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 현장위원회 송복남 총무부장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심정보 조합원. 사진=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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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던 지난 4월 16일 2명의 노동자가 부산시청 광고탑에 올라 7월 30일 현재 106일 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부산지역 대표적 막걸리 브랜드인 ‘생탁’을 생산하는 부산합동양조의 일반노조 현장위원회 총무부장인 송복남 조합원(54)과 택시노동자인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한남교통분회 심정보 조합원(52)이 그들이다. <노동과세계>가 7월 30일 부산시청 앞 광고탑 고공농성 현장을 찾아가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만났다. <편집자주>


“택시·생탁노동자 고공투쟁 민주노조 사수하자!”
“복수노조 악용한 파업파괴 민주노조 파괴행위 중단하라!”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폐기하라! 민주노조의 노동3권 보장하라!”
“복수노조를 빌미로 한 파업·노조파괴 중단하라! 인간답게 사는 길에 노동자는 하나다!”
“민주노조 사무실 제공 사회적 합의 불이행하는 한남교통사업주를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라!”

<노동과세계>가 부산을 찾은 7월 30일 펄펄 끓는 폭염이 이 도시를 덮치고 있다. 오전부터 섭씨 30도를 넘어섰고, 밤에도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가 계속되고 있다. 부산지하철 시청역에 내려 밖으로 통하는 계단을 오르는 길에 투쟁가가 쩡쩡 우렁차게 울려퍼진다.

송복남 부산일반노조 부산합동양조 현장위원회 총무부장과 심정보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 조합원이 복수노조를 인정하고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라고, 법인택시에 전액관리제를 도입하고 부가세 경감분을 환수하라고 요구하며 폭염과 장마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다.

천연옥 부산일반노조 부위원장(51), 변재승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장(63), 김종환 부산합동양조 현장위원회 조직부장(55)을 비롯해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연대단체 성원들이 광고탑 아래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고생 많으시죠?”
“아입니더. 다 이렇게 싸우는거 아입니꺼. 더 어렵고 힘든 데도 많잖아예.”

마침 점심시간이라 농성자들은 식사를 하려던 참이다. 천연옥 부산일반노조 부위원장이 “식사하이소” 라며 한쪽 자리에 그릇 2개를 가져다준다. 채소와 버섯을 듬뿍 넣은 비빔밥과 미역오이냉국. 현장에 오자마자 한 일 없이 밥부터 먹기가 면구스러운 눈치를 챘는지 옆에서 자꾸 어서 들라고 채근을 한다.

마지못해 숟가락을 드는데 토마토를 갈아 만든 쥬스까지 가져다 준다. ㅠㅠ;
“어서 드이소. 우리는 먹었어예.”

기차를 타고 오는 길에 김영신 부산일반노조 사무국장이 보낸 문자를 받았다. “생탁·택시 시민대책위에서 매일 농성장에 점심식사 반찬연대를 하고 있습니다. 점심식사는 농성장에 오셔서 같이 하세요.”

▲ 사진=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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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탁·택시 노동자가 지난 4월 16일 광고탑에 올랐고,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도 7월15일부터 농성을 벌이고 있다. 420장애인차별철폐연대 부산공동실천단이 여기서 농성을 시작한지 50여일이 됐다.

바로 옆에는 전국민주연합노조 부산보건소지부 방문간호사 노동자들 농성장도 있다. 만덕 5지구 원주민 다 쫓아내는 말로만 주거환경개선사업을 규탄하고, 만덕 주민의 주거와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으라고 촉구하는 피켓도 눈에 띈다.

시청 후문에는 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농성을 전개하고 있다. 풍산마이크로텍지회는 3년을 싸워 대법원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았지만 복직한지 두 달 만에 공장에 불이 났다. 화재 원인과 진압과정 모두 의혹투성이다. 현재 휴업상태에서 노동청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

부산 전역이 노동자 민중의 피눈물로 얼룩져 있다.

생탁·택시 고공농성시민대책위 소속 연대단체들이 요일을 정해 점심식사 반찬 연대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광고탑 고공농성이 시작되자  생탁대책위가 생탁·택시고공농성대책위로 확대개편됐고 관련 단체들이 순번을 정해 매일 점심을 함께 먹는다.

