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음료지회, 전면파업 184일·집단단식 28일만 타결

LG상대 ‘노조할 권리’ 쟁취한 5인의 한국음료 ‘전사’들. 오른쪽에서부터 김용수 교선부장, 박남근 조합원, 박경수 조합원, 최영수 지회장, 김원준 회계감사, (사진=노동과세계)

남원의 천황산 기슭에 작고 아담한 사찰 ‘귀정사’가 있다. 515년이 흘렀지만 지금 이 절에는 스님이 없다. 대신 5명의 노동자가 요양하고 있다. 자산 88조원 재벌 4위 LG그룹에 대항해 ‘노조 할 권리’를 쟁취한 ‘전사’가 이들이다. 21세기 ‘골리앗’ 투쟁이다.

<노동과세계>가 12일 오전 이들을 만났다. 남원역에서 승용차로 25분 거리에 있는 귀정사에 도착했다.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자 자그마한 숙소가 나왔다. 새소리와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 최영수 한국음료 지회장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최 지회장 포함 5명이 28일간 단식투쟁을 하고 이곳에 내려와 회복 중이었다.

이곳은 민주노총 전북본부의 소개로 알게 됐다. 노조활동을 하다 병으로 2017년 세상을 떠난 윤종광 전 전북본부장의 수목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 귀정사는 사회연대단체가 무료로 쉼터로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템플스테이로 이용한다.

이곳에서 몸이 많이 회복돼 이날 사찰을 나가기로 돼 있는 최 지회장은 전면파업 184일을 떠올렸다. 조합원 31명이 단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똘똘 뭉쳐 일궈낸 ‘기적’이었다. “LG를 상대하는 것이라 힘들었다”고 최 지회장은 털어놨다.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부부 싸움 등으로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어 한 것이다. “이혼만 안 갔지 그런 위기들이 많았다. 노조 집회에 초청해서 얘기하게 했고, 부인끼리의 자리도 만들었고, 조금 더 참고 이겨내자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5인 멤버중의 한 명인 김원준 회계감사의 아내는 “7개월 가까이 파업하면서 급여가 없어서 솔직히 속상하고 남편이 미웠지만 여태 지켜봐 온 것이 아까워 애들(5살, 7살) 적금 깨고 대출 받고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했다”면서 “남편이 단식투쟁 할 때는 나도 걱정 때문에 5일 동안 밥을 못 먹어 길을 가다 몸을 가누질 못해 길 가던 사람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전면 파업 후 농성천막에 불이 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여의도 LG트윈타워 앞 천막농성 50일째 석유난방 과열로 불이 난 것이다. 부상자는 없었지만, 천막농성을 접을 것인지 말 것인지 기로에 섰다. ‘조합원들 전체가 지금까지 고생해 왔는데, 이대로 복귀는 안 된다’고 결정했고, 남원에 내려와 한국음료 옆에 천막농성을 다시 설치했다.

문제는 사측의 ‘버티기’였다. 최 지회장은 “조합원들의 요구가 ‘노조만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면서 “사측은 끝내 우리의 요구를 저버렸다”고 말했다. 이것이 단식투쟁(3/6)의 ‘도화선’이 됐다. 처음엔 조합원 31명이 다 하겠다고 했다. 조직의 역할 상 모두가 단식에 참여할 수 없어 결국 다섯 명으로 압축됐다. 최용수 지회장, 김용수 교선부장, 김원준 회계감사, 박경수 조합원, 박남근 조합원이었다.

꿈쩍 않던 사측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식 도중에 박경수 조합원이 빈혈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 대표이사가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최 지회장은 복기했다. “엘지에서도 단식투쟁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보고가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재벌과 조합원이라는 ‘대척점’이 뜻밖의 계기를 가져다 준 것이다. 박경수 조합원은 “단식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름쯤 지나면서 심기가 복잡해지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타결점이 안 보여서 머리가 복잡하고 아팠다”면서 “재벌 대기업이다 보니까 안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조바심과 압박감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고 술회했다.

급기야 단식 21일차 되던 날 회사가 반응을 보였다. 3월 26일 주주총회가 있던 날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회사가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고 최 지회장은 전했다. 화섬연맹 신환섭 위원장이 교섭대표를 맡았다. 엘지 생활건강 이영석 전무이사와 대화를 했고, 23일차에 한국음료 대표가 교섭에 나오게 됐다.

