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남 칼럼] 숲에서 세상을 만나다 <11>

 사람들은 살아가며 누구나 가까운 벗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상처들을 가슴 한 켠에 묻어 두고 삽니다. 상처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상처란 원래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것입니다. 물론 일면부지의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받은 상처는 사실 상처라 할 것도 없습니다. 잠시 기분이 나쁘고 잠시 아프고 마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평소에 믿고 사랑하는 사람, 의지하던 사람, 많은 도움을 주던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오래 남습니다. 잘 잊히지도  않습니다.

상처도 대개 사람들을 잘 믿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받게 마련입니다. 저도 그런 편입니다. 그래서 삼십대에도, 사십대에도, 2008년도에도, 최근에도 그런 상처를 받았습니다. 상처도 자주 받다 보니 내성이 생기고 단련이 되기도 하고, 나이도 제법 들다보니 흘려보내는 지혜도 깨닫게 되어 젊은 날 보다는 쉽게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상이 남아 한 때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귀찮고 싫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몇 달, 몇 년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감사하고 기뻐하며 여느 때처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끔 어떤 이들이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으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대답할 말이 좀 궁색해 집니다. 무슨 이렇다할만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은 사람으로부터만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들은 또 다른 사람에게서 치유 받기 마련입니다. 선배이건 후배이건 가릴 것 없이 좋은 사람, 좋은 벗들은 기분을 좋게 합니다. 그리고 좋은 사람과 좋은 벗들이 만나 형성되는 이 좋은 기운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처들을 절로 치유해 줍니다. 이것이 제가 벗들에게 늘 감사하는 이유입니다.

벗들 모두에게 참으로 고맙다는 말씀드립니다.

당신들로 인해 때로 상처 받고 때로 힘들더라도 늘 감사하며 즐겁게 살아가고, 살아 올 수 있었습니다.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고, 아름다운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마음껏 그리워하며 살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그 뿐인가요. 살아가는 날 동안 다시 또 상처 받더라도, 상처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깊이 신뢰하고 사랑하며 매 순간을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그대들로 인한 것입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랑과 존경의 마음 전합니다.

어제는 오랜 벗이 찾아 왔습니다. 젊은 날 공장을 다니고, 노동운동을 하던 시절의 벗입니다. 노래 ‘노동의 새벽’을 작곡하던 시절의 동지였습니다. 30년만의 만남이었습니다. 가볍게 배낭을 꾸리고 편백나무 숲을 걸었습니다. 오름을 걸었습니다. 함께 건너오고 각자 지나온 수 십 년의 세월 동안 가슴에 묻어 둔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한 나절 걷는 동안 나누고도 아직 가슴 한 켠에 남아 잇는 이야기들은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에 실려 보냈습니다. 그런 후에도 미련 남아 미적거리며 떠나지 못하던 이야기들은 내려오는 길에 깊고 그윽한 편백나무 숲에 남겨 놓았습니다.

그렇게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만난 어우러진 날이었습니다.

최창남 백두대간 하늘길 이사장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노동과세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