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이 다시금 불붙고 있다. 자국 통화가치를 절하해 수출을 늘리려는 것은 오랜 관행이지만, 이에 대한 공방이 전세계적으로 격렬하게 벌어지는 일은 최근 들어 잦아진 것이다. 그만큼 세계 각국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는 의미다.

미ㆍ일 돈풀기에 유럽ㆍ아시아 통화가치 급등

최근 환율전쟁의 원인제공은 미국과 일본이 하고 있다. 올해부터 미국은 월 850억불씩 연 1조 달러 규모로 달러를 찍어내고 있고, 새로 들어선 일본의 아베 정권은 경기침체 탈출을 위해 무제한 돈을 풀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투기자본들이 달러와 엔화를 팔거나 빌려 작년 하반기부터 안정되기 시작한 유럽 금융시장과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브릭스와 아시아 개도국 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유로화 가치가 폭등하고 엔화가치가 급락하며, 아시아 개도국들의 통화가치가 상승하고 있다.

안그래도 경기침체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유럽 국가들은 차마 미국에게는 삿대질을 못한 채 일본을 비난하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일본과 가장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독일은 총리와 재무장관까지 나서서 일본을 비난했고, 유럽연합은 “유로존이 환율 전쟁의 피해자가 될 것”이라며 우는 소리를 하고 있다.

일본도 할 말이 많다.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위기로 인해 국제투기자본들이 유로화를 투매하고 엔화로 갈아타면서 ‘경제는 나쁜데 엔화가치는 높은’ 최악의 상황을 수 년 간 겪어왔기 때문이다. 유럽의 비난에 대해 일본은 “지금의 상황(달러당 90~95엔 수준의 엔화가치)을 엔저라 할 수 있나?”라고 반발하며 돈 풀기를 거둘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독일에 대해서는 “왜 미국에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느냐”, “너희는 마르크화 대신 유로화 쓰면서 지난 10년 넘게 엄청난 환차익을 거두지 않았냐?”며 맹공을 퍼붓고 있다.

국제적 조정 어려워.. 이전투구 지속

국제적 조정도 어렵다. 최근 열린 G7, G20 회의들에서는 “환율을 정책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공동성명이 발표됐으나, 일본은 지금의 정책이 “(환율이 아닌) 경기침체와 디플레 탈출이 목표”라고 오리발을 내밀고 있고, 미국은 그러한 일본의 입장을 지지했다. 국제적 조정이 어렵게 됐으니, 남은 것은 ‘경쟁적 통화절하’ 뿐이고, 환율 전쟁은 계속 격화되어 갈 전망이다.

환율은 상대적인 것이다. 모두가 돈을 찍어내 환율,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절하하면 절대적 통화량만 늘어날 뿐 환율은 그대로가 되며, 절대적 통화량 증가는 물가 상승을 부추기게 된다. 자기만 살겠다고 몸부림치다 공멸하게 된다.

‘고환율 보조금’ 사라진 수출 재벌.. 제발로 설 수 있나?

어쨌건, 환율 전쟁이 격화되면서 한국 경제도 더 이상 ‘고환율’ 정책을 지속하기 어려워졌다. ‘고환율 정책’은 외환위기 이후 이 나라 수출 재벌들을 살린 핵심 요인 중 하나로, 국민의 주머니를 털어 수출 재벌들에게 몰아준 보조금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15년 넘게 고환율로 국민 돈을 털어먹던 수출 재벌들은 이제 다시 “과연 제 힘으로 설 수 있는지”를 시험받게 됐다. 그래서인가? 국제 투기자본은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투매하고 빠져나가고, 위기의 징후를 경고하는 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한선범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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