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대법판결 이후 자본가들의 교묘한 임금삭감 술책

공단 노동자들이 수군거리고 있다. 사장이 나서서 취업규칙 변경에 동의해 줄 것을 종용하기 때문이다. 정기상여금을 재직 중인 노동자에게만 주는 것으로 변경하고, 정기상여금 지급 원칙을 재확인하자는 것이다. ‘언제는 안 그랬나?’ 싶어 노동자들은 서명했다. 사실 서울의 A회사와 인천의 B회사는 2013년 1월에, 경기의 C회사는 9월에 취업규칙을 이미 변경했다. 2013년 12월 대법 판결 이후 그 내용을 꼼꼼히 따져본 노동자들은, 그제야 자신이 지난 1월과 9월 취업규칙 변경에 서명한 것이 ‘연장근로 수당을 더 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고 확약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고정성이 결여된다나,… 아차 싶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통상임금 소송을 하면 연장근로 수당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들리기는 했지만, 소송을 거는 순간 회사하고의 인연도 끝인지라, 공단 노동자들은 남의 일이려니 했다. 통상임금 소송은 노조가 있고, 정기상여금에 기반을 두어 연장근로수당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만 관여되는 문제인 줄 알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날벼락이 떨어졌다. 통상임금 대법판결을 존중해 ‘우리 사장님’이 임금체계를 바꾸겠다고 한 것이다.
 
경기의 D회사. 이 회사는 기본시급이 4,860원(2013년 최저임금)에 정기상여금 400%를 주는 회사였다. 매일 잔업 2시간에, 토요일에도 8시간씩 꼬박꼬박 근무하는 회사였다. 이 회사가 올해 들어 정기상여금을 없애는 대신, 기본시급을 6180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한다. 임금총액은 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올핸 물량도 많을 거라 했다. 이번에도 노동자들은 다들 그러려니 했다. 올해 첫 월급으로 200만원을 받았다. 작년 급여는 평균 191만원이었다.
 
“뭐야, 5만원이 더 적잖아!” 휴식시간에 노동자 한명이 불만을 터뜨렸다. 2014년 최저임금은 5210원이다. 정기상여금 400%면 평균 205만원을 받아야 하는데, 200만원 밖에 안 주었다는 것이다. “일요일 특근을 뛰어야 월급이 같네! 일요일에도 출근하라는 거야?” 일요일 특근을 하면 232만원씩 똑같이 받게 된다. (아래 표 참조)
 

 

 
소정
근로
연장
근로
시급
기본급
정기
상여
연장수당
월평균급여
고정급여
변동급여
2013
209
77.4
4,860
1,015,740
400
564,246
1,918,566
1,354,320
564,246
2014
209
77.4
6,180
1,291,620
0
717,498
2,009,118
1,291,620
717,498
209
77.4
5,210
1,088,890
400
604,881
2,056,734
1,451,853
604,881
209
111.8
6,180
1,291,620
0
1,036,386
2,328,006
1,291,620
1,036,386
209
111.8
5,210
1,088,890
400
873,717
2,325,570
1,451,853
873,717

정기상여금 400%, 그러니까 월 평균 33만원이라는 급여는 연장근로와 관계없이 받던 임금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임금체계가 바뀌고 나면 꼼짝없이 잔업하고 특근 뛰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바뀐다. 기본급을 올려주었다고는 하지만 고정적으로 받는 임금은 크게 준다. 더구나 시급 6,180원은 법정최저시급 5,210원에 비해 높은 것이어서 향후 몇 년간 회사가 임금을 올려주지도 않아도 최저임금법에 걸리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수군거린다. ‘우리 임금이 줄었다.’ 수군거리는 노동자를 본 회사 임원들은 이렇게 약속한다. 매월 불량을 가장 적게 낸 조를 선정해서 해당 조원들에겐 특별수당 5만원씩 주겠다고…, 그러면 임금총액이 같아진다.

인천의 E회사는 장시간 근로시간을 줄인다며 교대제 개편을 했는데, 교대제 개편할 때 임금 조정을 이런 식으로 했다. 연장근로시간을 고정적으로 산정하고, 연봉제로 바꾸어 임금총액을 똑같이 지급해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동일한 방식으로 임금을 삭감시킨다.
 
인상된 법정최저임금을 반영해주어야 하는 시점에, 장시간 근로개선과 교대제 개편을 해야 하는 시점에, 사용자들이 임금체계를 바꿔 임금을 삭감하려 시도하고 있다. 2013년 12월 통상임금 대법원판례가 임금삭감의 방향을 가리킨 것이라면, 2014년 1월 고용노동부의 지도지침은 사용자들에게 임금삭감의 매뉴얼을 제공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6년간 실질임금은 정체상태였다. 법정최저임금 인상폭은 물가인상률과 비등한 수준이었고, 수당들은 다양한 명목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통상임금 대법판결 이후 사장들은 새로운 임금삭감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 임금체계를 단순화시키면서 임금도 삭감시키는 방법을 말이다.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수군거리고 있다. 임금체계 변화가 노동자 편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동자들의 분노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야 한다. 임금인상요구조사를 해보니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가 꿈틀대고 있는 것이 확인된다. 임금삭감에 대한 공단지역 노동자들의 분노, 임금인상에 대한 공단지역 노동자들의 열망…. 2014년 임금인상투쟁, 최저임금인상투쟁은 여기에서 시작해야 한다.
 
박준도 |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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