마침내 ‘전면파업 184일·집단단식 28일’ 만인 지난 2일 길고 긴 투쟁 끝에 합의를 했다. 최 지회장은 승리의 요인을 연대의 힘으로 돌렸다. “화학섬유연맹, 총연맹의 연대도 컸고, 특히 시민단체 ‘꿀잠’의 지원과 공대위의 힘이 컸다”면서 “조합원들의 투지와 5명의 단식, 연대의 힘이 컸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 지회장의 바람은 소박하다. 바로 ‘인간존중’이다. 한국음료는 코라콜라 자회사지만 LG 회사이기도 하다. LG는 인간존중, 정도경영을 경영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한국음료는 허울만 있었다”면서 “이제 노조가 설립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인간존중’의 한국음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고, 그렇게 되도록 활동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LG상대 ‘노조할 권리’ 쟁취한 5인의 한국음료 ‘전사’들. 일주일 후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사진=노동과세계)

 

LG상대 ‘노조할 권리’ 쟁취한 5인의 한국음료 ‘전사’들. 일주일 후부터 밥을 먹기 시작했다. 점심 후 식당(공양간) 앞에서. (사진=노동과세계)

 

LG상대 ‘노조할 권리’ 쟁취한 5인의 한국음료 ‘전사’들. 일주일째 보낸 자그마한 숙소에서. 맨오른쪽은 김원준 회계감사의 아내 (사진=노동과세계)

 

결국 ‘전면파업 184일·집단단식 28일’ 만인 지난 2일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최영수 지회장은 투쟁의 승리를 연대의 힘으로 돌렸다. (사진=노동과세계)

[최영수 지회장외 4인 인터뷰 전문]

- 지금 몸 상태는 어떠한가

= 절에 들어와서 많이 좋아졌다. 기력이 없었다. 현기증이 컸다. 칼슘이 부족해 처방을 받았다. 단식 후 곧바로 녹색병원에 3일간 있다가 남원으로 내려왔다. 처음엔 미음만 먹었다. 3일째부터 밥을 먹었다. 여기 와서 주로 산책을 많이 했다. 조용해 잠도 푹 자고, 가까운 만행산에 등산을 하기도 했다.

- 파업 184일·단식 28일 만에 타결됐다. 소감

= 많이 힘들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다. 6개월 넘게 장기적인 파업은 생각도 못했다. 특히 가정에서 많이 힘들어 했다. 조합원들끼리 단결은 잘됐지만 급여가 없어서 생계가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타결이 되고 노조를 인정받아서 뿌듯하다. 힘들 게 인정받은 만큼 현장에 복귀해서 사측과 상생할 수 있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고, 여기 간부들과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직 현장은 쟁취할 게 많이 남아있다.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다. 숙제가 많다.

이번 투쟁의 승리는 연대의 힘이었다. 투쟁 과정에서 동지들이 많이 연대해 줬다. 화학섬유연맹, 총연맹의 연대도 컸고, 이 모든 것은 동지들의 힘이다. 특히 시민단체 ‘꿀잠’의 연대와 공대위의 힘이 컸다. 주변들의 도움이 승리의 요인이다. 5명이 단식을 결정하기까지 힘들었지만 연대의 힘이 컸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 이곳 귀정사는 어떻게 오게 됐나

= 전북본부의 유기만 조직국장이 추천했다. 이런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있다 보니까 근처에 윤종광 전 전북본부장의 수목장이 있는 걸 알게 됐다. 귀정사는 쉼터다. 사회연대단체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템플스테이로 이용한다. 너무 좋은 곳이다. 조용해서 물내려가는 소리, 새 소리, 바람소리만 들리는 곳이다. 오늘은 회복기간이 끝나는 날이다. 김용수 교선부장은 일주일 더 있기로 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기 좋은 곳이다. 멍 때리기도 좋고, 혼자 집중하기 좋은 곳이다. 조합원들은 복귀해서 교육 중이지만, 우리 단식자들은 한 달 유급휴가 기간이다.

- LG생활건강 손자회사인 ‘한국음료’는 어떤 회사인가

= LG그룹 내에 코카콜라 밑의 자회사라서 손자회사다. 한국음료는 코카콜라에서 판매하는 토레타, 코카콜라, 파워레이드, 조지아 커피 등 브랜드 음료들을 생산하고 있다. 1995년 매원식품이었던 한국음료는 2010년 인수되면서 이름이 바뀌었다. 코카콜라의 10%. 400억 규모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관리직등 직원 총 47명 중에 조합원은 생산직 31명이다. 지금 공장에는 협력업체 직원 70명이 함께 일하고 있다.

