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1월 24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쌍용차 해고자복직,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리해고 철폐 범국민대회'에서 쌍용차지부 김정욱동지와 이창근동지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그리고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6년을 싸워온 쌍용차 해고자들을 비롯해 이 땅 곳곳에서 저항하는 노동자민중들을 부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동지들이라고 했다.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이 대회에서 낭독한 글 전문이다. <편집자주>


▲ ⓒ 변백선 기자

며칠 전 굴뚝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김지도님, 우리 교섭해요."
집단 단식을 해도, 수백번 집회를 해도, 삼보일배가 오체투지가 되고,
심지어 스물 여섯이 죽어도 안되던 교섭이 65개월만에 이루어지던 날이었습니다.

김정욱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두 번 째였습니다.
처음 전화를 받은 건, 고법에서 승소판결을 받던 날이었습니다.
"김지도님" 불러놓고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목이 메어 말을 잇기가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그의 말을 기다렸습니다.

"김지도님, 우리 이겼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하고 싶었겠습니까.
우리 이겼습니다.

2009년 8월. 마실 물이 없는데도 땀은 하수구처럼 흐르고,
사람의 몸뚱아리가 오물덩어리가 되었던 그 무참하던 여름.
20년을 일했던 노동자도 처음 올라가 본 공장 지붕.

여름 내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던 하늘에선
최루액이 소낙비처럼 퍼부었고,
헬기에서 미사일처럼 떨어진 특공대들은
우리에 갇혔다 탈출한 석 달 굶은 맹수들처럼 피맛을 즐겼습니다.

77일을 단전 단수된 공장에 갇혀
시원한 물 한 컵 마시고, 샤워하고,
깨끗한 이불에서 잠 한 번 자보는 게 소원이었던 노동자들은
유치장으로 끌려가고, 정신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스물 여섯의 죽음.
문상을 가서 유가족으로부터 들었던 '밥벌레'라는 비아냥은
온몸을 짓밟던 군홧발보다
얼굴에 박혔던 테이저건보다 아팠을 겁니다.

그로부터 6년.
처음 이겨본 승리.
6년 만에 처음으로 쌍용차 정리해고의 진실이 고법에서 밝혀졌건만
그 진실은 9개월 만에 대법에 의해서 짓밟혔습니다.

어떤 뉴스도, 트위터의 소식들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가 한 장의 봤습니다.
김정욱 동지가, 마흔이 넘은 사내가, 두 아이의 아빠가,
23살에 입사해서 16년을 일하고 해고된 노동자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굴뚝에 있습니다.
굴뚝에 올라가서도 경비들에게 죄송합니다 소리쳐 인사를 했다던 그가,
굴뚝에 있습니다.
일회용 컵을 쓰지 말자고
개인용 컵을 만들어 지부 사무실 벽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 매달아놨던 그가,
굴뚝에 있습니다.

허리가 아파 30분도 앉아있기 힘든 그가 굴뚝에 새우처럼 구부러진지 43일째입니다.
달팽이관 이상으로 인한 현기증으로 땅에서도 서 있기가 힘든 이창근이 70미터 허공에 매달려 있습니다.

1년만 버텨보자고 했는데
형님들이 다 감옥가는 바람에 떠날 수가 없었던 유제선이 있고,
동생들 고생하는데 혼자만 갈 수 없었던 김수경이 있고,
정규직 판결을 받고도 공장이 아니라 굴뚝 아래서 선잠을 자는 복기성이 있고,
단식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도 전에 감옥에서 위장이 뒤틀리고 잇몸이 내려앉는 고통 속에서도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김정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243일째 폐허가 된 공장 굴뚝에 스스로 깃발이 되어 나부끼는
스타케미칼 차광호가 있습니다.
9년째 싸우는 콜트콜텍이 있고, 기륭이 있고,
밀양의 어르신들이 계시고, 강정이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동지들.
참 자랑스러운 사람들.

주강이에게, 내린이에게, 민지에게 그들이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스물 여섯의 죽음 앞에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편안히 술 한 잔 바칠 수 있길 바랍니다.
상처난 몸과 마음으로 6년을 떠돌았던 해고자들이 오늘 처음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들이 공장으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밥 먹고, 화장실에서 똥싸고, 이불 덮고 잘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 삶이 더 이상 기도가 아닌 소원이 아닌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쌍용차 동지들이 자신들의 절박함을 뒤로 한 채 그 여름 평택에서 부산까지 걸으며, 희망버스를 타며 목 메이게 외쳤던 구호를 함께 외쳐보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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