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문제 해결 여부는 미래 한국사회를 가름하는 시금석이다”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쌍용차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시민사회 대표들이 집단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득중 수석부지부장을 비롯한 조합원 7인,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대표자 등 총 12인이 대한문 앞에서 집단 단식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단식농성 엿새째인 9월 15일 <노동과세계>가 대한문에서 단식농성자들과 하루를 보내며,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쌍용차지부 박호민 조합원,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민주시민으로서 함께 단식을 하는 신영철 씨, 목포에서 올라와 하루 동조단식에 나선 강정자 씨를 만나 쌍용차 문제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편집자주>

▲ 단식 6일차 오전 대한문에 나가기 전 단식자들이 천막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와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가 대한문에 나가기 전 천막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 서울광장 한켠에 천막 2동을 이어 설치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단식자들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15일 이른 아침 대한문으로 향한다. 추석을 앞둔 휴일 아침 대중교통은 평일에 비해 한산하다. 그래도 바쁜 일상에 쫓겨 아침 잠을 포기한 채 휴일 근무를 하러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양복을 갖춰 입은 이들도 눈에 띈다.

아침 9시 경 대한문 앞. 쌍용차지부 조합원 2명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단식자들은 조금 있다가 10시부터 나올 거에요.”

서울광장 한쪽 끄트머리 프라자호텔 쪽으로 흰색 천막을 2동 쳐서 단식농성자들이 취침과 휴식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천막으로 다가가자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가 비닐 덮게 한쪽을 들어 입구를 만들고 있다. 인사를 하고 천막에 들어갔다.

단식자들은 앉거나 누운 자세로 책을 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일기를 적는 이들도 있다. 천막 안에는 곱게 갠 침낭과 가방들이 가지런히 놓였고, 중간에는 비옷과 농성자들의 옷가지들이 걸려있다. 신문과 책, 물병 등 천막농성장에서 으레 보는 물건들.

오늘 서울광장은 아침 일찍부터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로 꽉 메워졌다. 마라톤 대회가 있어 트레이닝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시상식을 진행하는 마이크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박호민 쌍용차지부 조합원(40세)이 부스럭거리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 단식 엿새 째, 14끼니를 굶은 그의 얼굴이 많이 초췌하다. 몸에 있는 영양분들이 거의 빠져나가고 기운이 없어질 때다.

▲ 박호민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사진=노동과세계
“몸이 좀 어떠세요? 기운 많이 없으시죠? 몇 번 째 단식이세요?”

“작년 11월 김정우 지부장 단식할 때 새누리당 앞에서 쌍용차지부 조합원 십 수명이 6일 간 동조단식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갑작스럽게 결정하고 단식에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함께 하는 분들이 단식방법을 공유하고 도와주는 분들도 많아서 견딜 만 해요. 우리 김정우 지부장은 혼자 41일 간 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리는 서로 뒷받침도 해주고 그러니까 덜 외롭고 아직 괜찮아요.”

“사실 우리가 굶는 게 뭐 중요한가요? 이렇게라도 해서 희망을 만들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노동자가 이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외치는데 정부와, 쌍용차는 대답조차 없어요. 우리가 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본에게 묻고 싶어요.”

무급휴직자 400여 명이 공장에 복귀했다. “4년 만에 공장에 들어가니까 라인 노동 강도가 굉장히 세졌다고 해요. 적은 인원에게 높은 생산량을 강요하는 거죠. 돌아서면 차가 또 들어온대요. 사람을 더 충원하라고 요구해도 회사는 안 들어주고 몸은 너무 힘들고 그러니까 잔업이나 특근을 안 하기도 한대요. 신입사원을 뽑은 지 10년 가까이 돼요. 회사는 오로지 생산목표만을 달성하려고 하고 노동자들은 힘들어서 못 따라가는 거죠.”