- 전면파업이 184일, 집단단식이 28일이었다

= 전면파업 전에 11차례 교섭이 있었지만, 사측이 교섭을 해태했다. 사측은 우리 교섭위원들한테 휴가를 쓰고 교섭에 나오라고까지 했다. 사측은 일관되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과정에서 고용노동부가 ‘노조만 인정해주면 교섭을 진행해보자’는 중재를 제안했지만 사측은 거부했고 결렬됐다. 결국 작년 10월 1일부터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4일에는 여의도 LG트윈타워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11월 24일 천막에 불이 났다. 석유난방 과열이 문제였다. 조합원들이 없는 상태여서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다. 이러저러한 문제로 27일 남원으로 내려가야 했다. 당시 회사에 복귀할 것인지, 다시 천막농성을 할 것인지 기로에 섰다. 조합원들 전체가 지금까지 고생해 왔는데, 이대로 복귀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남원에 내려와 한국음료 옆에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일부 조합원들은 안양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에 상경해서 2박 3일 아침, 점심, 저녁 해서 선전전을 진행했다. 다시 교섭이 진행됐지만 결과는 똑 같았다. 12월까지 16차례 교섭을 벌였다. 1월부터 서울로 상경했다. 구광모 LG회장 집 앞에 선전전을 했다. 광화문 엘지 빌딩 앞에도 갔다. 청와대 앞에서 약식 기자회견도 하는 등 조합원 5~6명이 돌아다니면서 선전전을 계속 펼쳤다. 2월 20차 교섭이 끝난 후 을지로위원회 전북도당 주최로 코카콜라 책임자와 면담도 했다. 임금, 복지는 제외할 테니 노조만 인정해달라고 얘기했다. 노조사무실, 타임오프만 인정해주면 현장에 복귀하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그 이후로 단식을 결의하게 됐다. 3월 6일 서울로 상경, 여의도 천막농성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이후 화섬연맹 숙소와 사무실 등을 이용했다. 2주차부터는 비정규노동자 쉼터로 알려진 ‘꿀잠’을 알게 돼 그곳에서 지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 5명이 집단으로 하는 단식투쟁을 결정했다

= 처음엔 조합원 31명이 다 하자고 했다. 다할 수는 없었다. 도와줄 사람, 선전 등 역할을 해야 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다섯 명으로 압축됐다. 지정한 것은 아니고, 자진해서 하겠다는 신청자를 중심으로 했다. 교선부장, 김원준 회계감사, 박경수 조합원, 박남근 조합원 해서 5명이 최종 하게 됐다.

사측은 한 번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26일 주주총회가 있던 날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이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회사가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단식 21일차 되던 날 회사가 반응을 보였다. 화섬연맹 신환섭 위원장이 교섭을 했다. 엘지 생활건강 이영석 전무이사와 대화와 했고, 이후 23일차에 한국음료 대표가 교섭에 나오게 됐다.

박경수 조합원 : 단식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보름쯤 지나면서 심기가 복잡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결점이 안 보여서 머리가 복잡하고 아팠다. 안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해서 힘들었다. 재벌 대기업이다 보니까 조바심과 압박감이 들었던 같다.

- △기본급 5.5% 인상 △타임오프 600시간 △공장 내 노조사무실 제공 △최영수 한국음료지회장을 포함한 단식자 5명 한 달 유급휴가 등 2018년 임금·단체협약에 합의했다.

= 파업이 장기화 되면서 조합원 전체가 힘들어했다. 조합원들은 노조인정만 받으면 된다고 동의해 줬다. 그래서 타결에 대한 불만은 없다. 이번 임단협은 작년 분이다. 올해 또 협의를 해야 한다. 5.5%는 한국음료 최근 3년 평균인상률 수준이다. 조합원들은 평균 근속년수가 11년인데, 최저임금 수준이다. 사원들 임금체계가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보니 연차가 있어도 격차가 별로 없고, 임금 인상이 돼도 대폭 오르지 못하는 형편이다.

