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거센 외압 속 전국 100여 개 상영관 개봉...황상기씨 구로CGV서 관람

세상을 울린 아버지의 뜨거운 <또 하나의 약속>이 전국 영화관에서 개봉됐다.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가 개봉일 서울 구로 CGV를 찾아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과 위영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 그리고 고 최종범 열사의 부인인 별이엄마도 이날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에서 정의로운 노무사 ‘난주’ 역으로 표현된 실제인물 이종란 노무사도 이날 개봉 관람에 함께 했으며, 이수호 민주노총 지도위원과 권영국 민변 노동위원장, 노회찬 전 의원, 장하나 의원 등도 <또 하나의 약속>을 지켜봤다. 또 어제부터 파업에 나선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은 파업 이틀째인 오늘 <또 하나의 약속>을 단체로 관람한다.

속초에서 택시를 몰며 부인, 딸 윤미, 아들 윤석과 함께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던 상구는 딸 윤미가 대한한국에서 가장 큰 대기업에 들어간 게 자랑스럽고 흐뭇했다. 그런데 윤미가 반도체 회사에 들어가 일한지 20개월 만에 백혈병에 걸려 돌아온다.

“왜 아프다고 말 안했나?”
“좋은 회사 들어갔다고 동네 자랑하고 다닌게 누군데? 내 그만두면 아빠가 뭐가 되나!”
결국 딸 윤미는 병원으로 가는 고속도로 아빠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둔다. 숨이 넘어가는 딸 손을 잡고 아빠는 오열하며 다짐한다.
“아빠가... 꼭 약속 지킬게.”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영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2007년 꽃다운 나이에 사망한 고 황유미 씨와 어린 딸을 가슴에 묻고 인생을 건 재판에 나서서 세상과 싸우는 한 아버지를 그린 이야기다. 산재를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는 다른 피해자들과 함께 행정소송을 제기한다.

▲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가 6일 오전 서울 구로 CGV를 찾아 딸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했다. ⓒ 변백선 기자
<또 하나의 약속>은 한국 사회에서 재벌기업에 의해 실제 벌어진 일을 영화로 만들었다. 등장 인물과 회사 이름은 달리 표현됐으나 영화의 아주 구체적 부분까지도 실제 인물들이 겪은 그대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간성, 삼성이 굴지의 대기업이라는 이미지와 돈을 앞세워 사회적 약자와 힘없는 피해자들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며 양심을 가진 관객들은 분노한다.

영화 속에서 반도체 기업 소속으로 백혈병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온갖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 회사 관리자는 불치의 병에 걸린 딸을 병원에 눕혀놓은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버님, 정치는 표면이고, 경제가 본질이에요." 돈이라는 권력을 쥐고 한국 사회 전체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삼성의 이념이라 할 것이다.

삼성은 자신들이 주인공인 불편한 진실을 다룬 이 영화가 제작되는 과정에서부터 상영에 이르기까지 온갖 외압을 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개봉관 수가 정해지는 과정에서 상영관들은 애초 예정했던 상영관 수를 개봉을 앞두고 줄이겠다는 입장을 통보해 비난을 샀다.

영화 관람 후 황상기 씨는 영화를 통해 다시 본 살아생전 딸의 모습을 회상하며 삼성이라는 재벌에 휘둘리는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백혈병 환자들은 골수 검사를 해야 되는데 골수를 뺄 때 엄청나게 아프고 힘이 든다”고 말하고 “영화에도 나왔는데 영동고속도로 싸리재 고개를 지나면서 유미가 숨이 넘어갈 때 내가 차를 어떻게 몰아서 어떻게 왔는지를 모르겠다”면서 “영화의 그 장면에서 산울림 음악이 나올 때 눈물이 나왔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날 속초에서 새벽 6시 첫차를 타고 올라오며 딸 유미 씨가 좋아해 모은 가수 신화의 사진집을 가져왔다. 황상기 씨는 “유미가 영화도 좋아했고 가수도 좋아해 특히 신화를 좋아했는데 신화가 이 영화를 보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서 유미가 모으던 신화 사진집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황 씨는 “대기업들이 돈벌이를 하면서 노동자를 한 번씩 써먹고 만다고 생각하는데 노동자도 사람이고 인격체이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또 영화 개봉 과정에서 일어난 삼성의 외압과 영화관들의 행태에 대해서도 규탄했다.

“내가 사는 속초에도 매가박스가 있는데 상영을 안 한다”고 말한 그는 “여기도 (또 하나의 약속) 영화 홍보가 하나도 안 돼 있지 않느냐?”면서 “영화는 문화이고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기업들이 자기들끼리 눈치를 보며 삼성의 나쁜 이미지를 그린 영화를 상영하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가 딸과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을 관람한 후 두손 모은 채 엔딩 크레딧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다. ⓒ 변백선 기자
▲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가 영화를 관람하기에 앞서 딸의 유품을 내보이며 "딸이 살아 있을때 그룹 신화의 팬이었다"며 "이 자리에 딸과 함께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으로 유품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 변백선 기자
황상기 씨는 삼성노동자들에게도 간절한 마음으로 호소했다. 그는 딸 유미 씨가 세상을 떠난 후 “삼성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내 딸이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삼성에 노동조합을 건설해야 한다고 늘 말해 왔다.