오늘 점심식사는 부산여성단체연합 부산여성회에서 마련했다. 농성하는 조직과 노동자들이 한 곳에 있으니 함께 먹는다. 밥은 농성장에서 하고 연대단체가 만들어온 반찬을 나눠먹는다. 적게는 10명에서 많게는 40명까지 식사하는 인원은 늘 다르다.

그런데 여기 농성장에... 길거리에... 냉장고가 있다. 천연옥 부산일반노조 부위원장. “냉장고 있는 농성장은 처음 보시지예? 저걸 경찰이 치우라고 자꾸 하는데... 그나마 저게 있으니까 이 더위에 션한 물도 마시고... 광고탑에도 올려보내고... 그래예.” 부산지하철노조에서 전기를 공급해줘서 냉장고와 최소한의 전기를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한쪽에 전자레인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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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중인 송복남 동지는 대상포진을, 심정보 동지는 심한 습진을 앓고 있다. 지난 7월 9일 인도주의의사협의회 의료진이 올라가 진료를 했다. 송 조합원은 대상포진을 치료했지만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으며, 심정보 조합원은 습진이 심각한 상태다.

대상포진과 습진 모두 주사를 맞고 매일 물로 씻고 약을 바르며 집중치료를 해야 하지만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기껏해야 생수병에 물을 담고 뚜껑에 구멍을 뚫어 올려 보내면 그걸로 겨우 몸을 적시는 정도다. 폭염에 지쳐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엔 역부족이다.

생탁 현안 관련해 지난 6월 19일과 24일 새정연 국회의원들의 중재로 공식 교섭을 진행했다. 쟁점은 고용과 노조활동 보장, 생계비 지급 등 3가지. 사측은 구두 상으로는 약속할 수 있어도 합의서는 쓸 수 없다고 했다.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걸로 노동조합은 판단했다.

사실 택시지부 문제가 꽤 진전된 상황이라서 생탁·택시 노동자가 함께 내려와야 한다는 인식을 모두 하고 있기 때문에 부산시청도 나섰다. 부산시청 일자리본부장이 생탁 사장들을 불러 지금 사태를 해결하자고 했지만 생탁 사장들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생탁 노동자들은 2014년 1월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를 만들 당시 부산합동양조의 노동조건은 월 1회 쉬고, 일요일 특근수당도 안주고 점심 때 고구마 하나로 식사를 대신했다. 연차휴가와 연차수당도 없었다.

노동자의 70% 이상이 촉탁계약직으로 계약을 한 후 130~20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렸다. 조금이라도 입바른 말을 하면 회사 관리자들은 고압적 분위기로 “다니기 싫으냐?”며 협박을 일삼았다. 당장 생존이 달린 노동자들은 잘리기 않기 위해 군소리 없이 일해야 했다.

생탁은 부산에 두 곳 공장을 갖고 있고 사장이 50명이다. 연산공장과 장림공장. 장림공장에 25명, 연산공장에 15명인데 장림공장에만 노동조합이 있으니 직접 사장은 25명이다. 배당금만 챙기는 사장도 있고, 경영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장도 있다.

2014년 1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 10일차에 현장 대표가 사측의 꼬임에 넘어가 일반노조를 탈퇴했다. 조합원 30명을 회유해 한국노총을 만들었다. 파업투쟁은 생산에 타격을 주지 못했다. 파업 초기 매출이 20%까지 떨어졌지만 다시 생산공정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천연옥 부산일반노조 부위원장. “생탁은 젊은층 보다는 선거 때 새누리당 찍는 그런 나이 있으신 분들이 많이 마셔요. 막걸리는 생탁 아니면 취급을 아예 안한다니까요. 하루에 20만병이 팔린대요.”

부산합동양조 장림공장 연 매출액이 200억이다. 이 중 70억을 사장들이 배당금으로 가져간다. 관리직을 포함해 장림공장 노동자 50명이 받는 임금은 1년에 9억이다. 28년 동안 일한 여성노동자 임금이 130만원이고, 술을 제조하는 남성노동자들 임금도 아무리 많아야 200만원에 못미친다.