- 교섭 과정에서 사측의 태도는 어떠했나

= 한국음료 공장장이 코카콜라 직원이다. 대표 교섭권이 있다 해서 11차례 교섭을 했지만 실제적 권한이 없다 보니 교섭이 안 됐다. 바지사장인 셈이었다. 매번 검토해서 얘기해 주겠다는 수준이었다. 결국 한국음료 대표이사가 나오면서 타결이 된 것이다. 단식 도중에 박경수 조합원이 빈혈 현상이 있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 대표이사가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엘지에서도 단식투쟁 상황을 계속 주시하고 보고가 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컨테이너박스를 개조한 노조 사무실을 제공 받게 됐다

= 현재 건물 내 공간이 없는 상황이다. 두 동을 받기로 했다. 위치는 아직 미정이다. 현장 복귀하면 위치를 마련할 생각이다.

- 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전주시청이 계속 중재했다. 한국음료 찾아가서 공장장을 만나고, 대표이사에게 내려오라고도 했다. 사측이 이를 무시하면서 한국음료 사측에 대한 ‘괘씸죄’가 생긴 것 같다. 노동부는 회사 내 폭언, 욕설, 폭행, 희롱 문제 때문에 진정 등을 통해 알게 됐다. 사실 노조를 만들게 된 계기도 이런 회사 내 문제 때문이었다. 산업안전에 대한 문제도 있어서 노동부가 2주 조사하기로 했다가 2주 더 연장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2018년 임단협이 타결됐다. 이후 계획과 목표

= 한국음료가 코라콜라 자회사지만 LG 회사이기도 하다. LG는 인간존중, 정도경영을 경영이념으로 표방하고 있다. 한국음료는 허울만 있었다. 이제 노조가 설립됐기 때문에 앞으로는 인간존중 한국음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조도 그렇게 되도록 활동하고 싶다.

장기 전면파업 하면서 조합원들이 한 사람의 이탈자도 없이 단결했기에 앞으로는 잘 됐으면 잘 됐지, 문제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목소리 내는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 이번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다 같이 먹고 자고, 몰랐던 조합원들도 서로 많이 알게 됐다. 다들 친구, 동생, 형처럼 지내서 이해와 배려심이 높아졌고 앞으로 활동에 문제가 될 것은 없을 것 같다.

김원준 회계감사의 아내 : 7개월 가까이 파업하면서 급여가 없어서 솔직히 남편이 속상하고 미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열정적으로 단식투쟁까지 하겠다고 했다. 이후에는 말리기보다는 지원하기로 맘먹었다. 여태 지켜봐 온 것이 아까워 뿌리를 뽑아보자고 나도 맘먹었다. 애들 적금 깨고 대출 받고 마이너스 통장 사용했다. 돈도 챙겨주고 뒤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겠다고 결심하면서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단식투쟁 할 때는 걱정이 돼서 우스갯소리로 ‘보험이나 들어놓고 그러지’라고도 말했다. 나도 걱정이 돼서 5일 동안 밥을 못 먹었다. 어지러워서 길을 가다 쓰러질 것처럼 몸을 가누질 못하기도 했다. 길 가던 사람이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5일 굶어도 그런데, 28일까지 갔으니 걱정이 안 될 수 있나. 도중에 그만할 것을 권유도 했다. 그때마다 안 된다고 하고 어떻게 해든 이겨내야 하고 죽어도 여기서 죽는다고 했다. 그래 버텨보자, 거기서 무조건 이겨내라 믿어줬다. 남편을 만난 지 10년 됐고 6년째 결혼을 했다. 애는 5살, 7살 둘이다. 애기들 보면서 힘든 시기 많았다. 남편은 단식하면서 늘 괜찮다고 했고, 힘든 내색 한 번 없었다. 그런 사람이다. 내가 말로는 툴툴거려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 민주노총(조합원)에 하고 싶은 말

= 화섬연맹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전북본부 26곳 사업장에서 항상 같이 잠도 자주고 따로 놔두질 않았다. 돌아가면서 사수해준 게 큰 힘이 됐다. 그래서 더 힘을 냈다. 연대와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많이 해준 게 힘이 됐고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고 본다.

지금은 우리가 받았던 것보다 민주노총에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힘든 곳이 많은데 연대활동을 배로 더 많이 해아겠다고 맘먹고 있다.

LG를 상대하는 것이라 힘들었다. 조합원 중 이탈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이 큰 힘이 됐다. 포기자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똘똘 뭉쳤다. 부부싸움이 많아 조합원이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배우자를 만나 얘기를 나눴다. 노조 집회에 초청해서 얘기하게 했다. 부인들끼리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줬다. 조금 더 참고 이겨내자고 설득했다. 이혼만 안 갔지 그런 위기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설득해 내고 이겨냈다. 조합원 전체가 노력을 많이 했다. 얘기도 많이 해주고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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