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두껍게 읽기! 가난을 옹호하기!

1988년 겨울, 사당동 재개발지역에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백골단과 주민들 사이에 극심한 대립으로 7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가야병원·구호내과·사당의원에 입원했다. 한 여성 연구자가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현장을 찾았다. 동네 아줌마들이 연구자 주변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여기가 완전 피바다였어, 피바다. 광주사태여. 말도 못했어요. 사람 보기만 하면 막 찔러 죽여버리고…” 그 여성연구자는 1986년부터 ‘재개발 사업이 지역주민에 미친 영향’에 대해 현장조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역주민들과 유대도 강했다. 그래서 강한 부채의식을 느꼈고, 현장에서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연구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처럼 말했다. “저는 무서워서 못 왔어요. 차마 못 오겠더라구요.” 현장을 회피했던 연구자가, 망각 속에 잊혀질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기록을 25년이라는 세월 동안 써 왔다. 그리고 『사당동 더하기 25』라는 책을 간행했다.

이 책은 ‘가난에 대한 스물다섯 해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조은 명예교수(동국대 사회학과)가 1986년부터 2011년까지 25년간 사당동 재개발 지역에서 인연을 맺은 정금선 할머니 가족을 관찰했다. 할머니 가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참여관찰(Ethnography)을 통해 ‘가난을 낳는 가난’에 대해 탐구한 것이다. 조은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빈곤의 대물림’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밝혀내려고 노력했다. 일제 강점기에 출생한 정금선 할머니 세대, 해방 전후에 출생한 수일아저씨 세대, 그리고 산업화가 본격화된 시기인 1970년대에 출생한 영주·은주·덕주 세대를 통해 해방촌에서 사당동, 그리고 상계동의 영구임대아파트에 이르는 여정의 재구성했다. 한국현대사의 시간이 서울의 가난한 공간들과 겹쳐지며, 가난한 현실에 기입되어 있는 사회적 계급의 문제를 다룬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의 시선은 냉혹하다. 그 편견은 일종의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직업의식이 약해 자주 직장을 옮기고, 폭력적인 성향으로 인해 가정에서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성적으로도 문란해 혼전 동거나 가출이 빈번하고, 범죄와 쉽게 연루된다는 주장도 있다. 현상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파헤치면 사회구조적 문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특정한 상황을 강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일하는 곳이 영세업체이거나 작업 환경이 열악해서 직장 생활이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자주 직장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가정 폭력도 가난한 사람의 문화라기 보다는 경제적 빈곤이 폭력 발생의 원인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 대한 절망은 ‘사랑을 통한 도피’를 꿈꾸게 한다. 가난한 가정의 여성들이 가출하거나, 청소년들이 동거를 하는 것도 현실의 억압에 대한 탈출구가 간절했기 때문이다. ‘몸뚱이만으로 삶을 지탱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절박하다. 그렇기에 사회적으로 금기시하는 범죄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곤 한다. 범죄는 생존을 위한 손쉬운 수단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가난한 사람의 입장에서 가난을 증언함으로써 ‘가난 두껍게 읽기’를 시도하고 있다는데 의미가 있다.
 
『사당동 더하기 25』는 『산체스네 아이들』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오스카 루이스가 쓴 『산체스네 아이들』은 멕시코의 한 가난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책에서 오스카 루이스는 “가난이란 어떤 적극적 의미까지 가지고 있어서 빈민들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구조이자, 근거이자, 방어 기제이다. 간단히 말해서 가난의 문화는 유난히 견고하고 지속적이며 대대로 전수되는 생활양식이다.”라고 썼다. 가난이 끈질긴 세대문화를 형성하면서 세대간에 전수된다는 것이 오스카 루이스의 주장이다. 가난의 대물림에 ‘가난의 문화’가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은 가난을 숙명화할 위험성이 있다. 조은 교수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해 오스카 루이스의 견해를 비판했다. 조은 교수는 ‘가난을 대물림하는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을 만드는 사회구조의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한 목소리로 강조한다.
 
맨몸으로 삶을 지탱해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 절박함은 결코 개인의 잘못된 품성이나 가난의 문화가 전수되었기 때문에 표출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태도로는 결코 가난을 강제하는 사회시스템의 제대로 분석해 낼 수 없다. 신자유주의적 세계질서와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는 선량한 개인마저도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사회구조의 폭력성을 강렬하고 절박한 몸짓으로 증언하고 있는 ‘삶의 체온계’이다.
 
오창은(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강의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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