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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30번째 희생자 김주중 열사 노제“열사가 염원했던 뜻 당당히 이어받아 싸우겠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목요일마다 이곳에서 촛불문화제를 통해 함께 외쳤던 김주중 동지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동지가 그렇게 가고 싶어 했고, 함께 외쳤던 해고자 전원 복직, 국가폭력의 진상조사규명, 책임자 처벌, 국가 손해배상 철회... 살려달라. 살려달라. 함께 힘 모와 달라. 동지가 염원했던 그 뜻 당당히 이어받아 싸우겠다”

29일 오전 9시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열린 ‘쌍용자동차 30번째 희생자 김주중 열사 노제’에서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이 이와 같이 말하며 오열했다. 김주중 열사는 10년 동안 복직을 희망하다 2009년의 트라우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지난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제에 참석한 김주중 열사의 유가족과 쌍용차지부 조합원들을 비롯한 금속노조 조합원, 시민사회단체 등이 열사를 보내며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살려내라 살려내라 김주중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국가폭력과 자본의 무성의한 것이 한사람을 결국은 되돌릴 수 없는 죽음으로 만든 것을 목도하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도 분노스럽다. 자본의 탐욕에 놀아난 법관들의 농단이 확인되고 있고, 새로운 정권은 시간만 까먹고 있는 이 상황이 반복된다면 31번째 죽음이 나올까 두렵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본과 노동이 한 약속을 지켜달라고 하는 것이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있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에게 답을 해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정의실현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것만이 공장으로 갈 수 있겠구나 라는 희망을 주는 길이다. 그 힘든 약속 반드시 지켜지도록 만들어 가겠다. 그러니 제발 살아서 싸우자. 저 공장으로 돌아갈 때까지 살아서 싸우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반드시 기억하겠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 서른 번째 기억만큼 반드시 되갚아 줄 것이다. 이제 보내드리겠다. 희망고문이 아닌 희망을 만들어가겠다는 결의를 한다. 남은 자들이 동지와 함께하고 꿈꿨던 세상을 향해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노제는 유가족의 분향을 시작으로 김득중 지부장의 고인양력보고로 이어졌다. 그리고 박준 민중가수의 추모가를 부르고, 송경동 시인이 추모시를 낭독했다. 이후 열사 유가족은 인사말을 통해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없었으며 합니다.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문제가 해결되고 빨리 회복되어 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명예회복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노제가 마무리 되고 유가족과 김주중 열사는 화장터로 향했다.

버스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쌍용차지부 조합원 동료가 국화꽃다발을 들고 오열하며 공장 정문으로 향했다. 공장으로 진입하려고 하자 사측 관계자가 그를 막아섰다. 그리고 자바라 문으로 정문을 봉쇄했다. 그는 자바라를 붙잡고 “너 네들이 죽였어. 왜 안 되는 거야. 복직할 수 있었어. 억울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쌍용차지부는 “회사는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합의서(2015년 12월30일)를 지키지 않았다. 복직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 고인에게 희망고문을 했다”며 “쌍용자동차 사측이 정년퇴직자, 신차 등 해고자 120명의 복직 여력이 충분히 있는데도 2018년 2월부터 시작된 해고자 복직 교섭에서 복직 시한 명시를 거부했고, 만약 회사가 복직 시한만이라도 명시를 했다면 고인은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인은 대한민국 정부가 쌍용자동차를 폭도로 몰아 살인진압을 가했고, 조립공장 옥상에서 특공대의 토끼몰이 폭력진압의 피해자이자, 국가손해배상(24억)의 당사자였다. 살인진압의 진상규명이 늦어지고 국가 손해배상이 취하되지 않고, 대법원 재판거래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고인이 죽음으로 명예회복을 요구한 것”이라며 “국가와 언론이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자들을 폭도로 몰아 쌍용자동차 해고자 출신은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했고, 결국 일용직 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신용불량을 벗어날 수 없었다. 고인은 투잡까지 했지만 빚을 갚기 어려웠고, 자결에 이른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일 오전 8시 30분 평택시 제일장례식장에서 발인을 진행하고 쌍용자동차 공장 정문 앞으로 이동했다.

ⓒ 노동과세계 변백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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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과세계 변백선  n734979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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