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가가 아니면 모두 노동자다 - 아르헨티나 노총 CTA

▲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CTA. 사진=연수단
▲ 집회에서 인사와 노래. 사진=연수단
모든 나라는 고유한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기의 관점으로 다른 나라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잣대를 들이대면 위험하다. 연수단이 “장님 코끼리 더듬듯 한다.”라며 스스로 경계한 이유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연수단은 CTA 본부 방문을 통해 사무총장 및 임원 전체, 상근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을 만났다. 아울러 산하 공공부문노조인 ATE도 만나고, 조선소를 방문하고, 금속 및 보건의료부문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1868년 처음 시작된 아르헨티나 노동자 투쟁은 조선소에서 파라과이 노동자와의 연대를 선언하면서 파업에 돌입한 것이라고 한다. 임금투쟁이 아니라 국제연대 투쟁으로부터 노동운동이 시작된 셈이다. 수많은 유럽노동자들이 아르헨티나로 이민해 오고, 젊은 노동자 중에 좌파출신들의 활동을 통해 노동조합이 만들어 지게 된다. 그만큼 긴 노동운동의 역사와 국제연대의 전통을 가졌다.

법에서 인정하지 않는 노동조합총연맹

아르헨티나는 반복되는 군사정권의 폭압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투쟁을 통해 90년대 들어서 민간정부가 들어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그러했듯이 새로 들어선 민간정부가 신자유주의를 민주적(?)방식으로 추진하기 시작한다. 이때의 노총인 CGT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함으로 인해 내부 반발이 형성된다.

복수노조 금지 등으로 대표성을 독점하고, 내부에서 혁신과 개혁을 봉쇄하고 자본가들을 위한 정책을 폈다. 그래서 공식부문의 노동자들만 가입되고 비공식부문 노동자들이 가입은 원천 봉쇄되었다.

CTA는 이런 상황에서 CGT의 어용성에 반발하면서 노조결성의  자유와 새로운 노동운동 모델을 지향하며 1991년 탄생하게 된다. 처음부터 이들은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은 물론 실업자, 예비노동자, 은퇴자 등 모두가 참가 할 수 있는 조직으로 출범한다. “다양한 노동계층의 전 노동자를 자유롭게 가입하게 하라”는 것이 주요 조직원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한 특징은 시민사회단체도 조합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CTA가 만들어지던 90년대 초반, 실업률은 20%에 달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회단체, 민중단체가 만들어졌다. 그들의 주요 활동은 주택, 물 등 공공서비스개선을 위한 활동이었다. 자생적이어서 소규모 조직이었던 이들은 이후 전국적인 투쟁과 연대활동을 위해 전국적 조직이면서 함께 투쟁할 수 잇는 대표조직으로 CTA를 택해 모였다.

CTA는 초기 설립 운영원칙이 노동만 아니라 물, 환경문제 등 다양한 운동을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받아들였다. 협동조합, 실업자조직, 마약을 반대하는 어머니 조직 등 다양한 세력이 CTA에 가입하여 함께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산하 조직으로 통째로 들어오기도 하고, 회원들이 개별로 가입하기도 한다.

CTA는 “사장이 아니면 모두 노동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는 물론 14세 이상은 모두 노동자로 보고 가입의 길을 열어 놓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노동조합 총연맹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여성와 남성노동자들의 총본부”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모두가 자유롭게 가입하는 조직운영으로 인해 정부는 법외노조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 노동기구(ILO)에서 17번이나 결의안을 보냈으나 아르헨티나 정부는 묵살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판결에서도 4번이나 개정하라는 판결이 내렸으나 여전했다. 마침 연수단이 아르헨티나를 떠나기 직전인 10월 2일, 20여년만에 법적 지위를 확보했다. 아직 나머지 과정이 남아 있어서 절반만 인정받은 셈이지만 커다란 변화가 시작된 셈이다.

조합원의 손으로 대표를 뽑는다

어용적인 CGT에 맞서면서 조직된 이들은 조합원 직접선거에 의한 지도부 선출이라는 규약을 가지고 있다. 100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지도부 전체를 직접 선출한다. 올해 5월 29일에도 노조 위원장은 물론 전국적으로 18,000명의 지도부를 선출하는 직접비밀 선거를 치렀다. 물론 후유증도 만만찮았다.

지난 2011년 지도부 선출을 둘러싸고 소수파가 불복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우고 야시끼(Hugo Yasky)라는 2006년부터의 위원장은 자신이 선거에 지자 이에 불복한다. 정부도 “소송이 마무리 될 때까지 전 지도부를 승인한다.”라며 친정부 성향인 이들을 편든다. 10개 주에서 선거부정이 있었고, 법원이 무효를 결정하여 3개월 뒤 재선거를 치른다.

결국 이들은 지도모양을 상징으로 하는 또 다른 CTA를 결성한다. 우리가 만난 CTA는 아르헨티나 국기에 있는 태양을 상징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정부에 대한 독립성을 강조한다.

조합원 수가 140만명 정도였을 때 둘로 나뉘어 70만 조합원으로 축소되었으나 현재는 다시 100만명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이를 보면서 이제 얼마 안 남는 민주노총 직선제를 떠 올렸다. 조합원의 손으로 지도부를 뽑는 것은 좋지만 휴유증 없이 직선제 도입의 취지가 잘 발휘될 수 있으려면 아르헨티나의 사례를 한번 볼 필요가 있겠다.

