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 출소 한 달 앞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

출소 한 달 앞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의 옥중서신
이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소식이 될 것 같네.

엊그제 같은데 삼년이라니 나이 먹은 만큼 지나는 속도도 빠른 것 아닐까.
징역의 일과표가 아닌 세상살이 계획들이 고민되네만 한 걸음씩 다가서다 보면 녹아들지 않을까 생각하네.무엇부터 할 것인가 몇 번을 정리해도 명쾌하지가 않네. 그래서 가벼운 책을 보면서 더위를 벗 삼고 있네.
 
접견 오는 동지들 표정이 밝지 못한 걸 보니 세상살이가 점점 더 팍팍하다는 것을 짐작할 뿐 더 묻고 싶지는 않더군. 쌍차지부는 투쟁을 확장시키는 고리 역할을 잘하고 있다 생각하네. 내부적으로는 공장 안 선거판 때문에 의견이 분분하고 있다는 소식만 듣고 있네. 노사협력부 충성과장을 뽑는 남의 집 잔치에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지 답답하기도 하고. 이번만큼은 단결을 저해하는 사견들 없이 지도부 중심으로 힘을 모았으면 하는 바램이네. 나 역시 선거에 매몰되어 청춘을 날려버렸지만 이성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선거인 것만은 분명함 아니겠는가.
 
지난주에는 울산에서 000 동지가 왔더군. 많은 동지들이 전하는 안부까지 안고 왔는데 보는 순간 그해 여름 생각들이 또렷하게 살아나더군. 친구도 작년에 4일 밤 12시에 출소했겠지. 막연히 만기가 5일이라 당일 밤 자정인줄 알았더니 4일 밤 12시가 넘으면 나간다고 하더군. 생각보다 하루 빨리 나간다 생각하니 새삼스레 크게 느껴지더라고.
 
늦은 밤이지만 우선 대한문으로 갈 생각이네. 하얀 벽에 붙어있는 22장 만장을 가슴에 옮겨 새긴 채로 말일세. 나는 이제 동지들 곁으로 가지만 우리의 절망덩어리는 언제나 녹아날 수 있을까. 복직을 눈앞에 두고 한 많은 삶을 뒤로한 철도노동자들 보면서 점점 더 피폐해져가는 우리 현실을 대비하니 분노보다 슬픔이 앞서더군.
 
요동치는 대선정국, 진보정치, 계급정당, 좌절과 무관심의 현장…… 우리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변죽 소리만 요란하다 정리해고 본질은 묻히고 싸디 싼 동정심만 정처 없이 표류하다 말겠지.
 
그래도 오늘은 모처럼 창살에 걸린 온달의 운치와 함께 벗을 불러보니 무쇠도 자를 것 같은 힘이 솟네 이것이 1% 희망이고 99%의 절망을 이겨내는 힘이라 믿고 싶네.
한 달 뒤에는 희망을 안주삼아 곡차나 한 잔 하세나. 그때까지 더위 잘 이기고 건강하길 기원함세.
 
2012. 7. 4 벗 상균
 
* 이 편지는 한상균 전 쌍용차지부장이 출소를 한 달 앞 둔 7월 4일 금속노조 김혁 단체교섭실장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한 전 지부장은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이 확정돼 형을 살고 있습니다. 김 실장은 쌍용차 파업 관련 징역 2년형을 마치고 지난 해 8월 5일 출소했습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