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장비 미지급, 안전교육 미실시, 산재 은폐 등 위반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당한 채 위험한 작업 환경에 노출돼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지난 1월부터 두 달 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48곳을 대상으로 현장안전점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아래 산안법) 24개 조항 21만2천869건의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안전조치, 보건조치, 안전보건교육 실시, 작업환경측정, 안전보건관리규정작성 등 각종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3월25일 금속노조 회의실에서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48개 센터를 조사한 것이다. 전체 센터를 조사하면 어마어마한 법 위반 사항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3월25일 노조 회의실에서 노조가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1월부터 두 달 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48곳을 대상으로 현장안전점검 실태조사를 진행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위영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형석

삼성전자서비스센터는 산재를 은폐하고 산재발생시 사용자의 조력의무를 다하지 않는 등 산재보상보험법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A/S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작업을 해왔고 다치고 병드는 일이 잦았다. 이 노동자들은 산재 처리도 받지 못하고 개인 부담으로 치료를 해야 했다.

산안법은 사업주에게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곳에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폭발성, 발화성 물질 등에 의한 위험, 가스, 분진, 흄 등에 의한 건강장해 등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실태조사 결과 어느 삼성전자서비스센터도 이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

안전장치 없이 수십미터 높이 작업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수십미터 높이에서 에어컨 실외기 수리 업무 등을 한다. 회사는 안전장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의정부센터에서 일하는 최호정 조합원은 “우리는 15층 미만은 높은 곳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회사도 15층 이상이 아니면 스카이(크레인차)를 불러주지 않는다”며 “건물 외벽에 달린 실외기를 수리하는데 안전바 고리를 걸 곳이 없다. 안전바를 실외기 앵글에 걸고 일하기도 하는데 앵글이 떨어지면 사람도 같이 추락하는 것이다”라고 상황을 전했다.

이 노동자들은 납땜이나 용접 작업도 한다. 용접 흄이나 가스가 나오는 작업을 할 때 이를 차단할 보호구가 없다. 최호정 조합원은 “용접작업하는 중수리 업무가 있다. 이때 가스를 다 배출해야 하는데 직접 가스가 빠지는지 보면서 확인해야 한다. 용접하면 연기가 심하다. 가스나 연기를 다 맡으면서 일한다”고 토로했다. 센터 내근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해운대센터에서 일하는 심경섭 조합원은 “센터에 환기장치가 없다. 창문도 다 가려져 있는 밀폐된 곳이다. 납땜이나 세척업무를 할 때 보호 장비가 없다”고 지적했다

▲ 3월25일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이 "건물 외벽에 달린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는데 안전고리를 걸 곳이 없다. 안전고리를 실외기 앵글에 걸고 일하기도 하는데 앵글이 떨어지면 사람도 같이 추락하는 것이다"라며 상황을 전하고 있다. 김형석

회사는 ‘복장규정’이라는 것을 내세워 노동자들을 더 위험한 환경으로 내몰았다. 회사는 외근 수리업무를 하는 노동자들에게 정장바지와 구두, 넥타이 착용을 강요했다. 최호정 조합원은 “구두를 신고 에어컨 실외기 작업을 하는데 미끄러져서 위험한 순간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우리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들어왔다. 등산화나 안전화를 지급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강조했다.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 경우 모터해체 등의 작업을 할 때 넥타이가 빨려 들어가 위험할 수 있다. 서비스업무라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안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복장을 강요한 것이다.

구두에 넥타이 착용…사고를 부르는 ‘복장규정’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위험 물질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다. 실태조사 결과 산안법에 따라 정기안전보건교육을 한 센터는 한 곳도 없었다. 심경섭 조합원은 “8년 동안 내근업무를 하면서 안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올해 초 아침조회 시간에 5분 정도 얘기한 것이 전부다”라며 “납땜, 세척업무를 할 때 어떤 약품을 쓰는지도 몰랐다”고 토로했다. 최호정 조합원도 “3~5분 정도 용접할 때 조심하라고 얘기하고는 교육했다고 사인을 하라고 했다. 교육을 받지 못하니 어떤 것이 문제고 심각한 것인지 몰랐다”고 지적했다.

이 곳 노동자들은 A/S 업무의 특성상 일상적으로 직무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고객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고객서비스 평가점수제도’로 인해 고객의 폭언과 욕설도 참아야 한다. 회사도 고객불만 등을 이유로 자아비판, 반성문, 대책서 제출 등 비인간적인 지시를 해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 산안법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도록 쾌적한 작업환경 조성 △장시간, 야간근로 등의 경우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작업환경 개선 등을 사업주 의무로 지정하고 있다. 회사는 이러한 법 규정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 3월25일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외근작업 시 위험한 구두와 넥타이 착용 거부 △부실한 안전보건교육 시 서명 거부 △추락방지 없는 고소작업 등 위험작업 거부 △비인간적 자아비판, 반성문, 대책서 제출요구 불응 △재해 발생 시 산재처리 등 5대 긴급행동지침을 적은 펼침막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형석

이종란 노무사(반올림 상임활동가)는 “법은 최소한의 기준이다. 최상의 기준이 아니라 최소한 이것만큼은 지키라고 사업주 의무를 명시한 것”이라며 “21만 건을 위반했다는 것은 법을 지킨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규탄했다. 이 노무사는 “삼성이 이렇게 법을 위반하고 많은 노동자들을 위험으로 내몬 데에는 정부와 노동부의 책임이 크다”며 “사업주가 안전보건의무를 다하는지 관리감독하는 것이 노동부의 역할이다. 하지만 아무런 처벌이나 감독을 하지 않았다. 노동부가 직무유기를 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 ‘5대 긴급행동’

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지회는 ‘현장 개선 및 A/S노동자 건강권 찾기 5대 긴급행동’에 돌입하기로 했다. 5대 긴급행동은 △외근작업 시 위험한 구두와 넥타이 착용 거부 △법위반 부실한 안전보건교육 시 서명 거부 △추락방지 없는 고소작업 등 위험작업 거부 △비인간적 자아비판, 반성문, 대책서 제출 요구에 불응 △재해 발생 시 산재로 처리 등이다.

노조는 이날 전국 노동부 지청에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이사와 각 서비스센터 사장을 산안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노조는 산안법, 산재보상법 위반 사업주 처벌을 촉구하는 투쟁을 진행한다. 노조는 노동부에 현장조사와 특별관리감독을 요구하고 노조에 ‘삼성 A/S노동자 건강권 침해 신고센터’를 설치 운영하기로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