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수제화 업체 '탠디' 제화 노동자들, 8년간 임금동결 끝에 26일 오후 본사 점거농성

 

“뛰어!” 유명 수제화 업체 탠디의 구두를 만드는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 탠디분회 조합원 60여 명은 26일 오후 3시 30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탠디 본사 건물로 기습 돌입했다. 약간의 몸싸움 끝에 조합원들은 본사 3층을 점거하고 정기수 탠디 회장과의 교섭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사측의 묵묵부답으로 하룻밤을 넘겨 농성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8년간 동결되었던 공임비 인상 ▲작업이 어려운 구두를 제작할 때 특수공임비 제공 ▲정당한 사유 없는 일감차별 금지 ▲사업자등록 폐지하고 직접 고용. 23일째 파업중인 탠디 제화 노동자들의 요구다.

 

"8년간의 임금동결, 배고파서 못살겠다. 특수고용 철폐 투쟁, 결사 투쟁" 26일 오후 본사 점거농성에 들어간 탠디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안우혁)

 

“8년간의 임금동결 텐디본사 각성하라”
점거농성에 들어간 탠디 제화 노동자들은 30년 이상 신발을 만들었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하기 시작해 50년을 넘긴 사람도 있다. 이들이 만든 구두는 백화점과 인터넷 쇼핑몰에서 9만원에서 270만원에 팔린다.

수십 년 경력을 갖추고 고가의 구두를 만들지만 받는 돈은 적다. 만드는 신발의 개수마다 공임을 받는다. 밑창을 만드는 ‘저부’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구두 한 족당 저가제품 6,500원, 고가제품 7천원을 받는다. 신발의 윗부분을 제작하는 ‘갑피’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은 한 족당 저가제품 5천 300원, 고가제품 6,300원을 받는다. 2011년 이후 한 번도 오르지 않은 액수다. 작업이 까다로운 신발을 만들 때 지급되던 특수공임비도 몇 년 전 폐지됐다.

노동자들은 탠디의 독특한 불량 제품 처리방식에도 분노하고 있었다. “50만원짜리 부츠를 공임 7천원 받고 만들다 불량이 생겼다. 그러자 본사는 하청 업체에게 판매가 50만원을 청구하고, 하청업체는 내게 그 절반인 25만원을 변상하라고 했다. 7천원 받으려다 이틀 치 임금을 뺏겼다.” 불량 제품이 발생했을 경우 탠디 본사는 하청 업체에 구두 판매가를 청구하고 하청 업체는 다시 제화 노동자에게 그 전부 또는 일부를 변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왜 사장인가, 사업자등록 폐지하라”
탠디 분회 조합원들은 ‘특수고용 철폐투쟁’을 가장 힘주어 외친다. 이들은 IDK, 다빈치, BY, 아이콘, 대화기업이라는 5개의 공장(하청업체)에서 일한다. 하청업체에 속해 있지만 여기에 고용되어 있지 않다. 사측의 강요로 2000년에 사업자등록을 한 이후 이들은 ‘소사장’이 됐다.

탠디의 주문서대로 탠디로부터 일감을 배정받아 탠디의 신발만을 만들지만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연차휴가와 4대보험, 퇴직금을 보장받지 못한다. “내가 사장이라면 탠디 물량이 적게 들어오는 시기에 다른 회사 제품도 만들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탠디 제품만 만들어야 한다. 독립된 사장이 아니다. 일일 지시사항을 비롯해 모든 게 본사에서 내려온다” 32년차 제화 노동자 박완규 조합원의 말이다. 지난해 1월 퇴직한 제화 노동자 9명이 회사를 상대로 퇴직금 청구소송을 진행한 끝에 항소심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았지만 이들의 고용형태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개수임금제에서 비롯되는 장시간 노동도 문제다. 성수기에는 하루 25개씩 작업한다. 이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일하는 시간은 하루 15시간에서 길게는 18시간. 못 끝낸 물량을 털어내려고 주말에도 일한다.

