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가 6월28일 삼성전자서비스지회(지회장 직무대리 곽형수, 아래 지회) 기준단체협약을 합의하며 지난했던 열사투쟁과 단체협약 쟁취투쟁을 일단락 지었다.

노조는 대재벌 삼성과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최대’, ‘최다’ 수식어가 붙는 다양한 투쟁 기록을 세우는 등 상당한 조직역량을 기울였다. 노조는 지난 3월부터 전국노동자대회를 포함해 일곱 차례 전국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노조 투쟁기금과 전 조직이 모금한 열사투쟁기금을 지원했다. 6백 명이 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은 강남 한복판에서 41일간 노숙투쟁을 벌일 수 있었다.

많은 사회적 관심과 노조차원의 역량을 기울인 이번 투쟁은 숱한 평가와 논쟁 지점을 남겼다. 평가 논의에 여러 단위가 다양한 이견을 제출하기 마련이지만 투쟁의 또 다른 주체였던 노조 지역지부 간부들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을 ‘최고’의 투쟁 주체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노조 차원의 면밀한 평가 작업에 앞서 이 같은 ‘최고’의 투쟁 주체들이 진단하는 이번 투쟁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했다.

   
▲ 노조 지역 간부들은 삼성전자서비스 조합원을 ‘최고’의 투쟁 주체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김형석

 
굵은 성과, “진정한 노동자로 거듭났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노조설립을 마음먹으면서 부딪힌 첫 번째 벽은 내부의 ‘삼성은 어렵다’라는 선입견이었다. 상담에 응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강한 자본과 맞붙으려면 그만큼 강력한 노조가 필요했고 이들은 금속노조 가입을 선택했다. 지회 간부들은 금속노조 가입과 단협체결로 삼성의 76년 무노조 역사를 깨뜨렸다는 점을 가장 큰 성과로 여긴다. 지회 간부들은 “노동운동의 역사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지회 간부들이 투쟁에 돌입하며 정작 걱정했던 것은 이런 선입견에 있지 않았다. 조합원들은 삼성 자본이 마련한 경쟁구도에 오랜 시간동안 길들여져 있었다. 임금과 직결된 물량과 성과를 놓고 센터와 동료 사이 치열하게 경쟁해왔다. 서로 적으로 여기던 이들이 힘든 투쟁을 하며 ‘화합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앞섰다.

이용철 서울 부지회장은 “조합원들이 투쟁을 거치면서 다른 직종, 다른 센터 조합원을 적이 아닌 동지로 생각하게 됐다. 자본이 조장한 경쟁 심리를 투쟁으로 극복했다”고 말한다.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투쟁 방향을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다른 센터 조직 상황을 감안해 강한 주장을 펴던 분회장이 주장을 접기도 했다”며 “치열한 토론은 벌이되 결정에 복무하는 진정한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로 중요한 성과는 임금이다. 지회는 애초 임금수준과 더불어 임금의 투명성과 안정성 확보를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지회는 이번 투쟁으로 여름 성수기에 연수입 대부분을 거두고 비수기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기형 임금구조를 극복했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월 120만원의 기본급을 확보했다. 이 금액은 외근직 서비스 기사가 비수기에 평일만 일한 임금에 해당한다.

자비로 충당하던 차량유지비, 공구구입비 등 비용을 회사에서 부담키로 하면서 임금상승 효과도 거뒀다. 본사에서 내려오는 수수료에 센터 사장이 덧붙이는 공개하지 않는 ‘임금 테이블’의 투명성을 높이면 이후 임금 수준도 오르리라 예상하고 있다.

이용철 서울 부지회장은 “신참 사원은 비수기 월급에서 차량유지비 등을 빼면 40~50만원을 받았다”며 “월 120만원의 기본급에 유류비를 더해 임금 안정성을 일부라도 높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 부지회장은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내년 갱신 시점에 맞춰 실력껏 싸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지회 합의 이후 유사 업종에서 알아서 임금이나 복지혜택을 늘리고 있다”며 “지회의 단협이 일종의 기준 역할을 하게 됐다”고 조직 외적인 성과를 설명했다. 전국에 서비스망을 두고 서비스 기사를 혹독하게 쥐어짜던 자본들이 삼성전자서비스를 기준으로 노동조건을 재조정하고 있다. 

