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김종면 칼럼

미국 폭스뉴스의 성가를 드높인 보수논객 빌 오릴리의 말은 핵심을 찌르는 데가 있다. “이제 정치가는 감투가 됐다. 워싱턴으로 향한 사람은 자신의 생업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정치가 평생 직업이 됐다. 달콤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독설처럼 들리지만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사람이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같은 감투를 쓰기 위해 교수도 판검사도 변호사도 다 집어치우고 정치에 나서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번듯한 생업도 소용없다. 권력의 꿀단지가 우선인 듯하다.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이면 체면 불고하고 정치판을 끼룩댄다. 정치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만두는 치명적인 직업이다. 문제는 끝 모르는 욕망의 날갯짓이 종종 신화 속 이카루스의 허망한 비상으로 끝나고 만다는 점이다.

지금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볼썽사나운 모양새도 바로 그 징글징글한 정치 때문이다. 22일간의 사상 최장기 철도노조 파업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른 지 한 달도 안 돼 코레일의 수장이 여당 대표를 찾아가 ‘지역구 청탁’을 했다면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니다. 누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내용을 흘렸든 어쨌든 그것은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파업의 후유증을 줄이는 데 모든 것을 걸어도 시원찮을 판에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동분서주한 그 몰염치한 행태에 분노할 따름이다. 코레일은 민영화 논란은 차치하고 철도파업 참가자 400여명에 대한 징계, 노조에 대한 15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 등 현안이 한둘이 아니다. 지금이 한가하게 권력의 뒤를 쫓으며 정치 바람을 필 때인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한다.

공공부문 개혁은 박근혜 정부가 명운을 걸어야 할 핵심 국정과제다. 정권의 색깔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개혁의 성과를 내야 한다. 방만경영에 허덕이는 코레일은 공기업 개혁의 시금석이다. 하지만 철도개혁은 보통 일이 아니다. 역대 정부마다 개혁의 칼을 빼들었지만 노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흐지부지됐다. 이런 막중한 일을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사람에게 맡길 수는 없다. 장수가 잡념이 많으면 검을 뺄 기회를 놓친다. 딴생각 없이 철도개혁에 매진할 할 수 있는 도덕적 리더십을 갖춘 사람이 코레일을 이끌어야 마땅하다.

최 사장은 공기업 사장이란 본분을 잊고 정치욕심을 부리다 게도 구럭도 다 잃은 꼴이 됐다. 2016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고 남은 임기를 마치겠다고 하지만 공허하게 들린다. 언제 또 정치병이 도질지 모른다. 여러 정권에 걸쳐 이쪽 저쪽 오가며 헷갈리는 정치 행보를 보여 온 그는 지난해 10월 낙하산 인사임에도 나름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코레일 수장 자리에 무난히 올랐다. 그런데 석 달여 만에 동티가 났다. 지금 있는 자리를 더 크고 더 강한 권력으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쯤으로 여긴다면 코레일 사장은 물론 정치인 자격도 없다. 기어코 국회의원 배지를 달아보겠다는 심산이라면 지금 당장 코레일을 그만두고 정치를 하는 게 낫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요 정치적 잔명을 지키는 길이다.

다시 문제는 ‘낙하산’이다. 정부가 아무리 공기업 개혁을 외친들 낙하산 인사가 기승을 부린다면 만사휴의다.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공기업 파티는 끝났다”고 선언한 뒤 어떤 일이 벌어졌나. 정치인 낙하산 인사가 이전보다 3배나 늘었다. 부총리 발언 이후 새로 임명된 기관장·감사 40명 중 15명이 새누리당 출신 정치인이라고 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정치 낙하산 꽃이 활짝 폈다. 그러니 너도나도 정치로 달려가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비정상 중의 비정상이다. 공기업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면 이미 편 황금 낙하산이라도 과감히 다시 접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가 구호에 그쳐선 안 된다. ‘최연혜 파문’에서 똑똑히 봤다. 낙하산을 타고 온 정치꾼은 언제 어느 순간에 또 자신을 까마득히 잊고 정치 추파를 던질지 모른다. 이제 화두를 들어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서울신문 [김종면 칼럼] jmkim@seoul.co.kr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