박호민 조합원은 2001년 8월 쌍용차 평택공장에 입사했다. 조립 2팀 체어맨 라인 의장부에서 일하다 중간에 도장팀으로 옮겼다. “이렇게 오래 싸우게 될지 생각 못했어요. 지난해 대선에서는 쌍용차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솔직히 기대도 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런 심정이었죠. 새누리당에는 기대를 안했지만 여야 모두 말로는 문제해결에 나서겠다고 했으니까요. 허탈했어요. 노동자와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아요.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지 9개월이 지났고 이제 곧 명절인데 쌍용차 문제 만이 아니라 현대차 비정규직을 비롯한 70여개 투쟁사업장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어요.”

박호민 조합원은 미혼이다. 부모님 이야기를 묻자 금새 눈이 촉촉해지며 부모님 가슴이 숯검뎅이가 다 됐을 거라고 말한다. “2001년 입사해서 기숙사에 있다가 2006년부터는 아파트에 들어갔고 부모님은 마산에 사세요. 2009년 파업에 들어간 것도 말씀 안 드렸는데 들어갔겠거니 추측을 하셨대요. 말려도 안들을 걸 아시니까 이제는 좋은 결과가 되길 바라신다고 하세요. 이번에도 단식 직전에 집에 갔는데 다른 사람 단식하는 거 돕느라고 추석에 못간다고 하고 왔어요.”

▲ 쌍용차지부 조합원들과 민주노총, 연대단체 대표자들이 5년 간 싸워 온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단식을 잇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우리가 단식을 하니까 연대동지들이 많이 와서 같이 동조단식을 해요. 어제도 30여 명이 와서 저녁 7시30분까지 있었어요. 저는 그분들이 단식을 안하면 좋겠어요. 미안하고 죄송해요. 우리가 단식하는 거 다른 사람들이 봐도 안타깝잖아요. 똑같이 저도 죄송하고 미안하고... 고맙죠.”

박 조합원이 대한문 앞으로 나갔다.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단식에 나선 노동자들은 평일에는 오전 8시부터, 주말과 휴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개조로 나뉘어 6명씩 돌아가며 대한문 앞을 지킨다. 평일에는 대한문 앞 매일미사와 문화제 등이 진행되는데 그런 행사가 있을 때는 단식자 전체가 함께 한다. 단식자들 개인별로 차이가 있으나 이제 체력이 소진되는 시기인 만큼 내일부터는 3개조로 나눠 1시간씩 교대하기로 했다.

환절기인데다 거리에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다 맞고 먼지와 바람 속에서 24시간 활동하다보니 감기에 걸린 사람도 있고, 혈압약을 먹는 단식자도 여럿이다.

▲ 자신을 자영업 노동자라고 불러달라는 민주시민 신영철 씨. 사진=노동과세계
신영철 씨(52세)가 대한문 분향소가 있던 화단 앞 한 평 정도 공간에 마련된 쌍용차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신 씨는 2011년 7월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 단식 때도 함께 동조단식을 했고, 지난 여름 대한문 앞에서 벌어지는 인권탄압을 규탄하며 최헌국 목사가 단식을 할 때도 9일 간 같이 곡기를 끊었다.

그는 2012년 4월 초 이곳 대한문에 쌍용차 분향소가 마련되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7월까지 있다가 강원도 홍천 집으로 돌아가 가끔씩 이곳을 찾았고 지난 3월 3일 대한문 분향소 방화사건이 터지자 그날부터 다시 오가다가 4월 4일 분향소 침탈 이후에는 늘 이곳에서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저는 쌍용차 문제가 새벽 쯤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침해가 높이 떠오르기 직전인 거죠. 그렇지 않으면 경찰도 이렇게 지나치게 한다는 건 그만큼 압박을 많이 받는다는 거 아니겠어요? 조만간 정치권과 정부, 사측에서 안을 내놓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사회가 정상이 아니에요. 전세난도 지금 굉장히 심각하잖아요. 몇천만원씩 올리라고도 한다는데 그걸 갚으려고 도둑질은 해도 저항할 줄은 몰라요. 누가 장롱이랑 세간 청와대 앞에 국회 앞에 갖다놓고 노숙이라고 하면 정치권이 그냥 있지는 못할 걸요. 보수언론도 그렇구요.”