그래도 물량이 많으면 다행이다. 비수기엔 하루 12개가 들어와 소득이 들쭉날쭉하다. 관리자에게 밉보이면 그마저도 못 받거나 만들기 어려운 제품만 배정받게 된다. “그러면 자존심이 얼마나 상하는 지 알아요?” 이들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일감으로 차별하지 마라’고 외치는 이유다.

 

“이렇게 살 거냐? 공원으로 모이자”
시작은 누군가의 전화 한 통이었다. 일단 모여보자. 공장 인근 낙성대공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4월 4일 반신반의하며 공원으로 하나 둘 향했다. 그렇게 온 사람이 98명. 수십 년간 이렇게 모여본 적이 없었다며 서로 놀랐다. “공원에 나가보기 전엔 한 열명 정도 서성이고 있을 줄 알았다. 나가보니 100명 가까이 와 있더라.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다.” 정기만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장의 말이다. 이전에 노동조합을 시도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6일에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을 찾았다.

초동 모임 - 노조가입 - 집회 - 농성 돌입까지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어렵게 마련한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절박함이다. 조합원들은 “소사장제에 발이 묶여 그동안 뭉치기가 어려웠다. 30년 넘게 일하면서 우리가 이렇게 모여본 적이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동국대시설관리분회의 직접고용 쟁취도 이들에게 용기를 줬다. 동국대 투쟁을 승리로 마무리짓고 제화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원하는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상근 간부들에 대한 신뢰도 있다. 아직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동료 제화 노동자들의 지지도 이어진다. 성수동에서 신발을 만드는 다른 제화노동자들도 투쟁기금을 보내왔다. 본사 직영 제화노동자 12명도 27일부터 파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제화 공장 7개를 멈췄다. 해볼 만 하다" 김선기 민주일반연맹 서울일반노조 교선국장의 말이다.

 

“같이 시작하고 같이 끝낸다”
27일 저녁 7시 30분, 봉천동 본사 앞 결의대회
탠디분회 조합원들은 정기수 탠디 회장이 교섭에 응하고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한 퇴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농성이 지속되자 사측은 26일 밤 본사 출입문의 셔터를 내리고 문 앞에 차량을 배치했다. 유사시 안전사고를 대비해 출입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했지만 사측은 이를 거부하고 출입구 앞에 본사 직원들을 세웠다. 같은 건물에서 오래 일해 서로 아는 사이인 본사 직원과 제화 노동자가 어색하게 대치한 끝에 간신히 깔개를 반입했다. 조합원들은 사무실 앞 복도와 계단에서 밤을 지샜다.

한편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오늘 7시 30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 탠디 본사 앞에서 ‘탠디 노동자 투쟁 승리를 위한 결의대회’를 연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탠디 본사의 모습. (사진=안우혁)

 

 

"이 형님 손좀 찍어줘" 카메라를 본 탠디 제화노동자들은 손부터 내밀었다. 수제화를 만드는 노동자들에게 손은 곧 연장이다. 수십 년 작업으로 관절에 무리가 가고, 기계에 눌리고 약품에 상처를 입어 손이 성한 사람이 많지 않다. (사진=안우혁)

 

30년 이상 신발을 만든 어느 제화노동자의 손 (사진=안우혁)

 

카메라를 본 제화 노동자들은 자신의 손을 촬영해달라고 요청했다. 제화 노동자들의 손은 수십 년 수작업으로 모양이 변해 있다.  (사진=안우혁)

 

밤이 되자 사측은 출입구를 봉쇄했다. 셔터를 내리고 차량으로 출구를 막았다. 탠디 노동자들이 소방관들을 불러 유사시를 대비한 안전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진=안우혁)

 

밤이 되자 사측은 출입구를 봉쇄했다. 셔터를 내리고 차량으로 출구를 막았다. 탠디 본사 직원들이 출입구를 통제하고 있다. (사진=안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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