난 김미정 씨는 “5개월이요? 전 10년 같은 삶을 살았어요.”라는 말로 이야기의 첫 운을 뗐다. 지난 5개월간, 그녀는 또 어떤 삶의 질곡을 살아내고 있었던 걸까.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도무지 끝나지 않는 싸움...현장에는 2차가해자들이 버젓이
‘왕따’와 2차 가해 등에 노출, “이 싸움,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는 지금도 복직 하루 전 날의 기분을 잊지 못한다. 복직을 하루 앞둔 1월 31일. 김 씨는 김현미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업체 사장실을 찾았다. 공장에 들어서면서 벅차오르는 기분도 느꼈다. 지난 13년 동안 일 해왔던 직장이자,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노조조끼를 입고 공장 복도를 걸었던 순간도 잊지 못한다. 지난 6개월간의 싸움을 지탱해준 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서, 그녀의 발걸음은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그녀를 흥분시켰다.
하지만 2월 1일 복직 당일. 현장에 발을 디디면서 그녀의 악몽은 다시 시작됐다. 침체된 현장, 눈 한번 마주치지 않는 기계 같은 사람들, 버젓이 그녀를 지켜보는 2차 가해자들, 그리고 외로움은 깊은 상처의 시작이었다.
“첫날 현장의 분위기는 뭐랄까, 완전히 침체된 분위기라고 할까요. 누구 한 명 ‘왔냐’라는 소리를 안 하고,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어요. 그래도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은 어렵게 다시 들어왔으니까, 말도 걸어주고 부드럽게 대해줄 줄 알았거든요. 근데 정말 단 한 사람도 쳐다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어요. 저를 뭣 보듯 보는 느낌. 그 속에서 나만 동떨어져 서 있는 느낌이 확 왔어요.”

1~2개월간 그녀를 유령 취급하던 현장은, 이 시기를 넘기며 더욱 노골적인 ‘왕따’만들기에 나섰다. 여전히 현장에 남아있는 7명의 2차 가해자들과의 생활조차 힘든 상황에서, 그들이 주도하는 현장 분위기는 심적인 상처를 남겼다. 
“드러내놓고는 안 해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정신적으로 고통을 줘요. 아무도 없이 저와 2차 가해자 둘만 마주쳤을 때, 욕을 하기도 하고요. 가해자의 아내였던 A씨는 화장실 오고가는 복도에서 둘만 마주칠 때 ‘XX같은 X’이라고 하면서 가요. 화장실이 두 칸인데, 동시에 들어가면 옆에서 ‘미친년, 미친X, 미친X...’이러고 있어요.
원래 회사에서는 2차 가해자들과 업무를 떨어뜨려놓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들을 조금씩 제 앞 라인에 세워놓더라고요. 2차 가해자 중 B씨는 조장이 돼 있었어요. 한, 두 달 정도는 아예 사람 취급도 안하다가 갑자기 돌변해서 문제를 지적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관리자가 해도 되는 일인데, 굳이 실실 거리면서 지적해요.
A씨 같은 경우는 회사에서 처음 한 20분 정도 제 앞에서 일을 시키고 떨어뜨려놓고 하면서 간을 봤어요. 잔업 시간에 들어와서 점검을 시키거나, 점검하는데 차를 닦는 일을 하더라고요. 근데 차를 닦는 척 하면서 제 앞에서 욕을 해요. 실실 웃어가면서 정신 나간 X, 그렇게 싸우고 들어와서 창피하지도 않냐, 뭐 이런 내용이에요. 요즘은 상시적으로 제 앞에서 일을 해요. 오늘도 2차 가해자 C씨가 제 앞에서 혼자 중얼중얼 거리더라고요”

 

▲  피해자 김 씨가 현대차 아산공장 앞에서 1인시위를 하는 모습 [출처: 미디어충청 자료사진]

그래서 그녀는 일하는 시간 이외의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 보낸다. 또다시 시작된 2차, 3차 가해와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 억눌린 현장의 공기는 그녀의 병을 더 깊게 했다. 5월까지였던 산업재해 치료 기간이 9월까지 연장됐고, 담당 의사는 부서나 회사를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느냐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들어가자마자 보름 조금 넘게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힘들게 싸웠고, 이겨서 들어왔으니 이제 사람들과 섞여 가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었어요. 식당까지 가려면 회사 업무차를 타고 가거든요. 그런데 차를 타도 내 옆에는 아무도 앉으려고 하지 않고, 저를 뒤쳐지게끔 해서 사람들한테 떨어지게 만들어버려요. 그리고 2차 가해자들은 제가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으면 뚫어져라 보면서 실실 웃어요. 그 사람들, 밥 숟가락은 입으로 들어가는데 눈은 저한테 와 있어요. 그러다보니 이제 식당에 못 가고, 밥을 집에서 싸다 먹은 지 4개월 쯤 됐어요. 혼자서 탈의실에서 먹어요.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휴게실은 그 사람들(2차 가해자들)이 장악하고 있어서, 들어가 앉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는 밖에 있는 화단에 혼자 앉아있어요. 점심시간에는 탈의실에 연세 드신 분들이 불을 끄고 주무시거든요. 처음에는 거기도 못 들어갔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점심시간에 그 곳에 처박혀서 가만히 숨죽이다 나와요.