신영철 씨는 자신을 ‘자영업 노동자’로 불러 달라고 말한다. 그는 강원도 홍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일하는 환경이나 조건이 임금노동자와 별 차이도 없어요. 소득도 얼마 안 되는데 사장이랍시고 사용자 행세를 하려는 경우가 많죠. 때로는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경영자들보다 더 오만하기도 해요.”

그는 자신도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지만 부동산 중개업이 부동산버블에 기여한 바가 크다고 지적한다. “저는 부동산이 국공유화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공유화해서 집 한 채씩 무상분배를 하고 관리비만 내고 살면 되잖아요. 전남 누구는 집이 2500채를 가졌다고 해요. 부동산 중계업이 잘되고 부흥하는 사회는 문제 있는 사회에요. 사회가 유동적이라는 걸 반증하는 거고 그건 전반적인 사회 불안을 전제로 하니까요.”

오늘은 일요일인데다 며칠 간 계속 쏟아지던 비도 오랜만에 그쳤고 쾌청한 초가을 날씨여서 그런지 대한문 앞이 유난히 붐빈다. 가족단위 나들이객도 많고 관광객들도 많다. 덕수궁 앞에서는 늘 하는 수문장 의식 말고도 무슨 전통문화 행사가 열리는지 옛날 옷을 입고 가마를 맨 사람들도 즐비하다.

단식자들은 물을 많이 마시기 때문에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한다. 화장실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낮에는 시청역과 바로 옆 던킨도너츠 매장으로 가는데 밤이 문제라고 한다. 다행히 프라자호텔은 24시간 이용할 수 있어 밤에는 그리로 간다. 이제는 호텔 벨보이들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친다.

▲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 사진=노동과세계
천막에 가보니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45세)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쌍용차 투쟁이 그동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특히 대한문에 분향소를 설치한 후 시민의 힘으로 사수했죠.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수준의 탄압이 가해지고 있어요. 쌍용차 동지들이 얼마 전 단식을 검토할 때 저는 적극적으로 반대했어요. 오랜 노숙과 장기투쟁으로 건강이 좋지 않고 몸 상태들이 말이 아니거든요. 그 어려움들을 스스로 알거니까 단식을 하기로 한 결정은 존중해야죠. 기왕에 결정했으면 해고자들이 가진 계획과 목표를 최대한 달성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제가 같이 단식하기로 했어요.”

정 부대표는 2011년 겨울 희망버스 기획단의 일원으로 부산구치소에서 석 달 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당시 처우개선과 국가권력에 대한 불복종의 의미로 단식투쟁을 벌였다. “1주일 단식하고 1주일 쉬고 또 1주일 단식하고 그러다보니까 출소하게 되더라구요.”

“민주노총 내 투쟁의 의미를 잘 아는 상근간부들이 자신감을 가지면 좋겠어요. 희망버스에도 조직 지침을 따르는 차원에서든 자신의 결정으로든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민주노총 틀 안에서 잘 구현되지 못했어요. 지금 민주노총 지도부가 직선제를 앞두고 있는데, 쌍용차 투쟁 등 힘든 투쟁 과정에서 조합원들 스스로 힘을 모으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조합원들이 이 투쟁의 의미를 잘 알 수 있게 하고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홍보를 잘 해 주세요. 민주노총이 큰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민주노총 내에서부터 쌍용차 등 주요 노동현안을 둘러싸고 조합원들이 결집하고 공감대가 확산해야 국민 여론도 달라지고 공감대도 얻을 수 있어요.”

“사실상 일상의 삶을 잃어버린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있어요. 이제라도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꼭 필요해요. 이 사태를 몰고온 이들이 모든 죄를 씻지는 못해도 그나마 최소한 인간의 도리를 다해야 돼요. 쌍용차 문제는 단지 노동운동만의 문제가 아니죠. 한국사회가 새로운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는 길로 가느냐, 아니면 이명박근혜로 이어져 양극화가 심화되고 우리 사회가 나락으로 떨어지느냐의 시금석입니다.”

▲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 사진=노동과세계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산책을 마치고 천막으로 들어온다. 몸 상태를 물으니 “지극히 정상”이라며 웃는다. 원래 혈압이 높아 163 정도였는데도 이 부위원장은 평소 혈압약을 먹지 않았다. 어제 인의협 의사들이 왔을 때 혈압을 재니 148로 떨어졌다.
 
