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대의원대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지난 9월 8일에서 10일까지 영국노총(TUC) 대의원대회를 참관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가장 먼저 노동조합이 결성된 나라, 노동당에 노동조합이 집단가맹하고 100년이 넘는 지금도 이 제도가 존재하고 있는 나라, 신자유주의 공세가 가장 먼저 시작된 나라가 바로 영국이다. 그럼에도 영국노총의 대의원대회는 BBC방송국에서 생중계되고 매일 아침에 주요 뉴스로 다루어질 정도로 노총의 위상은 높다.

우리 대의원대회와는 너무 다른 영국노총 대의원대회
 
매년 4일간 진행되는 대의원대회는 우리와 매우 달랐다. 매일 정시에 회의가 시작되고 대의원들은 대부분 자리에 않아 무려 56개에 달하는 의안에 대한 찬반토론을 경청하였다. 한 의안에 대해서 한 대의원이 한 번 이상 발언할 수 없었고, 발언은 제안자는 5분, 제청 및 찬반토론은 3분으로 시간이 한정되어 시간이 넘으면 의장이 제지하였고 이를 어기는 대의원은 없었다. 발언자는 미리 조직을 통해 발언을 신청하여야 하고, 안건 토론시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의장은 어느 조직에 몇 명이 발언할지 알 수 있었다. 결국 안건에 대한 10명의 다양한 입장을 듣더라도 1시간이 넘지 않았고 대의원들은 거수로 찬반의견을 표출하였다. 우리 대의원대회가 한 대의원이 단일 안건에 대해 발언시간 제한없이 여러 번 발언하는 데 비해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수많은 의안 효과적으로 처리, 다양한 정책세미나 병행
 
수많은 의안이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되면 이를 토대로 중앙위원회에서 사업계획이 수립된다. 예를 들어 민영화는 투쟁계획을 결의하였고 최저임금은 법개정투쟁을 결의하였다면 이를 반영해서 중앙위에서 사업계획이 구체화되는 것이다. 대회는 철저히 의결기구이고 실행계획은 중앙위로 넘어가도록 역할이 배분되는 것이다.
점심시간과 대회가 끝나는 저녁에는 민영화, 생활임금, 노동당과 노조의 관계, 노조와 지역사회 등 수십 개가 넘는 다양한 정책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의안은 중앙에서가 아닌, 가맹조직별로 제출
 
그러면 어떻게 이렇게 대의원대회가 진행될 수 있는가? 이는 사전에 철저히 조직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대회 의안은 중앙에서 직접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가맹조직별로 2개, 100만명 이상 노조의 경우 3개의 의안제출권이 주어지는데 다만 대회 8주전까지 250단어 내로 제출하도록 제한이 있다. 50개가 넘는 가맹조직이 있기 때문에 올해 대의원대회는 무려 80개의 의안이 제출되었다. 이를 중앙에서는 6주전까지 가맹조직에게 배포하고 수정안을 제출받는다. 수정안은 25단어로 제한되고 2개까지 가능하며 4주전까지 제출하여야 한다. 중앙에서는 마찬가지로 이를 20일 전까지 배포하여야 한다.
 
한 달 전에 배포되는 대의원대회 자료집
 
대회 전 주에는 중앙위와 대회운영위원회가 개최되어 유사한 의안을 통합한 통합의안을 만들고 의안논의 순서, 감표위원 등을 선출한다. 예를 들어 민영화에 대해서 유사한 의안이 3개 제출되면 이를 하나의 통합 의안으로 작성하며 이는 제출노조간 합의를 통해 운영위에서 최종 확정한다. 대의원대회 첫날은 오후에 시작되는데 보통 가맹 조직별로 오전에 대의원들을 모아놓고 쟁점 의안에 대한 입장을 통일하고 각 의안에 대한 발언자를 정리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사전적 조직화와 논의 과정을 통해 의안이 충분한 논의 속에 걸러지고 입장이 정리되는 것이다.
 
 
대의원대회 제도 정비와 사전 조직화 이뤄져야
 
우리도 새 지도부가 2달전에 미리 안건을 공지하고 정책대의원대회 형식으로 치루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이는 이러한 사전적 조직화 과정과 참여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본다. 두 번째로 대의원대회가 일부가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되기 위해서는 회의운영규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영국노총은 규약에 1의안에 1번만 발언, 발언시간 제한이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규정이 정비되어 대의원들이 이를 어길 수 없도록 하고, 대회 자료집에도 친절히 안내하고 있다. 영국노총 대의원대회에서 느낀 점은 대의원대회가 명실상부한 최고의결기구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정비와 사전적 조직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김태현(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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