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내모습 같은 이들과 같이 하고 싶다”

한 조합원이 금속노조 교육연수원 건립 비용으로 사용하라며 1백만원을 보냈다. 박육남 인천지부 개별조합원 그 주인공이다. 박육남 조합원이 보낸 돈은 아들이 추석 용돈으로 준 것.

“평소 아들이 용돈을 주지만 명절이라고 큰 돈을 줬어요. 부모님 좋아하는 것 하시라면서 준 소중한 돈이죠.” 박 조합원은 왜 이 소중한 돈을 금속노조 교육연수원 건립 비용으로 냈을까. 10월14일 인천지부 사무실에서 박 조합원을 만났다.

“아들이 준 돈을 소중한 곳에 쓰고 싶었어요. 노조에서 교육연수원을 짓는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아들의 소중한 마음을 그 일에 보태고 싶다고 결심했어요.

▲ 한 조합원이 노조 교육연수원 건립 비용으로 사용하라며 1백만원을 보냈다. 박육남 인천지부 개별조합원 그 주인공이다. 박육남 조합원이 보낸 돈은 아들이 추석 용돈으로 준 것. 박 조합원이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있다. 인천=김형석

박 조합원의 아들도 "엄마가 행복하면 좋다"고 흔쾌히 답했다. 박 조합원은 “70년대 처음 노조에 가입해서 한국노총에 교육을 들으러 간 적이 있어요. 그때 갔던 곳이 연수원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 금속노조에 그런 교육장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며 “연수원 짓는데 조금이라도 마음을 보태기로 결정하니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다”고 설명했다.

아들의 소중한 마음, 노조 교육연수원에 보태다

박육남 조합원은 지난해 10월, 1980년 당시 국가의 노조 말살 정책과 이로 인한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 감금, 고문 등이 국가폭력이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승소 판결로 지급받은 돈의 일부를 지역에서 투쟁하고 있는 해고자들의 생계비로 냈다.

박 조합원은 “남편이 대림자동차 해고자예요. 구속되고 힘들었을 때 남편 동료들이 돈을 모아서 생계비를 보태줬어요”라며 “큰 돈이 아니고 모든 생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서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잖아요”라고 심정을 말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금속노조 조합원이기 때문”이라며 웃는다.

박육남 조합원은 2012년 금속노조 인천지부 개별조합원으로 가입했다. 1980년 구로에 있던 한일도루코에서 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하다 해고된 지 30년 만이다. 가입 이후 이년 동안 박육남 조합원은 금속노조, 민주노총, 인천 지역에서 진행하는 교육과 집회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했다.

수련회와 선전전 등 얼굴을 보이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인천에서 유명한 열성 조합원이다. 박 조합원은 “금속노조 개별조합원으로 가입한 일은 내게 큰 행운이고 기회였다”고 말한다. 강화도에 사는 박 조합원은 대중교통으로 왕복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인천까지 와 노조 사업에 참여한다. 힘들만도 한데 일주일에 두세 번 오는 그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한다.

   
▲ 강화도에 사는 박육남 조합원은 대중교통으로 왕복 여섯 시간 가까이 걸리는 인천까지 와 노조 사업에 참여한다. 힘들만도 한데 일주일에 두세 번 오는 그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한다. 인천=김형석

박 조합원은 2012년 11월부터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아래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공단에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선전전도 하고 근골격계질환 실태조사, 유해물질 안내 등을 한다. 노동자 수첩을 나눠주기도 했다. 박 조합원은 “처음 사업단 회의에 참여하라는 제안을 듣고 내가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정말 좋았다”며 “사업단 일 하러 나올때는 '룰루랄라' 신이 나서 온다”고 말했다.

사업장 밖 조합원에게 기회 준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박 조합원은 “퇴직했거나 소속 사업장이 없는 조합원이 직접 참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며 “사업단은 나와 같은 개별조합원이 노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같이 계획하고 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사업단 활동의 장점을 강조했다.

박 조합원이 사업단 활동에 열성인 이유는 비정규직,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조직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은 날로 늘어나는데 이들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어요. 기존 노조 사업장이나 지회에서 하기 힘든 일이죠. 금속노조가 중심이 돼서 지역과 공단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한다는게 정말 뿌듯해요.”

   
▲ 박육남 조합원은 “노동자권리찾기사업단은 나와 같은 개별 조합원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같이 계획하고 일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고 기뻐했다. 노조 사업에 참여하는 기쁨을 설명하는 박 조합원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인천=김형석

박 조합원은 “노동자 안전과 생명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공단 가서 상담해보면 작업중지권이 뭔지, MSDS가 뭔지, 자신이 쓰는 유해물질이 뭔지도 모른채로 일하고 있어요”라고 안타까워했다. “나도 이년 전에 전혀 몰랐던 내용이죠. 교육 받으러 가서 들은 얘기는 꼭 공단에 가서 노동자들에게 알려주고 물어보고 해요.” 열심히 듣고 배운 노동안전 내용은 공단 사업에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박 조합원은 “여성노동자들 만나면 성추행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아요. 후배 노동자들의 힘든 상황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요”라고 털어놨다. “내가 노조에 애정도 많고 한도 커요. 노조에 대한 한이라면 아직 노동해방 만들지 못한 것, 노동자 세상으로 바꾸지 못한 것이죠. 내가 처음 공장에 들어갔을 때가 40년 전이예요. 그동안 바뀐 것은 자본이 더 교활해지고 우리가 속절없이 당한다는 것 뿐이지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변하지 않은 40년, 이제 바꿔야 한다”

박육남 조합원은 더욱 노조에 대한 애정이 커진다고 덧붙인다. “노조가 더 탄탄해야 세상도 바꿀 수 있잖아요. 세상을 바꾸는 힘은 결국 노동자들에게서 나오잖아요”라며 “금속노조가 그 중심에서 역할을 많이 했으면 해요. 나는 태생이 금속노조니까 조합원으로서 더 열심히 해야죠”라고 포부를 밝힌다.

   
▲ “노조에 대한 한이라면 아직 노동해방 만들지 못한 것, 노동자 세상으로 바꾸지 못한 것"이라는 박육남 조합원이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인천=김형석

박 조합원은 노조가 사업장이 없는 개별 조합원이 노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더 열어줘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박 조합원은 “난 스마트폰도 안 쓰고 SNS도 안 해요. 인터넷도 잘 모르지. 문자로 보내주는 일정은 열심히 참가하는데 다른 경로로 알 수 없어 답답해요. 배워서 홈페이지 들어가도 투쟁 일정이나 사업이 잘 안 올라와요. 많이 알고 같이 할 수 있도록 기회와 정보를 줘야해요”라고 말한다.

강화도에서 먼 길 나온 이날도 박 조합원은 사업단 회의를 하고 민주노총 인천본부 노동안전보건 학교에 참여했다. 다음주 참여할 일정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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