“혈압이 높았는데 떨어지고 있어요. 당연한 일이고 다행이죠. 혈당도 정상이에요. 그냥 기운이 좀 없는 정도에요. 밤에 잘 때 모기가 많아서 여기저기 막 물렸어요. 차소리가 굉장히 크지만 고단해서 그런지 잠은 잘 와요.”

이상진 부위원장은 2007년 화학섬유연맹 부위원장일 때 테트라팩 노동자들과 함께 스위스·스웨덴 원정투쟁을 갔고 거기서 26일 간 단식농성을 했다. 당시 처음 가서 한 달 간은 언론과 연대단체를 조직했고, 우리나라로 치면 산업자원부인 NCP의 중재를 이끌어냈다. 그때 이상진 부위원장을 비롯한 원정투쟁단은 한국 공장 폐쇄가 기정사실화된 어려운 상황에서도 단식 중 테트라팩 스위스 본사에서 회장까지 만나는 등 나름의 성과도 만들어냈다.

이상진 부위원장은 코오롱 정리해고자다. 2005년 2월 해고된 후 지금까지 햇수로 9년째 정리해고 철회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고 보니 단식은 다 다른 노동자들 현안으로 했고, 내 문제로는 2006년 청와대 앞에서 코오롱 동지들과 4일 간 단식한 거 밖에 없네요. 그래도 죽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코오롱 동지들이 16명이나마 남아서 싸우며 저항하는 게 든든해요.”

“아이들요? 당연히 보고 싶죠! 명절도 앞뒀는데... 우리 아들이 5학년인데 축구선수잖아요. 부산아이파크 프로축구팀 산하 유소년축구팀 주장이에요. 딸도 고1, 중3 그런데 집에 여자들만 있고 집사람도 먹고 살려고 식당을 하고 그러니까 많이 힘들죠. 큰 딸이 사춘기인데다 아들도 챙겨야 하고, 일은 고되고 손님들 있으니까 감정노동도 해야 되고, 모든 집안 살림을 다 도맡아서 혼자 해야 되고... 저까지 집에 없으니까 많이 미안하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단단식에 그는 어떤 마음으로 나섰을까. “이젠 정말 끝내야 합니다. 햇수로 5년 째에요. 우리 사회 정리해고 문제에서 가장 많은 이슈를 만든 투쟁이죠.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었고 그 가장 중심 축에서는 노동문제의 전면적 방향이 개편돼야 한다고 했지만 다 거짓이었어요. 후보들은 고용이 지켜져야 한다고, 일자리가 창출돼야 한다고 말했지만, 질 좋은 일자리에서 노동자들을 대거 내쫓았어요.”

“정리해고 사업장 태반이 흑자였고, 적자도 한 해 한시적 적자 정도에요. 그나마 회계를 조작하고 대기업 대부분은 다 힘 있는 로펌을 끼고 2중장부 만들어 노조 뿌리를 뽑는게 관행이 됐어요. 법의 잣대는 말랑하고 정리해고에 관대하잖아요. 2중장부나 회계조작 같은 전문성이 필요한 심리를 법원이 제대로 못 다룬다는 게 이미 드러났어요.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무분별한 정리해고를 규제해야 합니다.”

“쌍용차 투쟁은 여러 지류들이 만들어낸 의미 있는 투쟁이에요. 국가폭력이 합법파업을 공권력으로 무력화시키고 자본은 손배 등으로 그 탐욕을 드러냈어요. 자기네 잘못을 적반하장으로 노동자에게 덮어씌우고... 그런 문제들이 다 녹아있어요.”

“우리 노동자들은 어떤가요?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사회안전망이 없어 결국 대리운전 등을 해서 먹고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구조가 없어서 중산층이 극빈층으로 전락하고 24분이 죽는 환경이 된 거에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평택시가 일자리를 알선한다고 했지만 누구도 그렇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알선받지 못했잖아요. 싸울 수밖에 없는 거죠. 해고 자체가 부당하니까요.”