황 씨는 “삼성에 노동조합이 없어서 몸에 유해한 화학물질로 인해 노동자들이 억울하게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고 회사에 전달하지도 못했다”고 말하고 “삼성 노동자들이 단결력을 갖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3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노조결성의 자유는 헌법에도 보장된 권리이니 쫄지 말고 노동조합을 결성해서 자기 권리를 보호하라”고 말한 황 씨는 “삼성에 노조가 있었다면 우리 유미를 비롯한 삼성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보호받고 작업장도 더 안전하게 관리해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며, 암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생겨도 노조가 회사와 협의해 이런 악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삼성 백혈병 피해자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면서 “개봉 자체가 투쟁인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남은 과제가 정말 많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을 앞두고 외압설이 불거졌고 롯데시네마 등은 애초 약속했던 상영관 수를 크게 줄여 통보해 외압설이 헛소문이 아님을 반증했다. <또 하나의 약속> 제작진 측은 6일 동시기 개봉작 중 예매율은 1위를 기록하고 관객평점이 높은 가운데에도 여전히 적은 규모의 상영관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가 서울 구로 CGV를 찾은 가운데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변백선 기자
▲ 삼성반도체로 인한 백혈병 문제를 다룬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된 6일 통일문제연구소 백기완 소장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 그리고 고 최종범 열사의 부인 등이 이날 함께 영화를 관람했다. ⓒ 변백선 기자
<또 하나의 약속> 제작사 측은 5일 저녁, 개봉을 몇 시간 앞두고 보도자료를 통해 확보된 상영관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제작사가 공식적으로 밝힌 상영관 배정 수는 총 100여 개. “300개 관이 목표”라고 말했던 ‘또 하나의 약속’ 제작사와의 입장 혹은 기대에 3분의 1도 못 미치는 수치다. 상업영화가 400여 개관을 장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크라우드 펀딩으로 만들어진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100여 개를 간신히 채웠다.

<또하나의 약속>을 둘러싼 외압 등을 규탄하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국회, 영화프로듀서조합(PGK), 영화제작가협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화사에 따르면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와 한국영화제작가협회(제협)에서도 이에 대해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이들은 공문을 통해 “타 멀티플렉스와 비교할 때 유독 롯데시네마에서만 소수의 관에서 개봉예정이며, 위탁 롯데시네마들에서 <또 하나의 약속> 상영을 희망해도 본사에서 DCP를 보내주지 않아 상영할 수 없다는 얘기를 들어 일부의 우려와 같이 공정한 상영기회를 갖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귀 사에서 개봉관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한편 이번 <또 하나의 약속> 개봉 관련해 많은 미담이 전해져 온 국민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 주고 있다.

▲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는 영화 관람 후 취재진 앞에 서서 재벌에 휘둘리는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했다. ⓒ 변백선 기자
배우 조달환 씨는 <또 하나의 약속> 개봉일에 맞춰 6일 오후 8시 건대 롯데씨네마에서 300명에게 무료 관람권을 제공했다. 조달환 씨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으셨던 페친님들, ‘2월 06일 개봉!’ 날 제가 무료로 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개봉일인 6일 오후 8시 건대 롯데씨네마에서 선착순으로 극장에 도착한 300명에게 <또 하나의 약속> 영화표를 무료로 배포했다. 조달환 씨는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보고 대한민국 영화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말하고 “이 영화는 여느 화려한 블록버스터처럼 대형 홍보는 없겠지만 소자본으로 감칠맛을 낸 은둔의 맛집 같은 영화라 추천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100억이 들어간 대작은 아니지만 마음의 진동과 울림이 있다”면서 “영화를 보면서 내 자신이 동화되어 자신에 대해서 돌이켜 본다면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이들의 성원과 예매에도 불구하고 개봉하지 못하거나 개봉이 취소된 곳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많은 관객들이 SNS를 통해 영화나눔운동을 벌이고 있다. “10장 예매했으니 선착순으로 받아가세요”, “영화관이 차로 2시간 거리입니다. 영화 같이 보실 분” 등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메시지들이 확산되고 있다.

▲ 삼성반도체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인 황상기 씨와 이종란 노무사가 만나 미소를 짓고 있다. ⓒ 변백선 기자

* 전 세계와 5천만이 하나된 “기적을 응원해”_네이버98/다음99(2014년 1월 2일 기준)
* 한국 내 표현의 자유가 한 발 나아간 사건, 한국 영화계에서 이례적인 일_월스트리트저널
* 많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_AP통신
* 이 영화가 제작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또 하나의 기적이다_syoung
* 영화 보는 내내 펑펑 울었고요, 아직도 가슴이 먹먹합니다_wkwn***
* 또 하나의 약속은 우리에게 묻는다. 이제 약속을 해야 할 사람은 우리일지 모른다고_dlhw96
*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_hsno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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