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범 열사 부인 눈물로 호소

* 아래 글은 故 최종범 열사 부인 이미희 씨가 7일 오후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최종범열사 문제해결 촉구 및 삼성 규탄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눈물을 흘리며 낭독한 호소문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센터에서 일했던 최종범 씨의 부인 이미희 입니다. 오늘로 별이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지 38일째 됩니다. 그리고 제가 어미 품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랑하는 우리 별이를 떼어놓고 이곳 서울 삼성본관 앞에 온지 5일째입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현실은 제가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상상해 본적이 없습니다. 꿈속에서도 누군가의 인생을 담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 13일이면 사랑하는 남편 최종범과 제가 사랑으로 결실을 맺고 이 세상 그 어느 집 아이보다 예쁘게 잘 키우고 싶었던 별이가 세상에 태어난 날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내일 이 별이 아빠와 제가 별이의 돌잔치를 하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작년이맘때 별이 아빠와 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한 꿈을 꾸었습니다. 건강한 아이를 위한 기도와 엄마와 아빠를 반반씩 닮은 아이를 위해 좋은 엄마 아빠가 되어달라는 행복한 기도를 올렸습니다. 별이 아빠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아들이면 최강으로 이름 짓고 딸이면 최별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을 손꼽아 기다린 끝에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별이의 아빠와 엄마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우스갯소리로 비수기에 태어난 별이를 효녀라고도 했습니다.
 
12월 3일, 잠든 별이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서울로 왔습니다. 뱃속에 별이를 품었을 때부터 이제 돌이 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제 품에서 떼어놓은 적이 없는 별이를 두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렇게 집을 나오면서 너무나 서럽고 하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한 달이 넘게 차가운 냉동고에서 아직도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서러워할 남편을 생각하면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추위도 두려움도 없이 서울로 왔습니다.
 
저는 이제껏 서른이 되도록 단 한 번도 집회를 참여해 보거나 농성을 해본 적도 더욱이 거리에서 잠을 청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런 제가 남편의 유언을 지키겠다고 삼성본관에 왔을 때 너무나 많은 경찰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라고 남편의 유언을 전하려는 제 앞을 가로막는 경찰들을 보고 가슴에서 피눈물이 터질 듯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제가 범죄자가 아닌데 오히려 삼성의 부당함과 탄압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 항의하고 사과 받고자 온 저와 남편의 동료들을 무지막지하게 끌어내는 경찰을 보면서 삼성과 말 한마디 하는 게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남편의 심정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억울했겠구나, 절망스러웠겠구나”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이 현실을 고발하고 이겨보려고 혼자서 죽음을 결단했을 남편의 고통을 생각하니 오히려 악이 바치고 눈물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섭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도 어쩔 수 없는 어미이기에 하루하루 시간이 갈수록 우리 별이가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이곳 삼성직원들의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을 오가는 아이들을 볼 때 마다 우리 별이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며칠만 별이를 못 봐도 목구멍이 메는데 별이를 두고 간 아빠의 마음을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명치끝이 아려옵니다. 힘들어도 제발 살아만 있지, 제발 살아만 주지하는 속절없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곳에 오니 남편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천안 장례식장에 있을 때 하루에 몇 번씩 꽁꽁 얼어버린 얼굴이지만 안치실로 내려가 보고 싶었습니다. 이곳에 와 있으니 삼성이란 높은 벽에 괴로워했을 남편 생각이 더욱 사무칩니다. 그 고통을 함께 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이제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버린 남편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남편이 별이와 제 곁을 떠난 후 너무나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십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그리고 그 것이 제가 버텨야 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남편의 마지막 한마디가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합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그 말이 저를 이 자리에 있게 합니다.
 
별이 아빠가 되어주시겠다는 천안센터 동료 분들 고맙습니다. 찬 서리 내리는 긴 겨울 밤 남편의 고통을 함께 하고자 이 자리를 지켜주시는 별이 아빠의 동료 분들 너무나 고맙습니다.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주십시오. 우리나라에서 제일 힘이 세다는 금속노조 여러분들이 제가 별이 아빠의 유언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삼성이 별이 아빠의 주검 앞에 사과할 때까지 제가 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다시는 삼성에서 별이 같은 사랑스런 아기가 아빠를 잃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우리 별이를 다시 품에 안을 때 아빠의 유언을 지킨 강건한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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