임금체계, “우리에게 요구안이 없었다”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 중수리 기사가 지출했던 연간 4백만 원에 육박하는 공구 구입비나 기사들의 차량유지비는 애초부터 회사가 부담했어야 한다. 조합원들이 노예에 가까운 착취를 당해 온 셈이다. 이를 제외한 임금 수준이 향상됐는가는 노사 모두 아직은 미지수다.

업무 숙련도, 수리 제품과 기술 난이도, 출장 거리 등 건당 수수료를 산정하는 임금 변수가 워낙 많은데다 센터 사장들이 떼어 가는 각종 운영비의 비공개 산정 공식까지 반영해야 한다. 기존의 건당 수수료체계에 고정급을 도입한 조합원 평균 임금을 당장 계산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가 “우리조차 임금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할 수 없었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투쟁 결과로 지회 조합원들이 "치열한 토론은 벌이되 결정에 복무하는 진정한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김형석

오기형 지회 총무위원은 “큰 틀에서 임금 상승을 이뤘다고 보지만 6개월 정도 실제 임금을 받아 봐야 대략적인 규모를 알 수 있다”며 “임금과 근로조건 자료 공개를 명시한 단협 11조에 의거해 임금의 투명성을 높이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따로 있다. 임금의 향상, 임금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할 임금체계 개선 문제는 이같이 중요했지만 노조 차원의 대안은 부재했다. 심지어 노조는 임금 분석조차 없이 교섭에 나섰고 정책 지원은 없었던 셈이었다. 오 총무위원이 “사실 우리에게 최저 기준만 있었지 구체적인 요구안이 없었다. 원청이 숨어 있는 교섭에서 실권 없는 상대에게 ‘어쨌든 납득할 만한 안을 내라’며 압박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노조는 아직까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임금체계에 대한 분석과 대안마련에 착수하지 않았다. 김혁 노조 정책기획실장은 “노조 차원의 연구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8월 무렵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언제쯤 본격적인 대안마련에 착수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교섭틀 부재, “내년에도 이렇게 교섭해야 하나” 

구체적인 임금 요구안이 부족했던 노조는 최종 결정권을 가진 삼성에서 제시안을 받아올 교섭대상을 찾아 교섭 결렬과 재개를 반복했다. 결국 노조와 지회는 마땅한 대안을 내기 힘든 임금 의제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 우선 기준단협을 쟁취하기로 목표로 수정했다.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이 문제가 “일반적인 단일 사업장이었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일종의 대리전 양상이 되면서 장기투쟁 조짐이 보였고 불가피하게 노조 인정이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교섭 방향전환에 따른 문제가 발생했다. 임금의제 최종 결정권은 원청이 가지고 있지만 노조활동을 위한 단협은 센터 사장들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교섭을 하자는 노조를 놓고 원청과 하청 사장이 숨바꼭질을 벌이는 하청노동의 구조적인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노조는 이 같은 상황에서 노사 모두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정적인 교섭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짜지 못했다. 이 역시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최경환 경북 부지회장은 “내년에도 이렇게 교섭을 해야 하나 싶다. 그동안 끊임없이 교섭형태가 바뀌었다”라며 “처음부터 교섭틀을 짜지 못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부지회장은 “결과론이지만 노조와 센터사장단 간의 중앙교섭으로 밀어붙일 것을 검토했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오기형 총무위원은 “사용자협의회 구성을 노조차원의 과제로 하지 않는 이상 이 같은 상황을 반복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 오기형 지회 총무위원은 "사실 우리에게는 최저 기준만 있었지 구체적인 요구안이 없었다. 원청이 숨어 있는 교섭에서 실권 없는 상대에게 '어쨌든 납득할 만한 안을 내라'며 압박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임금체계 마련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사의 큰 과제다. 김형석


층위별 교섭의제 혼란, “노조차원의 정리가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사는 △염호석 열사 △업체 폐업 △조합활동 보장 △임금 등 핵심 쟁점에 의견일치를 본 지 이틀만인 6월28일 기준단협에 합의했다. 이 와중에 협정근로, 징계, 휴일 대체 근무 등 심각한 논쟁거리가 단협에 포함됐다. 이전 경인지역에서 대표교섭을 벌이며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못한 안을 짧은 시간에 적용한 결과다.