처음 복직하고 한, 두 달 간은 머리가 너무 멍해서 다른 생각을 못했어요. 매일 머리가 아프고 멍해지는 거예요. 산업재해 치료 때문에 한 달에 한 번 의사와 상담을 하거든요. 의사는 자꾸 이런 식으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치유가 불가능하다고 해요. 정말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예요. 2차 가해자들만 보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너무 힘들죠.”

이 같은 상황에서도 김 씨는 여전히 자신의 일터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 추운 겨울, 아스팔트에서 농성을 하며 복직을 위해 힘겹게 싸워왔던 시간을 절대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끈질기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지만, 그녀는 예전의 삶을 되찾기 위해 꿋꿋하게 버티겠다고 이야기 한다.

“회사를 나가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어떻게 싸워서 들어온건데요. 다만 이 싸움이 꽤 오래갈 것 같다는 생각은 들어요. 그래도 꿋꿋이 버티려고요. 정신적인 싸움이라, 스트레스도 계속되겠지만 그렇다고 퇴사 할 수는 없잖아요.

 ‘무기계약직’으로 복직한 피해자, 회사는 ‘6개월 계약직’ 강요
산재로 병원가면 ‘무단결근’처리하겠다고 압력

회사 측의 부당한 압력도 그녀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김 씨는 올 초, 회사와 △2월 1일부로 피해자 원직복직 △1월 31일자로 가해자 해고 △해고기간 임금 지급 △근무환경에서의 불이익 금지와 업체 폐업 시 고용승계 △직장 내 성희롱 방지 예방 프로그램 설치 등 재발방치 대책을 약속했다. 또한 무기계약직으로의 고용형태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복직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회사 사장은 김 씨를 호출해 고용형태를 6개월 계약직으로 변경할 것을 요구했다. 2차 가해자들을 비롯한 현장의 따돌림 속에서도, ‘재발방치 대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직장 내 성희롱 방지 예방 프로그램 또한 종이쪼가리에 불과했다. 

 

▲  피해자는 2011년 5월부터 올 초까지 197일간 서울로 상경해 서초경찰서, 여성가족부 앞 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복직할 때 무기계약직 형태로 들어갔거든요. 근데 왕따도 당하고 현장 분위기에 눌려 있으니, 그 틈을 노려서 회사가 갑자기 부르더라고요. 근로계약서를 6개월 단위 계약직 계약서로 다시 쓰라는 거예요. 사원들 전체 다 썼는데 김미정 씨만 계약서가 다르면 이상하다고 하면서요.

 

특히 6개월 계약직 근로계약서 작성을 둘러싼 회사와의 싸움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6개월씩 전 사원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는 상황에서, 회사는 김미정 씨에게도 6개월마다 근로계약서 재작성을 요구하고 있다. 김 씨는 5일, 또 다시 6개월 계약직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라는 회사 측의 공지문을 받았다. 
장연구 아산위원회 부위원장은 “오늘도 사장과 만나 이야기를 했지만, 사장은 근로계약서 작성이 통상적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가 일하는 현장에 조합원도 없고, 2차 가해자들이 존재하고 있어 쉬운 조건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민주노총 충남본부와 현대자동차 아산사내하청지회, 금속노조 등은 현장 안에서의 재발방치 대책 마련을 고심 중이다. 김현미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2차 가해자들 문제와 관련해 회사 측과 직접 통화를 했고, 가해자 A씨와 피해자의 업무를 떨어뜨려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이번 주 중에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은희 민주노총 충남본부 미조직부장은 “우선 추이를 지켜본 후 원하청연대회의에 공식적으로 안건화 시키는 부분도 고려중”이라며 “또한 금속노조 여성위원회와 아산위원회, 사내하청지회, 충남본부가 같이 대책을 마련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오은희 부장은 “현재 문제는 재발방지에 합의한 회사가 이를 지키고 있지 않는 것”이라며 “피해자 보호와 관련한 부분을 확대해, 회사 측에 2차 가해 등의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아산 공장에서 14년간 일해왔던 사내하청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김미정 씨는 2년간 조장과 소장에게 반복적으로 성희롱를 당해왔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자, 피해자는 2010년 9월, 보복성 징계를 해고를 당했다.

 징계 이후 김 씨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정문 앞에서 7개월이 넘도록 1인 시위를 벌여왔으며, 2011년 5월 말부터는 서울로 상경해 서초경찰서 앞 농성을 시작으로, 여성가족부 앞에서 197일간 노숙농성을 벌여왔다.

 농성 중이던 작년 7월에는 근로복지공단에 성희롱으로 인한 ‘불안우울장애’와 ‘적응장애’로 산업재해를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 해 11월, 직장 내 성희롱으로 인한 정신질환이 업무상 재해라는 판결을 내리며 김 씨의 산재를 인정했다.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 역시 11월, 성희롱 가해자에게 ‘남여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300만원의 벌금형을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김 씨의 사건 소식이 국외로 알려지면서 국제연대 행동도 조직됐다.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작년 11월 30일, 미국 전역과 푸에르토리코의 75개 현대차 영업소 앞에서 ‘피해자 복직,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전 세계 동시다발 1인 시위를 전개했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위한 국제네트워크(WGNRR)와 국제금속노련(IMF)역시 김 씨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왔다.

 이후 피해자를 비롯한 금속노조와 현대자동차 물류담당 회사인 글로비스, 형진기업 등은 교섭을 개최하고 2011년 12월 14일, 복직에 최종 합의했다. 김 씨가 해고된 지 1년 4개월 만의 원직복직이자, 원직복직과 가해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상경투쟁을 벌인지 197일 만의 성과였다.


참세상/ 윤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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