▲ 사진=노동과세계
부산시가 이 사태를 해결해보려고 생탁 사장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사장들 태도가 이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 노동조합에 들려오는 소식이다.

민주노조가 교섭권을 잃게 될 상황을 앞두고 지난 1월 13일 부산지방노동청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노동과세계>가 시청 앞 농성장을 찾기 사흘 전 노동청 앞 농성장은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강제 철거됐다.

송복남 동지는 대상포진 뿐만 아니리 고혈압도 앓고 있어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 심리치료사가 광고탑을 다녀온 후 치료사는 송복남 동지를 잠시 지켜본 결과 우울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도 사태를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는 생탁 사장들에 대한 분노가 당연히 치솟을 테고 그 감정이 우울증 증세로 나타났을 것이다.

송복남 동지가 광고탑에 오른 후 진덕진 조합원이 세상을 떠났다. 8명이 남아 투쟁하다 2명은 몸이 아파 요양 중이고 현재 송복남 동지를 비롯해 6명이 거리에서 싸운다. 부산사회연대기구 ‘만원의연대’가 7월부터 생탁 노동자 6명에 대해 월 50만원씩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1년 넘게 임금 한 푼 없이 어렵게 투쟁하던 생탁 노동자들은 지원받은 돈의 절반을 투쟁기금으로 내놨다.

노동부가 부산합동양조 사업장을 점검한 결과 근로기준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근로자참여및협력증진에관한법률, 남녀고용평등과일가정양립지원에관한법률, 산업안전보건법 등 수없이 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부산합동양조는 형사입건 13건에, 수십 차례에 걸쳐 과태료를 부과 받고 시정조치를 명령받았다.

생탁 노동자들은 부산식양청 앞에서도 농성을 벌였다. “시민들의 건강권을 무시하는 생탁 업체를 부산식양청은 철저히 조사해서 명품 생탁으로, 좋은 친구 생탁으로 광고하는 작태를 척결해야 한다. 나아가 지난 세월 동안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묵묵히 일한 우리 생탁 노동자들!!! 이번 파업투쟁 반드시 승리해서 올바른 생탁으로 거듭나고 국민의 먹거리를 가지고 장난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부산지방노동청 앞에서도. “식품의약품법 위반, 공정거래법 위반, 근기법및노동관계법 위반 생탁사장 강제구인 조사하라! 전체금액 12억5천만원 손배소송 제기한 생탁사장들은 각성하라!”

막걸리를 제조 판매하는 생탁에 대해 부산YMCA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소비자 집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생탁에 대한 시민소송인단을 모집하며 서명전도 진행했다.

이옥형 조합원(53년생)에게 살짝 말을 걸자 썬캡을 벗고 활짝 웃어준다. 이 조합원은 2000년 생탁에 입사해 생산부 주입실에서 병에 술을 담고 상차하는 일을 담당했다. “현장을 바로잡자고 노동조합에 가입했는데 이꼴이 됐어요. 저도 생탁이 부산지역 막걸리 대표 브랜드로 잘되기를 바라요. 회사 이미지를 지켜야 하는데 술을 많이 팔아 자기 주머니에 돈 들어가는 것만 생각해요. 회사를 개차반으로 운영하니 언제 생탁이 폭삭할지 몰라요.”

▲ 사진=노동과세계
농성장 주변을 둘러봤다. 생탁·택시노동자들 투쟁을 응원하는 글들이 온갖 방식으로 농성장 주변에 도배돼 있다.

“생탁·택시 노동자들을 대학생들이 응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누군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시던 분들이란 건 알겠습니다. 그동안 많이 감사했습니다. 그 감사한 마음 안고 생탁을 사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을 응원하겠습니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항상 힘내십시오.”

“여러분의 그 노력과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항상 힘내시고 건강 잘 챙기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하루빨리 생탁 노동자분들의 기본 권리와 택시 노동자분들의 전액관리제 시행이 이루어지지도록 응원하고 지지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저 생탁 맛있게 마셔왔는데 이젠 못마신다 아입니꺼! 기분 좋게 서로 웃으며 생탁 마시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투쟁!”