▲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단식에 나선 노동자들이 단식 엿새 째를 맞았다. 사진=노동과세계
▲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2009년 5월 파업에 돌입한 후 정리해고를 막아내자고 함께살자고 외치며 투쟁을 벌여왔다. 사진=노동과세계
“쌍용차 해고사태 이후 공장에서 노동강도가 높아졌다고 해요. 지금은 특근이나 잔업도 조합원들이 안 한대요. 너무 힘들고 피곤하니까 주말에라도 쉬고 싶은 거죠. 이는 곧 회사가 정상화됐다는 반증이기도 해요. 코란도C가 인기가 좋아서 예약도 많이 들어오고 그런대요. 내년에 출시될 SUV 차종은 이미 중국 등 해외에서 신청하는 물량도 많다고 하구요.”

“얼마 전 외부 자동차행사 모터쇼에서 이유일 사장이 2015년까지 무급휴직자를 모두 복직시키겠다고 공식적으로 말했대요. 해고자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어요. 해고자 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 해고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시인하게 되는 거죠. 저는 우리 해고자들이 스스로 해고의 탈을 벗고 주홍글씨 낙인을 떨궈내고 복직하는 그런 흐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가 시혜를 베푸는 그런 모양새가 아니구요.”

이상진 부위원장은 지난해 말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아 수 개월 간 조직 내부를 추스르는 일을 했다. “민주노총 조직 내부가 정확한 노선과 방향과 정체성, 투쟁성을 담보하지 못하니 계급대표성을 갖지 못해요. 조직 자체가 혼란스러운 게 당연한 일이죠. 많은 이들이 자기중심적 의제에 매몰되고 자기 정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느라 그 속에서 투쟁의제는 묻혀버리고 갈등은 증폭돼요.”

“어떻게 민주노조운동을 바로 세워 강화하고 발전시킬지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합니다. 총노선과 민주노총의 미시적 거시적 과제를 추스르고 조직발전전략을 만들어 공론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 과정 속에서 차근차근 준비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새로운 민주노총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본은 늘상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이윤을 남기고 늘리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해요. 자본주의체제를 극복하고 이후 대안체계를 만들기 위한 이야기들이 민주노총 내부에서 끊임없이 나오고 전체 운동사회에서 공론화돼야 합니다.”

서울광장 천막에서 이상진 부위원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대한문 앞으로 이동하는데 대한문 앞에 있다가 교대하러 이동하는 조희주 노동전선 대표를 만났다. 조 대표가 다시 발길을 돌려 <노동과세계>를 대한문 앞으로 데려가며 말한다.

“목포에서 어제 밤에 와서 찜질방에서 자고 오늘 종일 동조단식을 하는 분이 있어요. 저 분 좀 취재해봐요. 저녁에 가라고 했는데도 오늘 밤까지 있을 거라고 자꾸 그래요.”

▲ 목포에서 달려와 쌍용차 사태 해결을 위한 투쟁에 하후 동조단식으로 힘을 실어준 강정자 씨. 사진=노동과세계
단식자들 뒤에 한 여성이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인사를 하고 민주노총 <노동과세계>라고 하니 “노동과세계 잘 알아요. 늘 잘 보고 있어요”라고 한다. 목포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한다는 강정자 씨(67년생). 그는 쌍용차 77일 점거파업 때부터 당시 민주노동당 목포시당 성원들과 함께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 연대하러 왔고, 그 후 희망텐트, 철탑농성 등 투쟁에도 적극 함께 했다. 그는 버스 시간만 10시간 이상 되는 거리인 목포에서 쌍용차 단식농성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왔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그동안 안 해 본 거 없이 다 했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돼 정말 안타까워요. 제가 85년에 운동을 시작했는데 90년대 이후에는 노동자들 죽음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싸우는 것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여러 정부들을 거치며 민주화가 됐다고 하지만 그 속에서 노동은 배제돼 있었어요.”

강 씨는 참된 민주주의의 완성은 노동자가 주인이 되고 노동자가 대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죠. 하지만 노동자는 여전히 죽고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어요. 보육교사로서 제가 늘 돌보는 아이들도 나중에 커서 다 어떤 형태로든 노동자로 살 겁니다. 사무직노동자던 생산직노동자던 공무원노동자던... 지금 노동자들이 행복하지 못하면 그 아이들이 자라서 노동자로 살 때 행복할 수 있을까요?”

