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본격적으로 군중들이 집결하는 시간은 14시 전국노동자대회다. 그러나 이날은 정오부터 노동자와 시민들이 대거 모여들었고 13시 민주노총 가맹조직들 각각의 사전대회가 시작되자 군중은 급속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이날 민중총궐기와 3차 범국민행동에 가장 큰 규모로 참가한 조직은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은 역대 최대 규모의 조합원들이 서울로 집결했다. 전국에서 조합원 20%가 넘는 15만 조합원이 참여했다.
■ 2016년 민중총궐기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범국민행동은 10월 29일 1차 대회가 열렸고 11월 12일은 3차 대회였다. 그중 3차 대회가 100만 군중이 참석한 것의 중요한 요인은 이날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중단체들이 민중총궐기를 예비해 조직과 홍보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 민중총궐기 행진 및 3차 범국민행동
16시 민중총궐기 대회는 1시간 정도 진행 후 곧바로 행진에 들어갔다. 그러나 17시경에 이미 군중은 80만 명을 돌파하는 상황이라 사실상 전체 행진은 불가했다. 그 중 수십만 명만이 서울광장과 광화문 4거리를 중심으로 5갈래로 행진에 나섰고 17시30분 경 범국민행동 공식행사가 시작됐다.
■ 경찰 행진불허 무력화 시킨 민주주의, 시민들 광화문 앞까지 진출
경찰은 기존처럼 집회와 시위에 대한 협소한 권리기준과 교통방해라는 이유로 광화문 앞과 내자동 안국동 방면의 행진을 불허했다. 그러나 법원은 그러한 경찰의 조치가 민주적 권리와 국민적 공익에 반한다며, 오히려 행진불허 조치를 금지시켰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이를 “민주주의와 국민의 승리”라고 평했다.
■ 청춘총궐기, 중고등 청소년 및 대학생들이 일어서다
이날 대회는 초중고 학생 및 대학생,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참여했다. 그야말로 국민항쟁이며 전국적 항쟁의 선포였다.
■ 지역 표정, 부산에서도 3만 군중 결집
서울로 상경하지 못한 시민들은 각 지역에서 별도의 민중총궐기 대회를 개최했다.
■ 기타 12일 거리표정
3차 범국민행동이 공식 종료가 된 후에도 거리에는 엄청난 군중들이 남아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자유발언 등을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