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합의 없는 민영화는 없다"던 박근혜... 대화 의지를 보여라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에서 철도 등 국가 기간 산업을 두고 "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켜 민영화를 중단하라며 철도노조가 파업을 시작했다. 민주노총은 투쟁의 강도를 높이는 한편, 대통령이 약속한 것처럼 사회적 논의나 국회를 통한 협의를 하자고 해법을 제시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4일까지 정부가 대화에 응하지 않으면, 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제 공은 정부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정부는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철도공사가 무리하게 투입한 비숙련 대체인력 때문에 종각역에서 사고가 나는 등 국민불안은 커지고 있다. 법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고 있지만, 정부는 파업 무력화를 위해 투입한 불법 대체인력을 시민을 위한 것인 양 포장했다. 철도공사 파업에 참가했다고 무려 7600여 노동자들을 직위해제했다. 직위해제 노동자 수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철도노동자들의 대화 요구는 무더기 징계로 돌아왔다. 민영화하지 않겠다고 하고선 민영화하고, 대화를 하자고 하니 탄압으로 화답한다. 정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답답하다. 공공철도가 민영화 탈선위기에 처했다고 100만 명이나 서명에 참여하며 국민은 불안해하는데도, 민영화가 아니라는 말만 하고 입을 닫고 있으니 신뢰는 멀다. 아무리 박근혜 정권의 이념이 '안 알려줌'이라지만,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우김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다.

모기업과 경쟁하는 계열사... 말이 되나

정부는 수서KTX주식회사의 지분 중 41%는 철도공사가 출자하고, 100%까지 확대할 계획이기 때문에 민영화가 아니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럴 거면 굳이 노동자들을 파업으로까지 내몰며 별도의 주식회사 설립을 강행할 이유는 없다. 정부는 KTX 민영화에 국민연금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다는 전망도 내놨지만, 지난 10월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정감사에서 "검토하겠다고 말할 단계가 전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정부의 계획이 근거 없이 짜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자 정부는 비효율을 깨기 위해 철도공사의 계열사인 수서KTX주식회사를 만들어 경쟁시키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모기업과 경쟁하는 계열사라니. 구상부터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이다. 게다가 서울역과 용산역이 코앞인 서울시민들이 수서발KTX를 타게 하는 경쟁력이란 게 과연 가능하긴 하겠는가? 애초 수요대상이 다른데 무슨 경쟁체제란 말인가. 오히려 서비스를 개선한답시고 철도요금 인상안을 만지작거릴 게 뻔하다.

수익을 앞세우지 않고 서민들의 교통복지를 책임지는 공공철도는 정겨운 고향역도 마다하지 않고 덜컹덜컹 달린다. 노약자 우대정책도 팽개치지 않는다. 민영화 철도라면 기대하기 어려운 공공성이다. 그런 책임을 진 공공철도와 오로지 비싼 KTX노선만 운영하는 수서KTX 주식회사가 긍정적 경쟁이 될 리 만무하다.

12월 14일 낮 2시까지 대화 의지를 밝혀달라

정부의 노림수는 따로 있다. 향후 수서KTX주식회사의 수익을 근거로 철도공사를 압박해 철도 쪼개기를 계속 시도하고 구조조정을 강요할 것이다. 끝내 사적기업에 넘겨 민영화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유럽 순방 중 프랑스 기업인들에게 철도시장을 개방하겠다고 밝혀 박수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하루 뒤 국무회의에서는 국회논의도 없이 철도시장개방을 포함한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것은 정부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준다.

나의 팔순 노모는 쫓기는 산업사회의 속도와 수익에 맞춰 다닥다닥한 좌석의 KTX 대신, 여유와 인간적 공간을 배려한 무궁화호를 좋아하신다. KTX가 서지 않는 정겨운 고향역은 멀리 떨어진 가족들을 이어주는 상봉의 통로다. 민영화된 철도는 서지 않는 '설국열차,' 계급이 매겨진 그 차별의 열차처럼 간이역을 지나칠 것이며, 비싼 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부자들을 위한 철도가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의 우려에 답해야 한다. 오는 14일 낮 2시까지 대화 의지를 밝혀달라는 철도노동자들의 호소에 응답해야 한다. 진정 민영화하지 않겠다면 사회적 논의와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논의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적 합의 없는 민영화는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 그 하나만이라도 지키길 바란다.

박성식/ 사회공공성본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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