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 과보호 되고 있다고 합니다.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잔 얘기도 나옵니다. 이런 얘기들은 흔히 ‘노동’ 관련 뉴스, 또는 ‘경제 소식’에 실립니다. 과연 ‘정리해고’ 문제가 노동이나 경제 뉴스일까요? 적어도 우리가 사는 한국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정리해고는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실업 신세가 되면 몇 달 나오는 실업급여 외에 국가는 아무런 보장을 해주지 않습니다. 사회안전망이 완전히 제로에 가까운 우리 사회에서 정리해고는 더 이상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적지 않은 해고 노동자들이 이혼이라는 불편한 현실과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이렇듯 정리해고는 가족을 파괴하는 문제입니다.

어느 회사에서 정리해고 되었다는 경력만으로 번번이 재취업은 좌절되었습니다. 점점 입에 풀칠하고 사는 삶도 어려워집니다. 친지들에게 돈 꿔달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죠. “벼룩도 낮짝이 있어야지” 하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가면서 비굴해지고 또 비굴해져야 했습니다.

술 한 잔 먹자고 연락할 동료? 그건 같은 처지의 해고자들하고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정리해고를 피해 살아남은 이들은 미안한 마음에, 해고자들은 서운한 마음에 점점 대화가 사라져 갑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살아남은 동료들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론 부럽기도 한편으론 질투가 나서 해고자들 대부분이 집을 옮겨갑니다.

몇 년 전엔 평택의 초등학교에서 어떤 교사가 아이들에게 쌍용차 해고자를 빨갱이에 비유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게 왜, 어딜 봐서 노동의 문제이고 경제의 문제인가요? 정리해고 문제가 그저 노동이슈나 경제 뉴스로 치부되는, 정말 그만큼이라도 된다면 한국은 엄청나게 발전한 사회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정리해고란 놈이 노동자와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회입니다.

게다가 이 ‘정리해고’라는 놈은 1,500만 노동자들 모두의 곁에 바싹 붙어 쫓아다니는 괴물입니다. 노동부 산하 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이 매년, 그리고 매월 고용보험 관련한 통계자료를 발표하고 있는데요. 정부 통계라면 실눈 뜨고 쳐다보는 저 같은 사람도 놀라 자빠질 만한 통계수치를 발견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1년 동안 “경영상 필요”와 “기타 회사 사정”으로 인해 실직한 노동자의 숫자가 무려 878,343명이나 된답니다. “계약기간 만료”와 “공사 종료”로 인해 실직한 노동자는 더 많아 978,764명에 달했습니다. 그 밖에도 “폐업, 도산, 공사중단”으로 실직한 노동자는 202,484명. 이 세 가지 항목을 합하니 무려 206만 명에 육박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위 3가지 항목을 노동자가 실직하는 ‘비자발적 사유’로 꼽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둔 게 아니란 뜻인데요. 그럼 이게 뭐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해고’입니다. 그 중 경영상 필요와 기타 회사 사정으로 해고당한 이들이 바로 ‘정리해고’의 규모고요. 계약만료/공사종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는 사유일 겁니다. 폐업·도산은 정규직·비정규직을 가리지 않지요.

다시 정리해 볼까요? 이놈의 한국 사회에서는 매년 1백만 명의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로 짤려나가고 있고, 1백만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계약해지라는 미명 하에 짤려나갑니다. 우리는 지금 한 해 동안 2백만 명이 해고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겁니다. 쌍용차와 코오롱 사태가 남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대기업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나마 잘 알려지는 편인데,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소리소문없이 잘려나가는 노동자가 부지기수입니다.

상황은 앞으로 더 심각해진답니다. 현대중공업은 창사 이래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다며 30% 임원을 정리했죠. 그럼 조만간 노동자도 30% 정리하겠다고 나올 겁니다. 적자가 난 것도 아닌 삼성전자는 ‘흑자폭이 줄었다’는 이유로 구조조정 칼날을 들이밉니다. 한국 사업을 축소하고 있는 한국GM 사정도 다르지 않죠. 이들 대기업이 이 정도라면 납품업체를 비롯한 중소기업은 벌써 한파가 몰아칠 겁니다.

“해고는 살인이다.” 이 얘기가 과장이 아니란 걸 모두 느낄 겁니다. 한국에선 매년 2백만 명이 연쇄살인을 당하고 있는 겁니다. 정규직 과보호니 정리해고 요건 완화니 떠들 상황이 아닙니다. 살인을 막기 위해 정리해고를 철저히 규제하고, 복지정책을 대폭 확대해 해고가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회 시스템을 갈아치워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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