“미래의 노동자들이 행복하려면 지금 노동자들이 행복해야 돼요. 모든 부모들, 모든 어른들은 자기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거에요. 시험 잘 보고 다른 아이를 지치며 경쟁해서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구요.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노동자가 연대하고 싸워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제대로 서야 전체 민중운동진영이 제대로 설 수 있어요. 저는 이번 민주노총 선거에 관심을 갖고 후보들 유세와 동영상도 찾아봤어요. 요즘도 민주노총 홈페이지를 매일 들어가 보고 있어요. 민주노총은 그런 막중한 책임과 사명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낮 시간 볕이 따가워 대한문 앞 단식자들은 우산을 펴서라도 해를 가려야 했다. 저녁 시간이 되자 시원한 바람도 조금씩 분다. 아까부터 단식자들 옆에는 여성들이 모여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다. 그 속에는 어린 아이도 놀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저희는 ‘이어붙이는 농성장’이라는 팀인데요, 12월까지 함께 뜨개질을 해서 제주 강정마을을 덮으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강정마을의 나무와 돌을 따뜻하게 감쌀 거에요. 집에서도 하는데, 여기서 또 하는 건 대한문과 밀양 등 여러 사람들의 연대하는 마음을 강정으로 모이게 하려는 거에요.”

나무 목공예 작업을 하는 사람, 화가, 활동가들, 강정마을에서 온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이어붙이는 농성장’ 팀을 이룬다. 이들은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가 있을 때 뜨개질 작업을 해서 이어붙여 분향소를 감싸줬다.

▲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주재하는 대한문 앞 매일미사가 9월 15일 161일차를 맞았다. 사진=노동과세계
오후 6시가 가까워오자 대한문 앞에 미사 준비가 시작된다. 확성기가 설치되고 깔개가 놓인다. 미사에 참석하려는 신자들과 눈에 익은 연대단체 성원들이 차츰 모여든다. 강정에서 봤던 한 활동가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고 간혹 이야기도 한다. “이곳 대한문에서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단식을 벌인지 오늘로 6일째가 됩니다. 함께 하려고 합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합니다. 쌍용차 하루 속히 해결되길 바랍니다. 조금 있으면 미사가 진행됩니다.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쌍용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과 이 땅의 해고노동자들을 위한 매일 미사. “사람아, 희망이 되어라” 2013년 9월 15일 제161일차 매일미사가 열렸다. 오늘 강론을 맡은 신부는 “박근혜 대통령은 쌍용차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면서 “우리 어머니도 대한문 미사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신부는 “양심과 도덕과 윤리가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고 사기이며, 양심과 도덕과 윤리가 없는 경제는 경제가 아니라 착취”라면서 “이곳 대한문은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되찾는 자리이며,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에게 양심과 도덕과 윤리를 되찾게 만드는 자리”라고 밝혔다.

천주교 미사 의식에는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이 서로에게 “평화를 빕니다”라고 말하며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용기를 북돋워주는 순서가 있다. 이곳 대한문 미사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사 중간에 사제와 수도자들은 미사에 참가한 신자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가서 손을 잡아주며 평화를 비는 인사를 했다.

천주교계는 오는 9월 23일 오후 7시 30분 서울광장에서 국정원의 해체를 촉구하고 민주주의 수호를 다짐하는 시국미사를 연다. 또 추석연휴에도 매일미사는 계속된다. 장동훈 신부는 추석 때 차례상을 준비해 고향에 못가는 노동자들과 함께 차례도 같이 지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미사가 끝나고 사제단과 신자들, 농성자들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오후 8시 경 쌍용차지부는 대한문 옆 한 켠에서 회의를 시작했다. 국정조사 등 쌍용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집단단식에 나선 이들이 단식 엿새째 일정을 이렇게 마감한다.

▲ "평화를 빕니다" 천주교 사제들은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 용기를 북돋워 준다. 사진=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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