“저는 부산토박이 남학생입니다. 막걸리도 많이 먹고, 택시도 자주 타던 그냥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생탁 노동자들이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일하시고 부당한 댕를 받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수십명의 사장들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정작 현장에 계시는 노동자들은 하대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빌어먹을 생탁 , 부산양조협동조합. 생탁 불매운동에 함께 하겠습니다. 부정부패의 온상인 생탁을 더 이상 먹지 않겠습니다. 힘내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광고탑 위 송복남 동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106일 째 지상 12m 위 광고탑 위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의 목소리가 뜻밖에 쩌렁쩌렁하다.

“어떻게... 건강은 괜찮으세요? 대상포진을 앓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주사를 맞고 치료를 해야 된다는데 그럴 처지가 아니잖아요. 치료를 하긴 했는데 후유증이 있어요. 심정보 동지는 곰팡이균이 번져 습진이 좀 심해요. 환경은 불결하지... 제대로 씻지 못하고 연고만 바르니까 잘 낫지를 않아요.”

그런 고통을 견디면서도 이들은 자본에 대한 규탄 목소리를 높인다. “생탁 파업이 생산에 타격을 줘야 하는데 현장대표가 30명을 데리고 배신하고 들어갔어요. 어용이 다수노조인 상황에서 민주노조가 단체교섭권도 단체행동권도 행사하지 못하면 노동조합으로서 의미가 있습니까? 개밥에 도토리 신세죠.”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해요. 민주노총이 국회 입법청원도 하고 제도를 바꾸지 못하면 우리 같은 민주노조는 살 길이 없어요.”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못살게 만드는데 박근혜정부는 노동법까지 개악하려 합니다. 투쟁하는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할 수 있는게 없잖아요. 그러니 하늘로 하늘로 올라갈 수밖에요.”

이들이 광고탑에 오르자 출두요구서가 날아들었다. 목숨 걸고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에게 천박하고 싸가지 없는 공권력은 경찰서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라고 한다. “제가 그랬어요. 당신들이 여기 올라와서 직접 얼굴 보고 조사하라고. 지금도 보름마다 문자가 와요. 출두해서 조사받으라고.”

송복남 총무부장이 격앙했다. “노동청이라면, 근로감독관이라면 노동자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근로감독관이 노조파괴를 사주하고. 노조를 깨는 전략을 회사에 알려주고, 현장대표를 꼬시면 노동조합 다 무너진다고... 그렇게 민주노조를 파괴하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그는 민주노총이 더 역할을 잘해야 한다며 민주노조에 대한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투쟁만 해서도 안되고, 체계적 힘을 가져야죠. 위원장 혼자 힘으로 조직을 발동할 수 없단거 잘 알아요. 그래도... 그래도... 민주노총이 움직이면 모든 노동현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자본이 그 약속을 지키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전광판에서 말라죽는 한이 있어도 꼭 이겨서 생탁 현장에 민주노총 붉은 깃발을 꽂을 겁니다. 부당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도 그렇고... 당장 밥그릇 때문에 우리를 배신한 사람들에게도... 이게 노동조합이구나... 그렇게 느끼도록... 민주노조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송복남 조합원과 심정보 조합원은 소음과 진동, 매연에 시달린다. 하루종일 폭염에 지쳐도 밤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 없다. “공간이 워낙 좁아서 운동은 못하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심정보동지랑 108배를 해요. 차광호동지가 매일 운동을 하라고 해서요.”

스타케미칼 차광호동지가 7월 8일 내려왔다. 고공농성 노동자들은 카카오톡을 통해 늘 소식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먼저 내려가는 사람이 고공농성 현장을 순회하자고 약속했는데 차광호 동지가 아직 병원에 있어요.”

송복남 총무부장과 전화통화를 하는 사이 광고탑 아래가 소란하다. 팥빙수를 올려 올려보내려는 모양이다. 경기도 동두천시에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한다는 김은실 씨(30)가 7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양손에 빙수를 든 채 농성장을 찾았다. 송복남·심정보동지와 페이스북 친구란다.

