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에서 ‘독재자의 딸’이 권좌에 오르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대중의 열망이 선거의 벽을 넘지 못한 채 꺾이면서 후유증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 회원은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그 많은 한국 분들이 그 여자를 믿고 대통령으로 뽑아준 게 정말로 믿기지가 않아요.” 하면서 “철탑에 계신 분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의 가족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정말 앞이 캄캄합니다.” 하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레 미제라블’을 관람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기의 시대상을 그린 이 영화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던져준다. 혁명의 의미, 법치주의의 허상, 진정한 박애 정신……. 무엇보다 주인공 장발장이 수없이 뇌까렸던 “Who am I?”(나는 누구인가?)라는 대사가 오랫동안 귓전을 울렸다. 대선 후유증에서 벗어나려면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보수화된 기성 세대(특히 50대)가 이번 선거에서 ‘전태일’ 대신 ‘박정희’를 선택함으로써 ‘제2의 전태일’로 살아가야 할 ‘우리의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의 꿈을 짓밟았다고 하는, 어떤 철학자의 말은 옳은 것인가?

강남에서 피자 가게를 하는 ‘중산층’ 이 아무개씨는 고민 끝에 박근혜를 선택했다고 한다. 안철수조차 포용하지 못하는 문재인보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력이 더 강고해 보여서 “아무런 기대없이 찍었다”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중산층은 공약보다는 어떤 세력이 더 안정적으로 권력을 틀어쥘 수 있는가를 먼저 보았다.

시대 상황에 걸맞게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 같은 진보적 의제들이 쟁점으로 떠오른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는 좌파의 전유물인 빨간색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교묘하게 ‘좌클릭’을 시도한 끝에 당선되었다. 복지 공약은 문재인이 상대적으로 더 나았지만 중산층에겐 믿음을 주지 못했고, 서민들의 마음도 파고들지 못했다.

어쨌든 박근혜 세력은 권좌에 올랐다. 보수 언론은 ‘공약을 잊어 버리라’며 박근혜를 압박하고 있다. 경제 위기가 심해질수록 이런 압력들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알량한 복지 공약마저 물 건너가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저들의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성향은 벌써부터 문제를 낳고 있다. 이명박 정권을 지탱해 온 공안 기관들은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자유를 옭죄는 반인권적인 행태들을 계속하고 있고 헌법재판소를 비롯한 사법부도 보수적인 판결들을 쏟아 낸다.

곧 출범하게 될 박근혜 정권이 밑천을 드러내고, 지지자들이 환상에서 깨어날 날이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대안이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 복지가 이루어진 민주화된 나라에서 인간답게 살아가길 원한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누가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그러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민주노조 사수”와 “노동자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철탑 위에서, 거리에서, 감옥에서 목숨 바쳐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노력이 소중하다. 그들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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