나는 CTA를 사랑한다. CTA와 연애 중이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이 한 줄기 빛이고, 행복하다.” 연수단에게 CTA 소개를 한 노동감시국의 루이스 깜보스(Lois Campos)가 우리에게 한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질문에 스스럼없이 이렇게 답했다. 많이 부러웠다. CTA는 투쟁을 통해서 조직하여 왔고 투쟁을 통해서 운영하고 있는데 대한 자부심이 컸다.

2000년에는 300명의 지도부들이 300Km를 행진하는 투쟁을 통해 노동기본권확보 투쟁을 전개했고, 3개월 동안 교육민영화 반대투쟁도 전개했다. 2001년에는 빈곤에 맞서 7개 대표 조직이 전국적인 투쟁을 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2년 투쟁을 통해 정권을 퇴진시킨다. 당시 정부가 최후 발악으로 시위대에 대해 반격하면서 30명이 죽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는 한국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다. 과거 1976년부터 지난 2001년까지 신자유주의 우등국이라 할 만큼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으나 결국 국가부도사태까지 이른 이 나라는 한국형 모델을 자주 모범으로 거론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CTA는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이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매우 궁금해 했다. 노동운동간에 보다 체계적인 연대가 이어질 필요가 있겠다.

연수단은 CTA를 보다 더 많이 알기 위해 공공부문(ATE), 금속, 의사와 행정보건직들로 조직된 노조 등을 만나기도 했다. 공공부문 노조는 27만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는 90년의 역사를 가진 조직이다. 군사독재정권의 ‘더러운 전쟁’시절 무려 142명이나 희생되기도 했다.

법으로 공공부문노조의 단체협상권을 보장한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국가가 아르헨티나라고 한다. 우리도 그렇지만 많은 부문이 민영화되고, 초국적 자본의 소유로 넘어가서 이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1990년에는 108만 노동자가 공공부문에 속해있었으나 2003년에는 24만명으로 축소되었을 정도다. 통신은 민영화되었고, 철도는 재국유화 과정을 밟았다. 현재 대부분의 병원은 국영 소속이지만 대부분 임금이 낮고 단체협약등도 약하다. 점점 민간부문이 커져가고 있어 문제라고 한다.

민영화가 남긴 폐해는 상상이상이었다. 한때 조선업 강국이었던 조선산업은 특히 심각했다. 우리가 방문한 리오 산티아고 조선소는 한때  70,000명의 조선 노동자가 있었으나 현재는 3600명의 노동자들만 남았고, 4교대로 일했으나 지금은 그조차도 대폭 축소된 상태다. 그나마 국가가 군대까지 동원하여 민영화를 시도했으나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지킨 결과였다.

CAT 산하 금속노동자들은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300Km를 운전하고 왔다. 철강과 자동차 소재산업에서 일하는 이들과 대화를 통해 금속노조 차원에서 긴밀한 연대를 하기로 약속했다.

연수단은 브라질에서 브라질 노총과 좋은 일자리 세계공동 행동의 날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아르헨티나를 방문 중이던 10월 1일 앞당겨 개최된 집회에 참가하여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전 세계적인 노력을 함께 전개하자고 호소하고, 연수단 전체가 파업가를 불러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 집회 참가자들과 함께. 사진=연수단

▲ CTA 앞에서. 사진=연수단

▲ CTA 위원장. 사진=연수단
환영한다. 나는 공무원 출신의 공공부문노동자다. 전투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민주노총 동지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다. CTA가 역점을 두고 있는 몇 가지 사업을 소개하겠다. 1990년대 아르헨티나는 신자유주의 정권이었다. 라틴아메리카 전체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공장이 파괴되는 등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동안 다양한 투쟁이 있었다. 이런 노동자, 민중들의 투쟁의 흐름이 모아져서 2001년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세계 사회포럼이 개최되었다. 여러분이 만난 인민연합당의 빅또르 헤나로라는 분이 이것을 만든 주역 중 한분이다. 우리 CTA 위원장 출신이다.

브라질에서 룰라가 최초로 노동자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고, 이후 베네주엘라의 유고 차베스 대통령 등 남미 전체에서 사회운동이 확장되었다. 세계사회포럼에서 영향력있는 이집트 지식인이 우리에게 한말이 있다. 그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노동조직 중 가장 투쟁적인 조직은 남아공의 노총인 코사투(COSATU), 한국의 민주노총,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CTA이다.”라며 우리와 여러분의 노조를 지목했다. 그래서 여러분의 투쟁을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키르츠네르 현 대통령이 2003년부터 집권중이다. 지난 10여년간 진보적 정권이 집권중으로 장점도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 현재 5,000여명의 노동자들이 법정에서 재판중이고, 전체노동자의 50% 정도가 비정규직노동자의 상황에 놓여있다. 많은 통계가 열악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겉으로는 진보적 정권이랄 수 있으나 우리는 이런 문제를 가지고 정부와 싸우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노동조합조직의 총연맹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아니라 여성, 남성노동자들의 총본부라고 소개한다. 협동조합, 실업자조직, 마약을 반대하는 어머니 조직 등 다양한 세력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지난 5월29일날 1만 8000명의 지도부를 선출하는 직접비밀 선거를 치렀다. 올해 만해도 2번의 총파업을 벌이는 등 가장 전투적 투쟁성을 갖고 있는 조직으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조합원 직접가입과 지도부 직접 선출 등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법외노조이다.

우리는 콜롬비아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무려 3,700명이나 살해 당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투쟁하고 있다. 국제연대를 조직하는데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민주노총과 CTA의 적극적인 연대를 희망한다. 이후 한국 방문을 하게 되면 꼭 민주노총 방문도 이루어 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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