“2013년 12월부터 대한문 매일미사 다니며 쌍용차 아저씨들을 알게 됐어요. 쌍용차 아저씨들이 자신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충분히 힘을 받으니까 다른 데, 더 어려운 데 가서 힘을 주라고 했어요. 자신들은 힘 안드니까 더 힘들고 더 아픈 곳에 가서 너의 에너지를 발산하라고 했어요.”

“제 일 같아요. 저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거고, 제 자식이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어요. 저 위에 있는 두 분에게 힘내라고 못해요. 빨리 내려오면 좋겠는데 힘내라고 하는 건 그 위에 더 있으라는 말이 되니까요.”

우리 사회 보석 같은 젊은 노동자다. 천연옥 부산일반노조 부위원장이 보육노조를 소개해 줄테니 노동조합에 가입하라며 욕심을 낸다. 김은실 씨가 민주노총 조합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김은실 씨가 돌아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송복남·심정보 동지에게 노래를 불러주겠다며 작은 스피커를 가방에서 꺼냈다. 차광호 동지가 내려오기 전에 ‘당신의 의미’를 개사해서 불러줬던 노래라고 한다.

“복남, 사랑하는 내 정보, 둘도 셋도 넷도 없는 내 동지, 동지 동지 사랑해요, 동지 없는 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교대합시다 교대합시다 교대합시다, 동지 위하여 입은 앞치마에 눈물이 젖게 하지 마세요, 동지 동지 사랑해요~”

광고탑 위를 바라보며 고개를 양쪽으로 까딱거리며 방글방글 웃으며 노래하는 그 모습이 너무 이뻐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 노래 '당신의 의미'를 고공농성 교대하자는 뜻으로 개사해 고공농성자들에게 불러주는 김은실 씨. 사진=노동과세계
오후 6시가 가까운 시각 고공농성자들에게 저녁밥을 올린다. 경찰이 와서 하나하나 확인하더니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메뉴가 뭔지 시시콜콜 보고한다.

저녁식사가 끝났을 즈음 심정보 동지와 전화로 만났다. 먼저 습진이 어느정도인지 걱정스러웠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이구요. 견딜만 해요. 그리고 견뎌내야 돼요.”

택시 사납금제도로 인해 택시현장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은 어떤 걸까. “사납금제에서 노동자는 노예로 삽니다. 항상 신호위반과 과속을 강요당해요. 도급제와 같아요. 사납금을 벌지 못하면 자기 돈을 채워넣어야 해요. 자신의 목숨은 물론 손님의 목숨까지 담보해야 하는 겁니다. 이런 상황을 시민들은 잘 몰라요. 어떻게든 환기시키고 현장을 바꾸고 싶어 이렇게 싸우는 거에요.”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가 투쟁사업장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사업장의 역량을 모아 집중시켜야 하고 우선시되는 사업장도 있는 거고, 한편으로는 주체가 열심히 싸워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진짜 죽도록 열심히 싸울테니 우리 문제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오.”

“더 어렵게 싸우는 이들이 많습니다. 큰 사업장 말고 정말 힘든 곳들에 더 연대해 주셔야 합니다. 강병재 동지하고도 밤마다 통화하고 문자도 주고 받는데 결코 혼자 싸우는게 아니라는 거, 외로운 투쟁이 아니라는 거,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늘 함께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요.”

변재승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부산지회장(63)이 농성장 한 곳에 매트를 깐 채 책을 읽고 있다. 그는 남부교통에서 전액관리제를 주장하다 해고됐고 2011년 2월 복직돼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에 가입했다.

현장에 복직했지만 회사는 보복에 나섰고 전액관리제 시행을 요구하는 그에게 사측은 임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1년 여 동안 임금을 못받고 2013년 또다시 해고됐다. 다른 노동자에게는 적용도 되지 않는 정년 해고였다.

변 지회장은 2000년부터 택시노동자로 살았고 민주노조를 통해 택시 현장을 바꾸려고 온 힘을 다했다. 지회장을 맡아야 했는데 집회 때 발언을 하는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발언이 아닌 다른 것으로 역할을 해보자고 결심했고 몸짓을 배웠다.

