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하지만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정상회담 녹취록 관련 정치공작이 국민적 저항을 촉발하였다. 고등학생까지 시국선언에 동참하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촛불이 켜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민중과 시민의 저력이고 생명력이고 정당한 저항권의 발로이다.

위험수위가 다가오자 지배세력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철저한 개혁일랑 외면한 채, 언제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는 이북관련 이석기사건을 터뜨려 광풍을 몰고 왔다. 물론 이석기 일은 언젠가는 충격파로 등장시키기로 예비 되어 있는 그들의 숨겨둔 복병이었다. 그들에게는 이 시점이야말로 이 얄팍한 복병이 절실히 필요하고 효과적인 시기였고 또 확실한 처방이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이로써 적반하장의 형국을 만들어 현 정권에 위협을 가하는 정국을 역전시키고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새판을 짜겠다고 기고만장한다. 그런데 엄청난 규모의 인원과 천문학적 예산을 가진 국가기관인 국정원의 선거개입이나 정치공작이야말로 이 나라의 근본을 허물어뜨리는 국기문란이고 진짜의 ‘내란음모’요 ‘내란실행’이 아닌가? 이런 엄청난 일을 겨우 130여명에 불과한 얄팍한 이석기군단의 일로, 그것도 ‘내란음모’가 힘드니까 이미 사문화한 여적(與敵)죄라는 꼼수까지 동원하면서 잠재울 수 있단 말인가?

국정원이란 공권력에 의한 선거개입과 정치공작은 박근혜정권의 정통성문제와 직결된다. 정통성은 권력뿌리의 정당성, 권력창출의 정당성,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각기 갖춰야만 제대로 확립될 수 있다. 박근혜정권의 권력뿌리 정당성 여부는 이 글의 핵심이 아니고 별개 문제다.

국정원 선거개입은 박근혜정권이 그 출생에서 대표성을 갖느냐 하는, 곧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정당성을 가져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선거절차와 선거과정에 의해 창출되었는가의 문제이다. 선거개입 정도가 오죽했으면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해 온 검찰이 선거법 위반으로 전임 국정원장을 기소했을까?

지금 드러난 일부의 증거만으로도 이미 박근혜정권의 권력창출정당성은 심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곧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정권이라고 말하기 힘들게 되었다. 이런 어마어마한 관권선거의 일이 어찌 130명 군단의 얄팍한 이석기 일로 희석되고 잠재워질 수 있단 말인가? 응당 이를 주도한 과거의 이명박정권은 법과 역사의 단죄를 받아야 하며, 이에 의거 출생한 현재의 박근혜정권은 민의와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또 북방한계선(NLL) 관련 정상회담 녹취록의 자의적 공개와 이에 대한 국정원의 ‘유권해석’은 공작정치의 전형으로 박근혜정권이라는 현재 권력에 의해 기획되고 집행되었다. 또한 이는 권력행사의 정당성을 훼손한 엄청난 범법행위다. 과거 관권선거를 주도한 잘못을 뉘우치고 자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잠재우기 위한 또 하나의 공작을 국정원이 자행하도록 한 일이다. 정상회담 녹취록 공개는 세계 역사상 희귀한 일로 국제정치 교과서에 실릴 일이다. 이렇듯 일파만파한 일을 연달아 저질러 놓으니 촛불이 전국으로 더욱더 타오르는 것은 사필귀정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그들이 복병으로 등장시킨 것이 얄팍한 이석기사건이다. 물론 이석기군단은 미국패권의 발악으로 신음하고 있는 엄중한 한반도 현실일랑 아예 외면한 채 지난날의 꿈, 아니 이제는 그들만의 꿈으로 매몰된 외눈박이이고 시대착오적이다. 진보의 세상을 이곳 남쪽 또는 한반도 전역에서 일구기 위해서는 벌써 넘어섰어야 할 조그만 산에 불과하다.

역사는 저절로 이성의 실현으로 나아가지 않고 새 생명을 탄생하는 산통의 과정을 요구한다. 우리는 조그만 사설군단의 얄팍한 그들의 복병에 머뭇거리지 말고 문제의 본질이고 핵심인 국정원이란 공권력의 공작정치에 의연히 맞서 제대로 된 민주적 권력창출과 권력행사의 새로운 판을 기필코 일구어내야 할 것이다. 한낱 얄팍한 그들의 복병일랑은 거대하고 위대한 우리들의 촛불로 뭉개버려야 할 것이다.

강정구/전 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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