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으로, 언론운동가로, 사회운동가로 평생을 살았던 성유보 전 동아투위 위원장이 어제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72세입니다.

‘이룰태림, 큰 숲을 이룬다’는 뜻의 이름으로 불리길 원했던 성유보 선생.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는 조문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김종훈 피디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오늘 오후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고 성유보 선생의 빈소에 시민사회와 언론계 사람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집니다.

이부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김두관 전 경남지사, 정연주 전 KBS 사장,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등이 조문을 왔습니다.

[김종철 /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상당히 체구는 작고 그런데... 정신적으로 강단이 있고, 기운이 강하시고 아주 온화하신 분이었죠. 평소에도 말을 높이거나 이런 건 아닌데, 자유언론실천 운동이나 민주화운동 목표를 정하면 확실히 강하게 추진하는 그런 분이었죠.”

   
 

김 이사장의 말대로 성유보 선생은 마지막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지난 6월 일본 대사관 앞 기자회견에서의 발언 모습입니다.

[故 성유보 선생 /지난 6월 주하 일본대사관 앞]
“지금도 동북아시아에서 긴장과 대립이 계속 되면 가장 큰 희생을 치루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와 우리민족이 아니겠습니까?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한민족은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일본의 역사왜곡과 재무장을 막아야 합니다.”

   
 

성유보 선생의 마지막 일터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라는 통일운동 단체였습니다. 이곳에서도 선생은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됐습니다.

   
 

[이용헌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대외협력국장]
“제가 개인적으로 받은 인상은 나도 저렇게 나이 먹고 싶다. 살아온 인생 역정이 얼굴에서 드러나는 온화함과 인생의 표상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운동도 오래하시고 나이 드시면 고집도 있으시고 완고함도 있으시잖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을 어떻게든 내세워 주려하고 실무 일하는데 있어서 젊은 사람들 의견 따라주시려 하고 정말 배울게 많았던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고 느낀 그런 분이다.”

   
 

선생의 삶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그대로 끌어안고 있습니다.

[한홍구 / 성공회대 교수]
“성유보 선생님은 74년 동아일보 계실 때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했을 때 주역으로 참여하셨고, 그 이후에 동아일보 해직 이후 재야운동 앞장서셨고, 84년 민주언론 협의회 민언협을 만들었고 그 이후에 말이라는 잡지 창간했습니다.

86년 민통련 만들어졌을 때 사무처장 지내셨고 88년엔 한겨레신문 창간시 초대 편집위원장이었습니다. 그 당시 다른 신문들 다 국장이었는데 국장이 부장에게 지시하고 부장이 기자에게 지시하는 그런 시스템이 아니라 다 같이 협력한다는 뜻에서 편집위원장을 맡으셔서 오늘날의 한겨레신문의 방향을 잡으셨죠.”

   
 

성유보 선생은 1943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968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이 언론 통폐합과 함께 ‘긴급조치’로 언론을 통제했을 땐, 성유보 등 <동아일보> 젊은 기자들이 노조를 결성해,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1974년 10월 중앙정보부가 ‘서울대 농대생의 데모’를 다룬 기사를 빌미로 <동아일보> 송건호 편집국장 등 간부들을 연행하자, 성 선생을 비롯한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의 기자·프로듀서들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이듬해 3월 이 선언에 가담한 언론인들이 대거 해직됐고, 이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동아투위를 결성했습니다.

   
 

이후 성 선생은 언론민주화운동을 이끌었습니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초대 사무국장를 맡아 월간 ‘말’을 창간했습니다.

1986년에는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사무처장을 맡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1988년 <한겨레> 초대 편집위원장을 지냈고, 98년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와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이사장을 맡았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지내며 방송 개혁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김종철 위원장은 후배 언론인들이 성 선생을 잊어선 안 되는 이유로 “진실을 추구하는 참 언론인”이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김종철 /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그분은 한겨레신문 창간 때도 그랬고, 진실과 진실을 알리는 언론, 권력을 정당하게 비판하고 감시하는 언론. 현역 언론인으로서 그렇게 하셨고 민언련 이사장이나 시민운동 단체에서도 그 길을 걸으셨고…….”

   
 

성 선생의 장례는 ‘민주통일 이룰태림 참 언론인 고 성유보 선생 민주사회장’으로 정해졌고, 발인은 모레로 예정돼 있습니다.

   
   
 

국민TV 뉴스 김종훈입니다. 

※ 이 기사는 제휴사인 국민TV가 제공한 뉴스입니다. ☞국민TV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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