결국 각 분회는 중앙에서 합의한 기준단협 보완을 분회별로 시도했지만 어느 수준에서 어디까지 교섭을 벌일지를 놓고 센터 사장과 갈등 중이다. 교섭 층위별 교섭의제 구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올해 처음 교섭을 해보는 지회 조합원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다. 지역지부 소속이라면 해당 지부의 지침에 따르지만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조 직할이다. 노조는 이와 관련한 지침을 전혀 내리지 못했다.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지회 임원은 임단협을 분석하지 못했고 개별적으로 해석해 조합원에게 전달했다”며 “초보로서 베테랑처럼 싸워야 했다”고 어려움을 설명했다.

최경환 경북 부지회장은 “사실 이런 부분은 노조에 대한 실망이 크다”며 “지역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데 노조차원의 문제 정리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도한 비밀주의, “개인적인 해석에 의존해야 했다” 

다른 맥락이지만 혼선은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의 노조 가입상담부터 동고동락해 온 지역지부 담당 간부들에게도 있었다. 긴박한 중앙의 교섭 논의에 원거리에 있는 노조 간부들이 수시로 참여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노조의 비밀주의가 소통의 문제를 일으켰다는 지적이다.

이태진 대전충북지부 미조직비정규 부장은 “지회 조합원들은 SNS로 심각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공식 논의체계에 익숙한 노조 간부들은 교섭논의에 좀처럼 참여하기 어려웠다”며 “회의결과도 지나치게 단순해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이 부장은 “공식채널이 항상 한발 늦거나 열리지 않아 중앙 소식을 전하는 동지들의 개인적인 해석에 의존해야 했다”는 설명이다.

이렇다 보니 노조는 조합원의 실체적인 필요와 동떨어진 주제로 한 인터넷매체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른바 ‘블라인드 교섭’이라는 생소한 신조어가 생겨난 배경이다. 한 노조 간부는 “깜깜이 교섭이라는데 실시간 생중계하는 실무교섭이 있는가. 간략한 전후 설명으로 될 문제가 공연히 커졌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조합원의 극단적 선택에 대해 "우리는 삼성전자 서비스 직원으로서 쌍욕을 먹어도 웃으며 말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남을 설득할 수 있을지언정 정작 자신을 설득하지는 못한다"고 풀이했다. 김형석

연이은 자살,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다”

끝으로 노조와 지회가 짊어진 시급한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창립 1년도 안 돼 두 명의 열사 외에 자살시도를 한 지회 조합원은 두 명이나 더 있다. 7월19일 부산 광안센터 조합원이 조합활동에 대한 고민과 생활고로 또 다시 자살했다. 금속노조 초유의 상황이다.

곽형수 지회장 직무대리는 이렇게 풀이했다. “우리는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으로서 쌍욕을 먹어도 웃으며 말하는 훈련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남을 설득할 수 있을지언정 정작 자신을 설득하지 못한다. 자신의 속마음을 풀어낼 방법을 뺏기고 산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타개할 유일하고 정당한 수단으로 노조를 선택했는데 회사에 탄압받고 교섭은 지지부진해지자 결국 해결방법을 못 찾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곽 직무대리는 “현실적으로는 다윗과 골리앗도 안 되는 아기와 골리앗 싸움이었다. 분명히 아쉬운 점은 있으나 우리의 준비가 부족해서였다”고 평가한다. 곽 직무대리는 노조에 대한 무한 신뢰를 보인다. “임단협 기간이고 금속노조에 많은 투쟁사업장이 있는데도 노조는 큰 역할을 해줬다. 노조는 한 사업장만 볼 수 없다. 우리 임원이 좀 더 빨리 전문가가 돼야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가 자신들의 희망과 속마음을 풀어낼 유일한 수단이었던 금속노조. 노조에 가입한지 1년 만에 어렵사리 짧은 첫 걸음을 떼었지만 이들이 남긴 발자국 깊이는 결코 얕지 않다. 골리앗을 꺾은 아기인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이 걸음마가 아닌 뜀박질을 하기 위해 풀어야 할 노조의 과제와 평가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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