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들

“가만히 좀 있어!”, “넌 왜 이렇게 말을 안듣니?”, “선생님 말씀 잘 들어~”... 4월 16일 이후 사용하지 않는 말들이다.. 5살 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며 미안함에 눈물 흘렸던 것도, 매일 배달되던 신문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출근길에 신문을 보다가 감정이 복받쳐 내릴 정거장을 지나친 것도, 매일 인터넷을 보면서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했던 것도 다 4월 16일 이후 달라진 일상이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수 없이 해왔던 일상의 언어들도 4월 16일 이후 의미가 달라졌다. 교복, 수학여행, 푸른 바다, 등대, 유람선, 하늘에 떠 있는 별... 아련한 추억의 단어들이지만 4월 16일 이후, 더 이상 낭만만이 깃든 단어들은 아니다.

달라지지 않은 것들

어른들을 사회를 국가를 믿었던 아이들 대신 탈출하는 선원들을 구하고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밤새 10Km가 넘는 길을 걸었던 유가족들을 진도대교에서 막아섰던 경찰. 90여 일 동안 생떼같은 자식들을 잃은 슬픔을 치유하지도 못한 채 최후의 수단으로 단식하는 유가족들의 천막 설치를 막으며 “광화문 광장에서 야영하면 안된다”고 강변하는 공무원. 허울뿐인 국정 감사를 무력화시키고 유가족들을 닭에 비유하고 심지어는 교통사고에 비유하며 ‘특별법을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유포하는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심재철 위원장. 팽목항에서 진도체육관에서 안산 합동분양소에서 수 없이 많은 유가족들을 만나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대통령. 4월 16일 이후에도 달라지지 않은 것들이다.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일상생활을 하려고 애쓰지만 순간순간 마디마디마다 무너지는 유가족들. 엄마 아빠 앞에선 씩씩하지만 남몰래 흘린 눈물 때문에 눈이 다 짓무른 아이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면 죽은 형아들 다시 살아나?”라고 묻는 7살 아이. 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줘야 하지 않을까?

오직 아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전국 각지를 다녔던 유가족들에게 엷은 미소라도 짓게 해 줄 수 있었던 건 노동조합이었다. “걱정하지 마시라”, “좋은 세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유가족들과의 약속을 지켜야하지 않을까?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100일이 다가오는데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10명이나 있고 억울한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신석호/정치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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