하지만 예순이 넘은 나이에 몸짓을 새로 배우는게 쉬웠을까. 하루 4시간씩 새벽 2시까지 매일같이 피나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젠 내 몸짓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도 있답니다. 발언을 피하려고 몸짓을 어렵게 배웠는데 몸짓도 하고 발언도 해야 되요.” 택시노동자들 집회에 가면 문화공연 없이 발언과 구호만 있었다. 변재승 지회장은 택시노동자들에게 기운을 북돋워 주고 싶었다.

▲ 사진=노동과세계
변재승 지회장은 자신에게 몸짓을 가르쳐준 부경몸짓패 이민주 동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고마운 동지들이에요. 덕분에 그는 자신감 있게 투쟁도 더 잘하는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됐다.

한남교통은 이미 전액관리제를 이행하고, 부가가치세 경감분을 환수조치하고, 노조사무실을 제공하라는 명령을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받은 바 있다. 회사가 이 판정을 이행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해 6월 5일부터 노동조합이 한남교통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집회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9월 노동청 근로감독관 중재로 교섭이 열렸을 때 한남교통 노사는 구두로 휴게실을 노동조합 사무실로 사용한다는 데 합의했다.

노동조합이 책상을 들고 노조 사무실로 임시 이용키로 했던 휴게실을 방문했을 때 회사 관리자와 한국노총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며 책상을 부수고 난동을 부렸다. 이후 교섭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구두로 합의한 것이 맞다고 회사는 시인했다.

이에 한남교통분회가 노조 사무실 제공 등 내용에 대해 합의이행가처분을 신청했고, 오는 8월 20일 노동조합 손을 들어주는 판정이 나올 경우 사측은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

“시청과 시의회, 경찰청, 노동청이 여기 다 모여 있어요. 부산시 중앙로 삼각지역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곳이니 공무원들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곳이죠. 생탁도 그렇고 택시도 그렇고 시가 마음만 먹으면 해결할 수 있어요.”

부산시청 하 모 전 대중교통국장이 택시사업조합 전무로 갔고, 시청 대중교통과 전 정책계장은 지난해 택시사업조합 두리발 택시본부장으로 갔다. 두리발은 장애인을 위한 교통수단인데 시가 직접 운영해야 하는데 사업조합에 민간위탁을 맡겨 세금 80억을 맡겼다. 부산지역 장애인 동지들이 이곳에서 농성을 벌이는 까닭이다.

“그런 택시사업조합을 시가 처벌하겠습니까? 시가 해결해보겠다고 교통국장이 발을 벗고 나섰다고는 하는데 정말 해결하려고 달려들어야 하는 거죠. 한남교통 사장이 해결하고 싶지만 한국노총 1노조 본부장이 거부해서 못한다고 했다는 거에요. 기가 막힐 노릇 아닙니까?”

“요즘 노사합의를 했다고 계속해서 언론보도가 나와요. 합의를 하긴 뭘 해요. 아무것도 없어요. 썩어도 정말 너무 썩었어요. 이건 나라도 아니고 국가도 아니에요. 저는 택시 사업장들만 노동자가 노예로 사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니에요. 가는 곳마다 그래요. 결국은 세상을 뒤집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겁니다. 저는 택시 현장을 정말 한 번 바꾸고 싶어요. 민주노조를 정착시키고 싶어요.”

변재승 지회장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이삼형 지부장이 부산지역 택시노동자 조직과 투쟁에 큰 역할을 했다면서 부산 택시 사업장들에 민주노조를 조직하고 투쟁을 확산시키겠다고 다짐한다.

오후 7시30분 부산시청 고공농성장 앞에서 생탁·택시노동자 공동투쟁단고 함께 하는 기독인 희망예배가 마련됐다.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를 비롯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종교인들이 매일 같이 시청 광고탑 밑에서 응원 집회·문화제와 미사·예배 등을 통해 고공농성 노동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부산에서 거제에서 또 서울에서, 노동자들이 하늘로 하늘로 올라간다. 지금 이 순간 또 어디에선가 노동자들이 그 어떤 절박한 사연을 안고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지 않을까.

▲ 생탁-택시노동자 공동투쟁단과 함께 하는 희망예배. 사진=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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