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詩 5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정희성>
시인은 일찍이 ‘노동의 이름은 신의 이름만큼이나 신성한 것’이라는 생각을 피력한 바 있다. 삽 혹은 망치를 들고 일하는 자의 목소리는 정 시인의 시집 속에 수시로 출몰하면서 그의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기조음이 되고 있다. ‘쇠를 치면서’, ‘언 땅을 파며’, ‘눈을 퍼내며’ 따위의 표제에서 이미 이런 사실이 암시되며, ‘저문 강에 삽을 씻고’도 이런 관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시인이 노동의 세계에 강렬한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은 인간이 세계 속에서 살며 그것과 접촉하는 여러 양식 가운데서도 특히 노동의 양식이야말로 가장 진실하며 고귀한 것이라는 그의 신념에 근거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노동은 그것의 가치에 합당한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한다. 대우를 받기는커녕 가장 비천한 존재로서 부당하게 멸시되고 있다는 것이 이 시인의 판단이다. 거기에서 그의 분노와 실의가 비롯되며, 이 시인의 작품 대부분을 고통의 언어로 채우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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