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로 사랑하는 딸을 잃고 죽음의 진실을 알기위해 40일 동안 단식을 벌인 김영오씨는 유민이 아빠이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무슨 대단한 배후세력의 발견인양, 눈을 흘기는 사람들이 있다. 금속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에 '순수한 유족'이 아니라니, 이게 도대체 말인가 망상인가.

세월호 유족은 노동자여도 안 되고 야당과 연이 있어도 안 되며, 그래야 순수한 유족이란 말인가. 도대체 그 따위 순수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자격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오히려 유족의 사적관계를 캐내며 순수니 불순이니 따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악의적인 선동이며 이간질이다.

나는 오히려 변희재같은 황당한 인간이 출몰하는 이유가 더 궁금하다. 그는 그런 식의 근거 없는 말로 최근 법원으로부터 두 번이나 명예훼손죄 판결을 받은 바 있지만, 일부 언론은 그런 자들의 말을 날름 받아쓴다.

유민아빠가 금속노조 조합원이라 단식 의도가 불순?

▲ 변희재 트위터

금속노조 조합원이란 사실이 불순함의 근거가 된다는 인식이야말로 반문명적이다. 민주주의를 안다면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소속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헌법 또한 노동자는 노조로서 단결할 자유와 권리가 있음을 못 박고 있다. 이런 이유들로 우리가 그나마 하루 16시간을 일하지 않게 된 것이고 쥐꼬리만큼이라도 월급이 올랐던 것이며, 주말에 가족들과 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조차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알 것이다.

이는 어쭙잖게 생색을 내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럴 자격도 없다. 다만 노조에 가입했다고 불순한 유족이니 하는 말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유가족에겐 모함이며 금속노조에겐 모욕이다. 저들은 왜 노동자 중 고작 10% 이하만 노조에 가입한 권리부재의 현실은 지적하지 않고, 거꾸로 그 10%를 불순하다 말하는가. 그런 당신들은 누구인가.

나는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있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나는 불순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자부할 수 있다. 내게 노동조합 활동은 민주적 판단력과 인권감수성, 도덕성을 갖추라고 요구한다. 부족하지만 이를 따르려고 애쓰고 있으며, 노조 활동 외의 사생활에서도 함부로 언행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이기적인 이웃이 되지 않도록 남을 배려하며, 취미생활로 수십 명 동호회를 이끌더라도 민주적 토론과 공감에 애쓰며 권위적이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는 노동조합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노동조합은 나에게 공동체에 유익한 인간이 되라는 아름다운 규제를 해주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속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부지불식간에 욕망에 사로잡히고, 얼토당토 않는 주장으로 남을 모함하는 자들에 대해 수시로 증오한다. 최근에도 유민 아빠의 단식장 앞에서 인증샷을 찍어 올리며, "단식하다 죽어라!"라고 저주하는 사람을 봤을 땐 폭력의 욕구마저 느꼈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의 잔인한 말 때문에 무명 뮤지컬배우라는 그의 노동까지 박탈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에게도 거둬 먹일 사랑스런 아이들이 있으며, 중년의 자식을 걱정하는 늙은 부모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갈리는 정치적 견해, 뭘 감추려는가

▲ 김영오 씨 페이스북 사진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정치적 견해가 갈린다. 이건 순수를 따질 문제가 아니다. 유가족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가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상대를 향해 정치적이기에 불순하다는 주장은 무지하거나 가증스러운 선동일 뿐이다. 그러나 세월호의 진실을 찾고 유민 아빠의 앙상한 목숨을 걱정하는 일은 굳이 정치를 논하지 않고도 인간적 윤리만으로도 능히 해야 할 일이다.

교황이 그러했으며, 참사 초기 우리 국민 모두 또한 그러했다. 함께 아파하고 공분했으며, 이구동성으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없도록 진실을 밝히고 국가를 개조하자"고 했다. 그런데 고작 법적 예외와 금속노조 소속이라는 이유로 그 모든 약속과 인간성을 팽개치고, 죽음의 문턱에 선 유민 아빠를 기어이 저승길로 떠밀겠다는 것인가.

가장 불신 받는 집단인 국회의원들이 망치를 두드려 만든 법률적 전례가, 사회적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로 발돋움 하는 일보다 중요할 순 없다. 공익을 위해 법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고, 없던 전례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번 묻힌 진실은 밝히기 어렵고 안정과 생명을 위한 골든타임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런 참사를 또 겪어도 된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교통사고가 날 때마다 특별법을 하자는 거냐"는 이유로 거부해선 안 된다.

금속노조 소속임을 불온시하는 저 참담한 인식은 단지 몇몇 국민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부터 그 수하 정부여당의 인식 역시 별반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와 언론을 틀어쥐고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망가졌다는 둥, 하등 근거 없는 주장을 신문과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매번 이런 식이니 유족들이 분노하며 버티지 않을 수 없다. 보수진영은 제발 억지 주장으로 고단한 국민들을 미혹하지 말길 바란다. 도대체 무엇을 감추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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